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글라이팅? 행복한 글쓰기] 11. 먼저 따뜻한 마음을 준비해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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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글라이팅? 행복한 글쓰기] 11. 먼저 따뜻한 마음을 준비해 놓으세요

한소민 프리랜서방송작가, 대전시민대학 글쓰기강사

  • 승인 2019-02-17 16:4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산고(産苦)에 비유될까요?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가는대로 쓰면 된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쓸 때마다 힘든 것 같아 속상하다가도 위대한 작가들의 글도 실은 피와 땀을 바쳐 나온 것임을 알게 될 때는 위로가 되곤 하지요.

<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

- 최명희, [혼불], 작가의 말 중에서

정교한 문체와 뛰어난 묘사력으로 존경받고 있는 최명희 작가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는 새기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또, 문단의 거목 한승원 작가는 글 쓰는 과정을 어린 시절 학교와 집을 오가던 험난한 여정에 비유해 놓기도 했네요. 읽기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멀고 먼 길을 걸어서 다녀본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고향 집과 읍내 중학교까지의 길 35킬로미터를 내내 걸어서 왕래하곤 했었다. 가다 쉬고 또 가다가 쉬고, 등에 짊어진 양식 보따리에 든 반찬단지가 무거우면 이런저런 달콤한 생각을 하면서. 나루를 건너고, 칼끝처럼 날카로운 조개껍질에 발바닥을 찔리면서 갯벌 밭을 걸어가고, 강굽이와 산모퉁이를 돌고, 절망하면서 흐르는 땀을 씻고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고, 또 절망하면서 부르튼 발을 담가 씻고 가파른 재를 넘고 들판을 건너고…….

평생토록 소설을 그렇게 써왔다. 한 자 한 자 박아서 쓰고, 그 사물이나 사건을 표현하는데 알맞은 낱말 하나하나를 골라 쓰고, 더욱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하여 절망하고 또 절망하면서 >

- 한승원, [바닷가 학교] 중에서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작가들에게도 고역 인가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데 이 어려운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죠. 누가 작가랄 것도 없이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시대가 되었고, 글쓰기에 관심들이 많기에 수많은 교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이 알려주는 방법은 결국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입니다. 만고의 진리입니다. 많이 읽어야 내 안의 재료가 풍부해져 쓸거리가 생길 테고, 자꾸 써 보면서 훈련해 봐야 감각이 생기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글 잘 쓰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해도 그 바탕에 세상을 보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면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쓸 수 없을 겁니다. 나와 남을 따로 보지 않고, 남의 아픔을 같이 느껴줄 줄 알며, 작고 낮은 것을 살필 줄 아는 마음. 그런 사랑과 감성이 글 속에 담겨 있다면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이 될 것입니다. 온기가 담긴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요.

< 울려고 갔다가 / 울지 못한 날 있었다 / 앞서 온 슬픔에 / 내 슬픔은 밀려나고 /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

- 강현덕, '기도실' 전문

<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 그 못이 아니었다면 /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 …… >

- 나희덕, '못 위의 잠' 중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우는 한 여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 해 줄 수 있는 마음, 못 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아비 제비를 뜨겁게 바라볼 줄 아는 시인의 마음이 감동을 낳았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작은 것도 소중히 여겼기에, 기도실에서 우는 여인도 처마 밑 작은 제비집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제 아픔 같이 지켜보았기에 뭉클한 시어들을 건져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삼겹살 함께 싸먹으라고 / 얇게 저며 내 놓은 마늘쪽 가운데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뾰족하니 박혀있다 / 그러니까 이것이 마늘어미의 태안에 앉아있는 / 마늘아기와 같은 것인데 / 알을 잔뜩 품은 굴비를 구워 먹을 때처럼 속이 짜안하니 코끝을 울린다 / 무심코 된장에 찍어 삼키는데 / 들이킨 소주 때문인지 / 그 초록색 심지에 불이 붙었는지 / 그 무슨 비애 같은 것이 뉘우침 같은 것이 / 촛불처럼 / 내 안의 어둠을 살짝 걷어내면서 / 헛헛한 내 속을 밝히는 것 같아서 / 나도 누구에겐가 / 막 싹이 돋기 시작한 마늘처럼 조금은 매콤하게 조금은 아릿하면서 / 그리고 조금은 환하게 불 밝히는 사랑이고 싶은 것이다. >

