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빠의 독립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아빠의 독립

전유진 편집부 기자

  • 승인 2019-08-01 11:40
  • 신문게재 2019-08-02 18면
  • 전유진 기자전유진 기자
전뉴진
다섯 살 터울인 동생에게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휴대전화 속 아빠를 아빠 또는 아버지라고 저장하지 않고 감히 이름 석 자 그대로 '전상철'이라 저장한 걸 확인했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이유를 다그쳐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로 대견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아빠가 아닌 전상철로 살아가는 게 맞잖아. 우리는 다 컸으니 아빠도 아빠 인생 살아야지."

일례로 회사 생활을 하지 않는 할머니는 이름을 불릴 일이 거의 없다. 할머니의 이름은 그저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쓰이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택배 아저씨라도 이름으로 할머니를 찾으면 화들짝 놀라시는 눈치다. 엄마, 아빠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엄마, 아빠는 대부분 그냥 엄마, 아빠 혹은 누구 엄마, 아빠로 불린다. 몇 년 뒤 퇴직이라도 하시면 아예 이름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집에서 나와 산지도 10년이 넘었다. 떨어져 산 세월만큼 부모님과 멀어지고 어긋나기만 했다. 가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라도 걸면 이상하게 대화가 삼천포로 센다. 결국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싸움 비스무리하게 끝날 때가 많다. 그러니 통화가 짧아진 지 오래됐고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졌다. 그분들이 퇴근 후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나이가 들면서 그간 무엇을 얻었고 잃어 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아빠는 늦잠을 자거나 드라마 보는 걸 타박했다. 하지만 요즘 나대신 아빠가 할머니와 드라마를 챙겨본다. 할머니는 아빠가 슬픈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도 한다. 하루는 아빠가 아침에 전화했다가 내가 뚱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부모님은 변했다. 그런데 변했다는 게 약해졌다는 의미라서 슬프다.



가끔 부모님 눈이 침침해서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하시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더 늦기 전에 받은 걸 돌려드리고 싶다. 우리를 키우면서 부모님은 너무 많은 걸 포기했다. 내가 혼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만큼 부모님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나라도 알아주고 응원해준다면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오늘부터 엄마, 아빠 대신 이름으로 불러드려야겠다.

돌이켜보니 누군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다가온다는 건 나름대로 평탄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부모님께 그런 존재감을 되찾아 주고 싶다. 물론 평소 말하는 것처럼 딱딱하게 부르면 안 된다. 귀여움을 약간 섞고 길게 늘여야 한다. 상철씨이이이이이~.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찾아 누군가의 아빠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전유진 편집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