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어떤 신념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어떤 신념

  • 승인 2019-07-31 11:31
  • 신문게재 2019-08-01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아베
나이 마흔을 갓 넘긴 사내가 2층 발코니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군중을 바라봤다. 옆에는 자신의 사병조직인 '방패회' 회원 4명이 자위대 총감을 인질로 삼고 사내를 호위하고 있다. 일장기가 그려진 머리띠를 두른 사내는 운동장에 모인 자위대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했다. 전후 헌법 개정과 절대 천황제의 부활을 위해 함께 궐기하자는 내용이었다. 자위대원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사내는 자신의 말이 묵살당하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칼로 자신의 배를 깊숙이 찌른 다음 가로로 그었다. 할복자살이었다. 붉은 피와 내장이 쏟아져나오는 사내의 목을 방패회 회원이 일본도로 내리쳤다. 사내의 이름은 '미시마 유키오'. 일본의 우익 작가로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미시마의 이런 극단적인 행동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1960년대 유럽은 소위 '6월 혁명'으로 청년들의 정치적 이념이 분출한 시대였다. 일본 역시 격동의 시대였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전공투'를 비롯한 학생들과 천황제를 옹호하는 미시마의 철학적 논쟁은 유명했다. 미시마는 군국주의를 꿈꾸며 "일본의 얼을 유지하는 것은 자위대뿐이다. 일본의 피와 전통을 지켜야 한다. 너희들은 사무라이다"라며 천황에게 폭력과 관련된 절대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도 시대 무사도는 근대 일본 군대의 정신적 원류를 이뤘다. 무사도는 개인의 자유로운 주체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상급자의 명령에 의해 전체의 질서가 유지되는, 이른바 천황의 명령으로 균형이 잡히는 체제다. 일본군이 중일전쟁 때 난징에서 저지른 끔찍한 만행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자아를 상실한 채 상부의 명령을 받들어 100명의 중국인을 누가 먼저 베느냐하는 시합을 벌인 사건 말이다. 당시 일본 신문들은 젊은 군인들의 잔혹행위를 앞다퉈 신나게 보도했다.



일본인에게 폭력은 곧 미학이다. 사무라이의 칼과 벚꽃은 일본 정신을 상징한다. 동양에서도 보기 힘든 일본의 독특한 전통은 오리엔탈리즘에 젖은 서구인에게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켰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나 철학자 롤랑 바르트 같은 이는 일본 전통문화에 경도돼 찬양해 마지 않았다. 친구가 일본 지방 도시에 여행갔을 때의 느낌을 들려준 적이 있다. 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주택 구조가 집 안이 전혀 안 보이게 돼 있어 사생활을 중시하는 차원을 넘어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친절하며 사생활을 엄격히 구분하고 타인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그들이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며 아시아의 여러나라를 침략해 살육의 카니발을 저질렀다. 이것이 일본인의 '혼네(속마음)'였나. 일제 강점기를 겪은 나의 부모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며 치를 떨곤 했다. "아이고 못된 놈들, 집안 곳곳을 뒤지며 밥숟가락까지 뺏어갔단다. 징글징글헌 놈들여."

전후 피폐한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경제특수였다. 패망한 일본은 한국전쟁을 자양분 삼아 경제 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이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동안 한국도 고난을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경제보복을 가했다. 그들의 '혼네'는 한국이 치고 올라온다고 여겨 견제하려는 것이리라. 아베와 일본 우익세력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한국이 북한·미국과 평화 무드를 조성하며 존재감을 과시하자 자칫 동북아 패권 경쟁에서 자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한국을 찍어 누르기 위한 아베의 행보가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꿨던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혼에 병적으로 집착한 미시마와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 무서운 신념에 사로잡힌 아베의 그림자에 미시마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NASA 아르테미스 2호 발사, 한국 큐브위성 'K-라드큐브' 사출 성공… 교신 시도 중
  2. 영재고·과학고 의·치대 진학 감소세 "이공계 중시 정책 효과"
  3. [교단만필] 과학의 도시 대전에서, 과학교사로 함께 한다는 것
  4. 대전을지대병원, 환자와 보호자 위로하는 음악회 개최
  5. 교육부 라이즈 재구조화…"시도별 성과 미흡 과제도 폐지"
  1. 충남도,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추진
  2. 민주진보 세종교육감 '임전수 후보' 선출… 6자 구도 새판
  3. "직업환경 보건 지켜질 때 사고와 참사도 예방할 수 있어"
  4. [사이언스칼럼] 문제해결형 탄소 활용 기술
  5.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저널리스트 아카데미 운영

헤드라인 뉴스


또다시 단전위기 둔산전자타운…관리비 납부 갈등 봉합 `난항`

또다시 단전위기 둔산전자타운…관리비 납부 갈등 봉합 '난항'

전제자품 전문상가인 대전 둔산전자타운이 점포 입점상인 간의 관리비 징수와 집행 주체에 대한 갈등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전기요금조차 납부하기 어려워 또다시 단전 경고장이 게시됐고, 주변 상권 역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일 찾은 대전 서구 탄방동의 둔산전자타운은 입구부터 단전을 예고하는 안내문이 붙은 채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전기요금을 오랫동안 연체한 탓에 1차 복도와 편의시설부터 단전을 시작해 2차 엘리베이터와 급수용 그리고 상가점포와 사무실까지 단전에도 납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건물 전체에 단전이 이뤄질 수 있..

영재고·과학고 의·치대 진학 감소세 "이공계 중시 정책 효과"
영재고·과학고 의·치대 진학 감소세 "이공계 중시 정책 효과"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의·치대 진학률이 감소하고 있다.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함께 이재명 정부의 과학기술 중시 정책 기조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졸업한 학생들의 의대 진학이 2024학년도 대비 2026학년도 42% 감소했다. N수생을 포함한 수치로, 2024학년도 167명에서 2026년 97명으로 줄었다.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난 2025학년도엔 157명이 의대에 진학했..

대전 원도심, 문화로 다시 숨 쉬다…도시재생과 예술의 결합
대전 원도심, 문화로 다시 숨 쉬다…도시재생과 예술의 결합

대전 원도심은 오랜 시간 지역 문화예술의 뿌리 역할을 해왔지만, 도시 확장과 함께 문화 인프라가 신도심으로 이동하며 점차 활력을 잃어왔다. 공연장과 전시시설, 문화공간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역시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대전시가 원도심의 역사성과 문화 자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도시재생과 예술을 결합한 '3대 특화 문화시설' 조성을 통해 원도심을 다시 문화 중심지로 복원하고, 일상 속 문화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사업이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벚꽃 활짝…대전에 봄 왔네 벚꽃 활짝…대전에 봄 왔네

  • 고유가에 운행 포기 속출 고유가에 운행 포기 속출

  • 대전 도심을 푸르게 대전 도심을 푸르게

  • 버스와 트램의 장점 살린 3칸 굴절차량 도심 주행 버스와 트램의 장점 살린 3칸 굴절차량 도심 주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