[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세태변화로 잃어가는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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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세태변화로 잃어가는 삶의 지혜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8-09-09 11:0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장대높이 꿩장목 꽂고 지네발 장식 한 농기와 영기 앞세워 풍장을 칩니다. 풍물패가 마을 앞에서 벌이는 길놀이입니다. 따라나선 아이들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하며 어깨를 들썩입니다. 마을 고샅을 한 바퀴 돈 풍물패가 동네 가운데 있는 공동우물에 멈춥니다. 많은 마을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우물 남쪽에 제사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놓인 돼지머리가 환하게 웃습니다. 제사가 끝나고 상을 물립니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립니다. 들고 나온 키로 물을 까부르는가 하면, 물통으로 물을 여기저기 뿌리거나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합니다. 음복하며, 풍물장단에 맞추어 한동안 흥겨운 시간을 갖습니다.

유년시절 보았던 기우제풍경을 떠올려 봤습니다. 자란 곳이 들판 끝자락에 붙은 마을이라 그런지, 자료에서 보던 다른 기우제와 사뭇 다릅니다. 기우단이나 용소 같은 것도 없지요. 산위에서 불을 지피는 산상분화(山上焚火), 집에 물병 거꾸로 매달거나 물 긷기 등의 주술행위, 시장 옮기기, 용제(龍祭), 쌍룡상쟁(雙龍相爭)을 뜻하는 줄다리기, 신성성을 더럽히는 부정화(不淨化), 묘파기 등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기우제가 전합니다. 땅이 쩍쩍 갈리고, 생물이 말라비틀어지면 누구나 걱정이 태산이겠지요.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간곡한 마음은 모두 같았나 봅니다. 동서고금, 국가에서부터 마을 공동체, 개인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대소나 신앙을 불문, 비가 오기를 간절히 비는 유사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봅니다. 공동대처를 통해 자연스레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지요.

전통문화나 역사를 말할 때, 마치 비가 농업에만 필요한 것처럼 언급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농업에만 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물은 필수 요건입니다. 잠시라도 물이 없으면 생명 유지가 어렵습니다. 물 부족으로 사막화가 되기도 하고, 이스라엘같이 물을 이용하여 사막을 옥토로 만들기도 합니다. 물은 비를 통하여 얻어지지요. 적절히 비가 와 주어야 합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숲이 필요하고, 수리시설이 필요하지요.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장마철에 비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물 부족 국가라 하지요. 기간의 길고 짧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매년 가뭄을 겪습니다. 지혜로운 물관리가 필요하지요. 최대치를 준비해도 부족한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현상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한 4대강 사업이 지금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요. 공주보, 백제보만 하더라도 농업용수나 식수로 활용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대와 같은 대명천지에 홍수나 가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지혜로운 대처가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한편, 최근엔 관계시설 발달과 효율적 관리, 원만한 물 공급으로 걱정을 거의 하지 않지요. 따라서 기우제를 포함한 기후풍습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예민하다는 표현이 적절할까요?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가뭄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태풍이라도 와줬으면 하던 것이 필부들의 소박한 바람이었지요.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내리자 각종 피해가 발생합니다. 며칠 비가 오자 금세 멈추기를 바랍니다. 언론은 제수물품 가격 오른다고 앞서갑니다.

농사 걱정이지요. 물론, 벼 팰 때 비가 지속하여 내리면 흉작을 거두게 됩니다. 주로 남부지방에 전하여 오는 이야기인데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하였습니다. 요즈음은 조금 달라졌을까요. 예전 벼는 일조시수가 줄어들어야 여물었습니다. 품종개량 통해 일정 기간 지나면 익도록 하였지요. 여름이 지나 더위도 사라지고 선선한 가을이 시작될 때, 그를 처서라 부릅니다. 풀도 더 자라지 않아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깎습니다. 비에 젖은 옷이나 눅눅해진 책을 바람과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도 이 절기에 해 왔지요. 모기도 입이 비뚤어져 사람을 더는 귀찮게 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가뭄과 염천에 고통을 겪었나 봅니다. 소리를 줄이거나 침묵하고 풀죽어 있었지요. 비갠 산길을 걷다보니 찬란한 햇빛과 맑고 신선한 공기가 어우러져 활력이 넘칩니다. 산야가 쌍수 들어 환호합니다. 멧새, 매미가 연주하는 합주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 사이로 사이키조명과 무지개 조명이 산을 흔듭니다. 골짜기 물이 우렁찬 갈채를 보냅니다. 마당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기쁨도 반감되고 지혜도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연과 달리, 사람은 생활환경이나 여건이 좋아지면 합심협력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요. 사고력이 떨어지고 성찰을 잊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벌써 내일이면 찬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입니다. 힘겹게 여름나고 가을을 맞으면서, 절기에 이루어지는 몇 가지 문화 들 춰 보았습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간절한 마음, 삶의 지혜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잃는 것들이 있어 안타깝지요. 사람에게는 창의성이나 열정 같은 놀라운 도구들이 있습니다. 사라지는 이상으로 더욱 높고, 고운 문화가 창출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식장산
식장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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