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살롱]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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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살롱]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다

[백영주의 명화살롱] 바스키아_흑인들의 역사

  • 승인 2016-11-30 00:01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흑인들의 역사>, 1983, 바스키아
▲ <흑인들의 역사>, 1983, 바스키아


거리의 낙서를 지나친 일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눈 여겨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하는 의미 없는 내용이거나 외설적인 그림과 단어들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 의미심장한 낙서를 마주치기도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을 드러낸다. 낙서는 바라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그들의 마음속에 어떠한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예술의 가능성을 확보한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예술도 그렇게 시작했다.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는 등 미술에 소질을 보인 바스키아는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다니면서 예술적 감각을 길렀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낸 바스키아는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 펑크족과 힙합, 브레이크 댄스 등의 영향을 받아 10대 특유의 반항의식을 거리의 낙서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세이모(SAMO – SAME OLD SHIT의 줄임말)라는 그래피티 그룹을 결성하여, 맨허튼의 외벽을 낙서로 채워나간 것이다. 이후에는 뉴욕의 현대박물관 앞에서 티셔츠와 엽서에 그림을 그려 넣어 팔기도 했다.

▲ <무제(복서)>, 1982, 바스키아
▲ <무제(복서)>, 1982, 바스키아


그가 그린 작품의 주요 키워드는 첫째 ‘인종’이었다. 특히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모진 역경을 이겨낸 여러 흑인 스타들을 작품 속에 그려 넣었다. 이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왕관’을 함께 그려 넣었는데 이는 이후 하나의 아이콘처럼 굳어져 바스키아 작품의 특징으로 남게 되었다. 바스키아 작품의 두 번째 키워드는 ‘죽음’이었다. 그의 초창기 작품으로부터 그가 1988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상처받고 우울한 인물들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유명세에 따른 인간관계의 무상함, 갑작스런 앤디 워홀의 죽음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흑인들의 역사>에는 바스키아의 주요테마인 ‘인종’과 ‘죽음’이 모두 잘 녹아있다. 그는 아프리카 암벽화에서 모델을 구해 캔버스로 옮겨냈다. 바스키아는 자신의 시각 어휘를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원과 의미를 지닌 로고와 상징들을 찾아내서 작품 속으로 옮겼다. 이 작품은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되어있다. 좌측 패널에 있는 두 개의 아프리카 가면에서 원시성, 또는 원시적 예술의 기원이 드러나는데, 더욱이 눈이 움푹 들어가고 치아를 드러낸 표현은 죽음을 암시하는 부두교 매장 의식을 환기시킨다. 중앙 패널에는 거대한 광경을 뜻하는 스페인어 EL GRANSPECTACULO가 씌어있고 고대 이집트인의 낫 모양의 배를 차용한 초승달 모양의 노란 배가 있다. 흑인들의 역사에서 거대한 광경이라는 단어와 배라는 이미지는 흑인 디아스포라를 암시한 것이다.

▲ <무제(슈거 레이 로빈슨)>, 1982, 바스키아
▲ <무제(슈거 레이 로빈슨)>, 1982,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는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광기 어리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미술사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낙서’라는 당대의 비예술적 행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나 비판을 엮어 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예술’과 ‘비(非)예술’의 장벽을 허무는 돌파구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의 장벽도 허물었으며 금전적 가치, 죽음과 관련한 그만의 시적 문구 등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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