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코너’를 기억하십니까?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본보의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 독자들을 위해 서비스됐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우리말 속에 담긴 유래와 의미를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출간한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게재됐었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추억의 코너를 되살려보기 위해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시즌 2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 MBC 무한도전 중 '망나니'로 분한 하하. |
우리는 성질이 아주 못 된 사람을 가리켜 ‘망나니’라고 부른다. 이 말은 옛날 죄인의 목을 베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에서 유래되었다.
옛날에는 큰 역적이나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포교가 잡기는 하여도 포청에서 처리하였고, 그 외 사소한 죄를 지은 사람은 포도대장捕盜大將이 즉결 하도록 되어 있었다.
과거 형벌에는 다섯 가지의 오형이 있었다.
첫째, 대벽大辟으로 사형死刑에 처하는 것.
둘째, 궁형宮刑으로 남자를 거세去勢하는 것(이것은 생명만 붙여주고 씨를 받지 못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셋째, 월형刖刑으로 발꿈치를 베는 것(행동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넷째, 의형劓刑으로 코를 베는 것(특히 파렴치범에게만 시행함으로써 누구나 이 사람을 보면 파렴치범임을 알게 하였다).
다섯째, 자자형刺字刑으로 바늘 수십 개를 묶어서 이마를 꼭꼭 찌른 다음 먹물을 넣는 것(절도범에게만 시행하여 전과자임을 밝혔다).
▲ MBC 무한도전 중 '망나니'로 분한 하하. |
옛날에 포교가 좀도둑을 잡으면 자자형에 처한 뒤에 내보내고, 훔친 물건이 많은 절도범이나 강도는 포도대장에게 올리어 포도대장이 즉결로 사형을 처하게 되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장소는 지금의 광화문전화국 아래 종로길이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은 망나니 또는 회자수劊子手라 했다. 이 망나니는 절도 전과 2범과 3범으로서 사형에 처해야할 사람을 특별히 용서하여 포청 옆 전옥에 가두어 두고, 사형할 일만 생기면 이들을 불러내어 목을 치게 하였다. 이 망나니는 도적들의 사형만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적과 기타 사형수의 형을 모두 집행했던 것이다.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는 양쪽에 자루를 박은 작도인데, 길 중간에 거적을 펴고 나무토막으로 사형수의 목을 괸 다음 망나니의 큰칼로 목을 자른다. 그 칼은 날이 서 있지 않고 길기만 하지만 망나니들이 후려치는 작도에 목이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에는 망나니에게 술과 고기, 밥 등을 마음껏 먹게 한 다음에 형을 집행시킨다. 옛날에는 국가에서 옥에 갇힌 죄수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사서 먹어야 하거나 집에서 가져다가 먹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죄수 가운데 집이 없거나, 친척이 없는 사람은 포교나 포졸, 또는 지금의 교도관인 옥사장이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기에 바빴다.
집도 없고 친척도 없이 오래 갇혀있던 망나니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곤란하다가 별안간 술, 고기, 밥 등을 실컷 먹게 되면 “흥, 사람 죽일 일이 생겼군! 나에게 한밥을 먹이게” 하며 좋아했다.(*여기서 ‘한밥 먹는다.’란 뜻밖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까닭 없이 무엇이 생긴다는 뜻이다.
조선조 말에 죄수의 사형을 집행하려면, 평소 겨우 끼니를 때우던 망나니에게 먼저 음식을 잘 먹인 다음에 맡은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때 망나니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는 것을 ‘한밥 먹인다.’라고 했다. 이 말은 누에에게 마지막으로 잡힌 밥, 즉 마지막으로 먹는 밥을 ‘한밥’이라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거기서 유래된 것인 듯싶다.)
▲ MBC 무한도전 중 '망나니'로 분한 하하. |
그 뒤 포교들 사이에서도 생각지도 않은 음식이 생기면 “우리도 망나니인가? 한밥을 먹게” 라는 말이 유행했고, 민간인들 사이에도 차츰 퍼져나가 죄를 지어서 까닭 없이 먹을 것이 생기면 ‘한밥 먹는다.’ 라는 속설도 생기게 되었다.
사형 집행장에는 포청의 종사관이나 감참관이 베개를 높이 괴고 앉았고, 그 앞에는 포교와 포졸들이 삥 둘러서 있으며 그들의 뒤편에는 구경꾼들이 빽빽하게 서서 구경을 했다.
옥사장이 망나니를 데리고 나오면 그는 작도를 휘두르면서 미친 사람처럼 “히히히” 하고 웃으면서 손을 벌리고 군중 앞에서 돌아다닌다. 그러면 그때 군중들이 엽전을 그의 손에 던져준다. 이때 감찰관이나 옥사장이 속히 집행하라고 호령을 하나 망나니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돈을 얻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날만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아량을 베풀어준다. 얼마 뒤에야 망나니가 사형수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어 목을 베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단칼에 베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을 치고 짓이겨 죽을 사람을 몹시 괴롭힌다.
그 때 사형수의 친척이 있으면 망나니에게 속히 죽여달라고 돈을 주며 애원한다. 이것을 ‘속참행하’ 라고 했다.
망나니는 이때 행하行下 돈이 많으면 속히 죽여주고, 적으면 수십 번을 짓이겨 죽였다. 형 집행이 끝나면 곧바로 포졸이 망나니를 잔뜩 결박한 다음 다시 옥에 가둔다. 이것은 망나니가 그 흥분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사람을 해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망나니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돈밖에 몰랐다. 때문에 뒤에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을 망나니라 부르게 되었고 그 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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