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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작가 |
이 곳에서 북스테이 독서토론 시간에 순창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면서,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을 돕는 협회의 사무국장 일을 맡아 재능기부와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귀농작가인 김재석 작가(52)를 만났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리야드 연가>를 들고 찾아온 김재석 작가와 파파실 언덕 숲길을 산책하며, 자연주의를 가득 담은 그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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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김재석 작가 |
그는 '제3회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1억 원 고료 당선작인 장편 판타지 소설 <풀잎의 제국>의 저자이자 제7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을 수상한 장편 범죄스릴러 소설 <식스코드>의 작가이기도 하다.
요즘 대중소설의 흐름이 순수문학에서 장르문학 쪽으로 이동하면서 김재석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 그의 작품 폭은 넓어서 제1회 해양문학상 동화부문에 당선됐고, 당선작은 <마린걸>이란 청소년 장편소설로 재탄생해 제7회 한국안데르센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올해 교보문고의 스토리공모전 본선까지 진출한 작품이 추천을 받아 장편동화책 <로봇개 스카이>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어린이 독자에서 어른 독자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두루 작품을 쓴다.
그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심신이 지친 도시인에게 전하는 청량감 가득한 귀농 이야기, 웹툰, 웹소설이 부상하면서 순수문학의 시대를 지나 장르문학으로 흐르는 세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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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순창으로 귀농해서 시골살이를 한 지 5년 차에 들어서네요. 1000 평 정도의 땅에서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주경야독한다고 해야 하나요. 주로 밤에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 부산에서 부산경상대학과 경성대학교 겸임교수 일을 할 때도 밤과 주말을 활용해서 글을 썼어요. 제 나이 사십 후반에 어떤 계기도 있었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환경을 확 바꿔버렸죠. ‘자연주의’로 말입니다. 어떤 분은 저더러 '시골 아재'라고 말하더군요(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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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야드 연가>(2019년 9월, 부크크 펴냄)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통합검색사이트 'daum'에서 작가들을 위해 만든 '브런치(brunch)'라는 작품 연재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 연재를 마무리하고 소설을 냈죠. 로맨스 소설이긴 한데 장르소설만을 지향한 것은 아니고, 순수소설의 기법도 가미되었죠. 순수소설의 심리묘사와 장르소설의 빠른 전개, ‘케미(남녀궁합)’ 가득한 캐릭터를 그리면서 '5줄마다 한 번씩 쿡쿡 웃음 짓게 하고 말 거야' 하며 '밀당'과 '재미'를 담았죠. 이야기는 80년 대 사우디 리야드중앙국립병원에 해외 파견되어 젊은 날을 보낸 제 아내의 러브스토리가 담겨있어요. 저하고의 사랑이 아닌 이국적인 사우디 왕자와…(쿡쿡). '젊은 날, 누구나 가슴 앓는 애틋한 사랑 한 알 품고 살지 않았는가' 이게 주제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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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저를 만나기 전이니까, 만난 후라고 해도 어쩔 수 없고요. ‘다른 늑대가 당신 마음 채가면 안 돼!’ 하는 마음으로 썼죠(하하하). 책 앞 장에 'This book is a gift for my wife' 라고 했는데 오직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물하고 싶었네요. 제가 좀 ‘로맨틱 가이’거든요(하하하). 그렇다고 개인의 일화만 담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외화벌이를 위해 열사의 나라 중동으로 떠났던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서 개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메꾸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었던 면도 있어요. 멋있게 말하면 '개인들의 삶이 쌓이면 드러나는 역사가 된다'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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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브런치'에 '詩골살이'라는 시골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와 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시골 사는 담론을 풀어가려고 시작했죠. 사실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도시가 훨씬 낫죠. 제가 40대 후반에 시골로 갔는데 제 나이가 젊은이 취급을 받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상태예요. 한마디로 친구하자고 할 사람이 없어요. 제가 있는 마을도 귀농인이 없다면 10년 안에 소멸 될 거예요. 저는 집을 제 손으로 짓는 것부터 시골 사는 담론을 풀어가고 싶었어요. 아마 도시인의 로망 중 하나가 시골에 별장 같은 집을 짓고 주말 텃밭 가꾸기가 아닐까요.
