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운동회 날 얻은 평생 교훈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운동회 날 얻은 평생 교훈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0-02-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사본 -GettyImages-a9301545
게티 이미지 뱅크
지금도 어린 시절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 때의 운동회가 생각나곤 한다.

오랜 세월 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마도 내 인생관과 가치관 형성에 밑거름이 된 요체이기에 놓칠 수 없는 회상이리라.

그 시절 내가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운동회 전날이나 소풍 전날은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꼭 그런 행사가 있기 전날은, 날이 궂을까봐 자다가도 일어나 몇 차례씩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고 들어오는 것이 일쑤였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고 설레던 운동회 날이 다가왔다.

그 날을 그토록 눈이 빠지도록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달리기를 좀 잘했기 때문에 100m릴레이나 400m계주경기에서 1등하여, 우쭐하는 마음으로 공책 몇 권을 주는 상을 받아 보고 싶어서였다.

또 하나 이유라면 워낙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제삿날이나 명절날에만 볼 수 있었던 광천 김으로 어머니께서 점심 김밥을 싸오셨기 때문에 그걸 먹고 싶은 생각으로 골똘해 있었던 것도 이유였다.

만국기가 푸른 하늘 아래 펄럭이는 것만 보아도 가슴은 뛰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주변에 군락으로 피어 있는 코스모스의 향기가 코끝에 와 닿는 느낌이었는지 코를 씰룩씰룩하면서도 얼굴은 마냥 해맑은 표정으로 들떠 있었다.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운동회는 학생들에게 흥미 있는 놀이와 경기를 통해서 협동심이나 질서의식, 애교심을 길러주고 학부모들에게 어린 자녀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여드리는 행사라는 것이 틀림없었다.

운동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펼쳐지는 자모경기와 릴레이는 운동회 날의 하이라이트로서 제법 볼만한 것들이었다.

자모 경기에 이어 릴레이 경기 응원을 하느라 운동장 트랙 주변은 학년별 반별로 앉아 있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응원을 하면서도 그 시선은 릴레이 선수 하나하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모든 경기가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목청이 터져라 "청군 이겨라", " 백군 이겨라"의 응원소리와 함성으로 운동장이 떠나갈 듯했다.

나는 결승 400m 계주경기 주자 일번으로 출발선에 서 있었다.

회상에 잠기노라니 운동회 날 100m 릴레이에서 내가 1등으로 월등히 앞서 달렸을 때는 박수도, 함성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400m 계주에서 1등으로 달리다가 넘어졌다. 벌떡 일어나서 사력을 다해 달렸다.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응원의 함성에 운동장이 떠나갈 듯했다.

나는 그날의 함성과 응원의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넘어졌다 일어나 뛰는 순간 "상선아, 힘내라!", "괜찮아! 괜찮아!"하는 소리가 운동장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전교생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 제일가는 눈길이었다.

1등으로 달릴 때는 박수소리 하나 없더니, 넘어졌다 일어나 달리는 발걸음에는 박수 응원 소리가 천지를 흔들며 따라왔다.

천지를 흔드는 응원과 함성에 힘이 났다. 나는 더욱 힘을 내어 거리를 줄여가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았으면 1등자리를 지켰을 텐데 넘어지는 바람에 6명 중 4등을 했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 뛰지 않았더라면 꼴찌를 했을 것이다.

나한테 깨달음이 왔다. 넘어지지 않고 1등자리 지키는 것보다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았다. 우리 인생살이 할 때에도 이런 정신력으로 좌절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을, 넘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었던 400m계주. 바로 그 경기에서 배운 것 같다.

어떤 난관에도 굽히지 않는다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도 여기서 터득한 것 같다. 운동회 날 얻은 교훈이 내 인생관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난으로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때까지 악전고투(惡戰苦鬪) 속에 용기를 잃지 않고 고학했던 것도 운동회 날 얻은 교훈 덕분인 것 같다.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때 듣던 그 함성 그 응원의 박수 여운의 위력인 것 같다.

키가 작아 난쟁이란 소릴 들어가며 멸시 조롱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도 운동회 날 얻은 칠전팔기(七顚八起),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 덕분임에 틀림없다.

밤잠 못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루 4파트 아르바이트에, 힘들어 코피를 흘리면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운동회 날 얻은 평생교훈의 위력임이 틀림없다.

