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96. 59년 왕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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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96. 59년 왕십리

천안역과 봉명동

  • 승인 2017-04-08 00:01
  • 홍경석홍경석


“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 옛사랑을 마신다 ~ 정 주던 사람은 모두 떠나고 서울 하늘 아래 나 홀로 ~ 아 아, 깊어 가는 가을밤만이 왕십리를 달래주네 ~”

김흥국이 부른 <59년 왕십리>다. 59년은 김흥국이 태어난 해이며 그의 고향은 서울이다. 따라서 비록 고향은 다를지언정 그와 나는 동갑의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1959년생은 올해 나이가 딱 59세다. 고로 환갑이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세금 안 붙는다고 나이만 먹었지 가끔은 ‘허투루 인생’인 나 자신을 돌아보면 헛살았다는 자괴감도 없지 않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기에 점심에 아내와 순대국밥을 사먹었다. 그러자니 어렸던 시절 찾았던 ‘순대의 메카’ 천안 병천장이 기억의 화면에서 상영의 필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민(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해 겨울방학이었다. 옆집의 전기다리미 월부장사 아저씨가 용돈을 준다는 꾐에 빠져 함께 병천장에 갔다. 털털거리는 시골버스에서 내려 병천장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도록 다리미를 단 한 대조차 팔지 못한 아저씨로 인해 종일 쫄쫄 굶어야 했다. 등에 짊어진 다섯 대의 다리미는 더욱 육중한 무게로 피로를 가중시켰다. 뱃가죽이 등에 가서 붙은 듯 그렇게 너무나 배가 고프다 보니 심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근처 난전의 순대를 훔쳐서 달아나고픈 충동까지 일렁거렸다.

당시의 그 절박함은, 마치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주인공인 20대 후반의 과부 언례(이혜숙 분)처럼 어린 자식들 때문에 차마 죽지 못하고 뭐든 다 하는 그런 수준의 고통의 극치였다.

얼추 밤이 되어서야 고작 한 대의 다리미를 판 아저씨가 사주신 순대국밥을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 병천장의 다른 이름은 ‘아우내장터’라고 한다. 자그마치 300년 역사를 간직한 이 시장은 두 줄기의 하천이 한 목으로 모여 어우러진다는 뜻의 병천면(竝川面)에 위치한다.

또한 유관순 열사의 “대한독립”을 외쳤던 성지(聖地)로도 유명하다. 예부터 천안은 국토의 중심도시로 사통팔달의 육로가 연결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우내는 지형적 이점 때문에 향시(鄕市)가 발달했다고 전해진다.

다른 장터도 마찬가지겠지만 병천장 역시 이곳을 찾으면 먹을거리를 지나칠 수 없다. 병천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순대골목이 즐비하기로도 유명하다. 병천 순대는 당면과 야채를 다져 넣은 일반 순대와 달리, 소와 돼지 내장에 채소와 선지를 넣어 만든다고 한다.

이 순대에 돼지고기와 내장까지 더해 만든 국밥 또한 별미임은 물론이다. 주머니가 썰렁한 서민들도 이 순대국밥에 소주 내지 막걸리 한 병을 추가하면 그 어떤 강추위조차 십리 밖으로 달아난다.

<59년 왕십리>에서 김흥국은 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고 했다. 또한 옛사랑까지를 마시건만 정작 정을 주던 사람도 모두 떠나고 서울 하늘 아래 나 홀로 있어 외롭기 그지없음을 독백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도 이 노래를 듣자면 동병상련의 마음이 되어 다음과 같이 이 노래를 개사(改詞)하곤 한다.

“천안역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 옛사랑을 마신다 ~ 정 주던 사람은 모두 떠나고 천안 하늘 아래 나 홀로 ~ 아 아, 깊어 가는 가을밤만이 봉명동(필자의 본적지)을 달래주네 ~”

계절은 완연한 봄이건만 처량스레 흉흉한 가을밤 타령이나 하고 앉아있는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베이비부머 ‘꼰대’에 다름없다. 그래서 세월엔 장사가 없다고 했는가 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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