제가 시골살이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는 거죠. 지난 소설들이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서 썼다면 이제는 어떤 이(너, 당신)의 삶 속에 담긴 진실과 소망, 해학 어린 이야기를 찾아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네요. 나태주 시인의 살 떨리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표현처럼 '기승전 너(당신)'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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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은 뭔 별장을…, 단지 위화감 들지 않게, 시골 분들의 삶과 동화될 수 있는 촌스러우면서도, 촌티(?)나지 않는 집을 지으려고 했죠. 지붕을 보통 삼각지붕으로 하는데 저는 특이하게 X자 지붕을 해서 지붕이 엇갈리게 만들었어요. 제 친형이 지붕을 보고 도덕경 48장에 나오는 문구로 붓글씨를 써서 액자를 만들어 주셨죠.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시중(時中)'
'학문은 배울수록 더해가고, 도는 닦을수록 덜어낸다. 그 역동적 균형'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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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릇엔 뭘 담을까
해 뜰 무렵 나와 저물녘까지
똑딱 뚝딱
집을 짓다 되물었다.
한 쪽에선 쌓고 쌓다
한 편에선 마음 내려놓는다
엇갈림(X)
한 집에 든 두 생각
삶을 대하는
-브런치 연재 詩골살이 3화, 내 집을 내가 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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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내려놓는 삶과 균형감을 이루는 게 시골살이의 목표죠. 그 균형감각을 찾는 게 제 철학이고요.
그런데 처음 시골 와서 3년간은 땅을 사고, 제 손으로 집을 짓고, 블루베리 농장을 꾸리면서 다른 벌이를 못하다 보니 여유 자금이 바닥이 났죠. 균형감각을 유지 못하고, 과유불급(過猶不及)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 마음은 초가삼간에서 붓으로 이랑을 매고, 글 농사를 짓는 거였는데…(하하하).
투자할 곳은 많고, 생계 걱정은 되고, 나무는 언제 자라나 싶고…. 그때 도시에 사는 선배가 집들이 선물로 저에게 보내준 나무 액자가 눈에 들어왔죠.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뒤로 가지 않는다'(김재석 작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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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을 걷다
진흙 발가락 뿌리에 고여오는 溫氣
한걸음, 한걸음
느림 步마다
수천 갈래 모세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붉은 벼꽃이 피고 진다
논길을 걷자
바삐 뛰지 않아도
길은 4천 년 농부의 知慧로
생명의 싹을 틔우기에 넉넉하니
동서남북,
실루엣 빛 노을 속으로,
흙뿌리로……
그 한 잔털 위를 걷자
-브런치 연재 詩골살이 2화, 논길을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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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다’란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제 앞에 무수한 길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두 부류의 삶을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멋진 말로 잘 표현해 주었죠. ‘편집증’과 ‘분열증’(하하하). 경력을 쌓고 쌓아 자기 길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의 상황을 예민하게 살피면서 순간순간에 모든 것을 걸며 끊임없이 도망치는 사람이 있죠. 저는 제 자신이 그물코 안에 갇힐 수 없는 작은 물고기인 걸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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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조정래, 이문열, 황석영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시대는 지났겠죠. 저희 또래의 청춘들이 즐겨 읽었던…. 그래도 순수소설의 맥락은 이어질 거니까 시대가 지났다기보다도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거죠. 워낙 영화나 TV, 웹소설 플랫폼 쪽에서 공모 상금도 많이 걸고, 콜이 많다 보니…. 저도 제 작품이 소설책으로서의 인기도 바라지만 2차 저작물로 옮겨가기를 더 바란 면도 있어요. 일종의 '원 소스 멀티 유스(one-source multi-use)' 라고 하는데 하나의 작품이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으로, 게임으로 다양하게 퍼져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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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9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5년 했어요. ‘일본공학원’이란 학교에서 방송미디어를 전공했는데, 일본유학을 하면서 일본적인 색채가 물씬 묻어나는 드라마나 소설에 관심을 많이 가졌죠. 제가 유학할 당시에도 너무나 다양한 장르의 TV드라마가 제작되고 있었고, 소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으로 한국도 순수문학만이 아닌 장르문학 쪽으로도 흐름을 타겠다는 생각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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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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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부산 출생.일본공학원 방송미디어학과 졸업.동아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부산경상대학교, 경성대학교 디지털콘텐츠 제작 겸임교수 역임. 일본 Sony 방송장비 전문 설비, 교육업체 '루트앤 루트' 연구소장.
2007년 제1회 해양문학상 <바다로 간 거북, 토리> 동화 당선
2009년 청소년장편소설 <마린걸> 청어람주니어 펴냄
2009년 한국안데르센아동문학상
<별박이 왕눈잠자리의 하늘여행> 금상 수상
2011년 제3회 1억고료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풀잎의 제국> 문학수첩 펴냄
2013년 제7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식스코드> 낙산재 펴냄
2019년 브런치(다음) 연재 장편소설
<리야드 연가(戀歌)> 부크크 펴냄
2019년 출간 예정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본선 진출작 <로봇개 스카이> 장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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