아니, 내 반쪽 같은 아내가 세상을 떴던 절망 속에서도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아 내 살붙이를,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것도 그 설레던 날 얻은 평생교훈 덕분임이 분명하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뛰다가 넘어져 일어나는, 사소한 일로, 박수 받고, 응원 받고 ,거기서 얻은 교훈으로 의지의 투쟁으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운동회 날 얻은 평생 교훈'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뛰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아니, 그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어찌 남의 것이라 할 수 있으랴!

지금 이 순간도 지구촌 도처에는 역경의 늪에서 허덕이고 갈등하며 좌절하고 절망하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많이 있다.

너와 나의 우리 모두 양지가 그리운 이들이여!

넘어지고 깨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힘찬 걸음으로 음지를 면해 보자꾸나!

칠전팔기(七顚八起),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등에 지고, 추운 겨울 이겨내는 불사조가 되어, 꽃피고 화창한 봄날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보자꾸나!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 이번 주말 흐리고 전국에 강한 비…다음주 소나기 가능성
  2. 대전 RISE 첫 성적표 나왔다… 최대 17억5000만원 차등 지원
  3. 환경단체 "대전시 효과 없는 준설만 거듭"…실효성 있는 재해 방지책 촉구
  4. 세종충남대병원 '최승원 병원장' 취임… 행정수도 거점 병원 노크
  5. [2026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질문으로 사고를 키우고 AI로 미래를 열다
  1. '월명수 판매 혐의' 정명석 첫 재판서 부인… 검찰 "한병에 판매가 40달러였다"
  2. 소리를 눈으로 보는 에스엠인스트루먼트, 반도체·가스공장 안전제품 생산
  3. 충남대병원 간담췌외과 김석환 교수, 국제학술대회 최우수 구연상 수상
  4. [사이언스칼럼]듀얼유스 방산테크, 우주를 경제안보 인프라로 재편하다
  5. "내년 정부 필수의료 회계 신설… 대전도 '지방 공공보건 특별회계' 만들어야"

헤드라인 뉴스


[인터뷰] 박수현 당선인 "도민 의견 담긴 수첩 3권, 3톤처럼 무거워"

[인터뷰] 박수현 당선인 "도민 의견 담긴 수첩 3권, 3톤처럼 무거워"

박수현 충남도지사 당선인은 지방선거 기간, 도민 염원과 바람을 수첩에 빼곡히 적었다. 도민 간담회 등 현장소통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다 보니 어느새 수첩은 3권으로 늘었다. 박 당선인은 "수첩 3권의 무게가 3톤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수첩에 도민의 엄중한 명령이 담긴 만큼, 압박감과 무게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박 당선인은 도민의 명령을 단순히 무겁게만 느끼는 것이 아닌,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선거용 구호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에서 통(通)하는 충남 준비위원회 구성도..

許, 재검토 공언했는데…정부 긍정평가 0시축제 존속 기우나
許, 재검토 공언했는데…정부 긍정평가 0시축제 존속 기우나

대전 0시 축제 존속 여부를 둘러싼 지역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민선 8기 이장우 시장의 대표사업으로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허태정 당선인이 재검토를 공언했지만, 최근 이 축제를 둘러싸고 부쩍 달라진 기류 때문이다. 정부가 0시 축제의 관광·상권 활성화 등 0시 축제에 대해 일부 긍정평가를 내놓았고 무턱대고 폐지했다가 외교적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안팎에선 0시 축제를 아예 폐지하는 것 보다는 축제 간판을 바꾸거나 축소·개편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지역..

공사판된 대전 도심, 트램 개통 미뤄지나…與野 책임 공방 재점화
공사판된 대전 도심, 트램 개통 미뤄지나…與野 책임 공방 재점화

2028년 말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던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 일정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 28년 만의 착공으로 본궤도에 진입한 듯 했지만, 토지보상 지연과 시운전 기간 연장, 수소트램 기반시설 문제까지 줄줄이 드러나며 2030년 개통도 장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민선 9기 인수위에서 공식화되며 여야는 또다시 네 탓 공방에 나선 모습이다. 18일 취재에 따르면, 대전시는 최근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당초 목표였던 2028년 말 트램 개통이 사실상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