- 복효근, '마늘촛불' 전문

삼겹살과 함께 먹는 마늘이 이렇게 훌륭한 시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씹어 삼켰던 마늘에서 시인은 마늘아기를 먹는 것 같아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알싸하게 퍼지는 마늘 맛을 마늘심지에 불이 붙었다고 비유하면서 시인도 이렇게 불 밝혀주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담아 만났기에 하찮은 마늘을 이렇게 숭고한 존재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 …… 아침의 한탄강은 부산하다. 일찍 출근한 청둥오리 떼들은 아침운동이라도 하는 듯 수시로 날아오르며 날갯짓을 한다. 물위에 앉아서는 세수를 하는지 연신 물속에 머리를 담갔다 뺏다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한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후루룩 날아오르면 모두 고개를 바짝 세우고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내내 그걸 반복하는데 그럴 때 마다 항상 똑같은 반응이다. 부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오른 청둥오리들은 땅에 내려와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먹이를 찾고 있다. 안쓰럽다. 그냥 편하게 먹으면 좋으련만 끊임없이 하늘과 강을 오르내린다. 긴장하며 쉼 없이 움직이는 청둥오리들을 보니 순간순간 어려움들을 겪어내야 하는 우리네 삶이 떠오른다. 삶이 긴장의 연속이다.

앞으로 나는 어디를 향해 가야하는 걸까? 쉼 없는 긴장과 부단한 날개 짓으로 삶은 이어지겠지만, 언젠가는 꿈을 향해 자유롭고 힘차게 날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 >

- 이한배 (유성구 평생학습원 글쓰기도힐링이다 수강생), 새에게 한 수 배운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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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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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한배
청둥오리를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담아 지켜보았기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밖에서 본 것이 다시 나의 이야기로 이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냥 스치듯 지나치면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 …… 스산한 겨울바람이 그녀의 가슴을 후려파고 있겠다 싶었다. 세상의 끝에 다가간 느낌일지 모른다.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슬픔 중의 하나는 부모나 형제가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부모와의 이별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인데, 피를 나눈 형제가 생각지도 않게 일찍 떠나면 그 비애와 허망함은 불에 데인 것처럼 깊이 남는다. 오빠를 하늘나라로 보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엔 상실의 아픔과 어디라고 하소연할 데 없는 원망이 먹구름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누나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도 누나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아픔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때로는 따뜻한 밥 한 끼가 힘이 되어 주기에 수업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어줍잖은 위로가 또 다른 아픔을 더할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공기 밥, 된장찌개. 김치. 이들도 분위기를 아는지 미안해하는 것처럼 조용히 냄새를 피웠다. 음식을 먹는다고 입 벌리고 닫는 소리, 씹어 삼키는 소리, 젓가락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크게만 느껴졌다. 무척 신경이 쓰였다. 음식을 먹는다는 감각은 이미 무디어졌고 침묵만이 무겁게 흘렀다

그녀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냅킨을 꺼내 말없이 건네주었다. 냅킨으로 눈물을 닦는 그녀는 주체 할 수 없는 슬픔을 참으며 목으로 연신 설움을 삼키고 있었다. 힘없이 가늘게 뜬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그래도 식사는 좀 하셔야지요. 한마디 해야 하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다. 마침내 입 밖으로 간신히 뱉은 말은 '인명은 재천'이지요, 달리 할 말은 없었다. …… >

- 김태열 (대전시민대학 행복한글쓰기 수강생), 한 끼의 위로 중에서.

오빠를 잃은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위로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밥을 먹는 것조차 미안해서 조용히 씹어 삼키는 조심스러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슬픔을 내 것처럼 생각하는 글쓴이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마음에 온기를 채워보세요.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작은 풀꽃의 흔들림에도 눈길 보낼 줄 알며, 초라하고 낮은 것에서도 고귀함을 찾을 수 있다면 글쓰기는 훨씬 수월해 질 겁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만난다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많은 글감들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이 어떤 이론이나 작법보다도 중요한 비결입니다. 그러니 먼저 세상을 보는 따뜻한 마음부터 준비해 놓으세요.

한소민 프리랜서방송작가, 대전시민대학 글쓰기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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