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추억의 코너를 되살려보기 위해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시즌 2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 영화 군도 중 백정 역을 맡은 하정우 모습 |
백정이란 백장이라고도 부르는 조선시대 천민계급에 붙였던 명칭이다.
조선시대에 가축도살, 수육판매, 버들고리 등을 만드는 천민계급을 높여 불평을 없애고 또 쉽게 부려먹기 위해 거짓 병정이라는 명칭을 관에서 내린 호이다.
여기서 백白은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뜻을 지닌 말이고, 정丁은 ‘호정戶丁’, 정인丁人이라는 뜻으로 백정白丁은 정호丁戶가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
‘정호’란 고려시대에 16세에서 59세까지의 민정民丁, 장정 중에서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던 사람을 가리킨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신문화연구원). 즉 지금으로 말하면 병역의무를 수행할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백정은 보통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못 받는 계층의 인물들이었다.
이와 유사한 말로 쇠백정이나 백정질이라는 말이 있는데 쇠백정은 소를 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며, 백정질은 소나 개, 돼지 등 짐승을 잡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백정은 고려시대부터 재인 혹은 화척이라 불려왔는데 1423년(세종 5) 10월에 백정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이 붙었다. 실록 기사에 따르면 ‘재인’, ‘화척’이 본래 양인인데 그 직업이 천하고 호칭이 달라서 백성들은 이들을 모두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보고 그들과 혼인하기를 꺼려하니 그들을 백정이라 고쳐 부르자고 제의한 이조의 안을 왕이 수락하였다고 한다(강만길, 선초백정고).
1894년 갑오경장의 선언에 따라 법제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고는 해도 차별적인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23년 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형평사’를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인권회복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신분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이후라고 봄이 타당하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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