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의 지역프리즘] 험지 못 간다고 전해라~

  • 오피니언
  • 최충식 칼럼

[최충식의 지역프리즘] 험지 못 간다고 전해라~

  • 승인 2016-01-13 14:07
  • 신문게재 2016-01-14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험지론과 평지론이 맞물린 정치판은 마치 무슨 병법서를 펼쳐놓은 것 같다. 절[寺]이 떠난 것으로 비유되는 DJ계와 친노계의 사실상 결별로 험지는 더 늘고 있다. 오자병법(吳子兵法)에는 대부대를 거느렸으면 평지를 택하고 소부대를 운용하려면 험지를 차지하라고 조언한다. 열세일 때 비단길에서 전면전을 벌이면 낭패로 이어진다. 비대칭 전략이 있어 언제나 꼭 맞지는 않다. 정치에서도 종종 그런다.

아직은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는 전략이다. 승산이 적은 험지인 영·호남은 극소수 예외적인 사례가 있으나 피차 이벤트성이다. 험지는 또 도처에 존재한다. 가령 대전시교육감 출신으로 정치판에 갓 입문한 김신호 전 교육부 차관이 출마하게 되면 신설이 유력한 '유성갑', 3·4선 의원이 포진한 유성을과 서구갑, 그리고 서구을 어느 지역이건 말하자면 험지가 되겠다.

충청 험지가 영남 험지, 호남 험지보다 덜 험하다고 인식될 뿐이다. 새누리당에는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서울 강남권을 빼고도 험지는 가변적이다. 진박, 탈박이 엇갈리고 야권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의 스펙트럼이 나뉘면 더 그럴 것이다. 산과 산 사이의 좁은 애(隘)가 있고 산과 절벽으로 꽉 막힌 조(阻)가 있으며 가파른 산비탈인 험(險)이 있다. 험지라도 자세히 보면 결이 다르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자기방어용 험지도 있을 수 있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수도권 차출론을 겨냥해 “여기(청주 상당)가 험지인데 어딜 갈 수 있냐”고 되물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대구 수성갑이 험지라며 지역 사수 의지를 굳힌다. 최원식 의원은 더민주를 탈당하며 “험지 출마를 자초하는 결정”으로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한다. 험지가 열세에서 치열한 경합으로, 박빙의 의미로 널리 확장돼 쓰인다.

용례가 '랜덤'이다 보니 용도 외로 곧잘 변질된다. 현역 교체론이나 견제용으로 비쳐지는 험지 공방 역시 관심거리다. 그런가 하면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얼굴 좀 알려졌다고 아무 지역에나 나가면 부끄러운 발상”이라며 선거구민과의 신뢰를 들먹였다. 지역구가 부산 중·동구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험지 출마를 하라면 하겠다며 조 전 수석이나 불출마 선언한 강창희(대전 중구) 의원과 다른 포즈를 취한다.

험지 차출론은 이래저래 기득권 버리기, 전형적인 등 떠밀기, 중진 퇴진론이 혼재하고 공천권 갈등 성격을 띠어간다. 스윙보터(부동층 유권자)가 향배를 가르는 충청권은 3자 구도로 바뀌면서 모두가 모두의 험지가 될 수 있다. 야권 분화 가속화로 '아군'이 갈 수도, '적군'이 올 수도 있는 교지(交地)가 특징이다. 제후의 땅이 세 나라에 연접해 앞서 취하면 천하를 얻는 손자병법의 구지(衢地) 같은 곳이 충청권이다.

거듭 밝히지만 일단 안방 같은 평지나 양지는 적다. 험해서라기보다는 '밭'이 달라서다. 충청권 야당의 경우,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변재일 의원을 제외하고는 친노 좌장 격인 이해찬 의원이 있고 범친노 성격이나, 깊이 들어가면 다층적이다. 영·호남과 달리 다선의원을 수도권 험지에 보내고 죽 떠먹은 자리처럼 얼른 채워지지도 않는다. 잘 싸우면 살고 잘못하면 죽는 사지(死地), 그 멀고 험한 곳에서 생환하면 화려한 부활이지만 정치 초년생들에게는 싸우다 전사하라는 말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강요하는 쪽과 강요당하는 쪽에서 '니가 가라, 하와이' 식 살벌함마저 감지된다. '험지 못 간다고 전해라~'는 '백세인생' 버전까지 나온다. 정치가 오자병법 가르침대로 죽을 각오를 한다고 반드시 살지는 않지만 험지 특화, 평지 특화가 석 달 남은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인 것만은 확실시된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