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106.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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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106. 커피 한 잔

그리움의 정물화

  • 승인 2017-04-19 00:01
  • 홍경석홍경석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다. 펄 시스터즈는 여성듀엣으로 배인순. 배인숙의 두 자매로 구성되었다. 1969년에 이 노래로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걸 그룹 최초로 가요대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예전엔 주로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일찍 가면 다방에선 소위 ‘모닝커피’라 하여 커피에 계란 노른자 하나를 동동 띄워서 주었다. 그러나 계란이 더 어울리는 차는 단연 쌍화차였다.

연애 시절, 하루는 아내가 나를 보려고 내 직장이 있던 O읍까지 왔다. 하지만 그날 따라 일이 많았던 나머지 나는 “곧 갈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그 다방서 꼭 기다려!”라는 말만 연발하면서 발을 굴러야 했다.

그녀(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다방에 들어선 건, 자그마치 다섯 시간도 더 지난 저녁 무렵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배고프지? 밥 먹으러 나가자.” 뿔이 잔뜩 난 아내는 투덜거리면서 셈을 치렀다. 한데 가만 보니 커피 한 잔 값이 아니었다.

“커피를 대체 몇 잔이나 마신 겨?” “여우 같은 다방 마담과 레지 아가씨들의 눈총이 여간해야 말이지, 그래서…….” 본의 아니게 석 잔이나 마셨다고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신 커피가 250억 잔이나 된다고 한다.

커피 전문점이 9만 개에 달하며 커피에 디저트까지 파는 가게까지 합하면 커피집은 자그마치 10만 개나 되는 셈이다. 바야흐로 커피집이 치킨집보다 많아진 시절이다. 회사 건물의 1층에도 커피집이 있다. 그렇지만 그 집 커피를 사 먹는 건 가뭄의 콩 나듯 드물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중늙은이인 나의 입엔 여전히 달달한 1회용 봉지커피가 더 맞아서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지도 10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커피를 처음 마신 사람은 고종 임금이라고 알려져 있다.

1896년 2월, 고종 임금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이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하는데 이 때 고종이 맛본 게 바로 커피였다나. 커피는 카페인에 의한 중독성 식품이기에 한 번 맛을 들이게 되면 자꾸만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된다.

이런 까닭에 짜장면 값보다 비싼 고급 커피도 부지기수이지 싶다. 평소 ‘자린고비’로 소문난 딸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커피라고 하면 이른바 브랜드 커피만 마시는 녀석이다.

오늘처럼 다시금 야근을 들어가는 날엔 회사 초입과 근처의 커피숍 서너 군데를 지나치게 된다. 그러자면 노트북까지 갖다놓고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무언가를 쓰거나 보느라 분주한 처자들이 쉬 눈에 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친구든 애인일지라도 설령 좀 늦는다손 쳐도 그리 타박하진 않을 듯 보인다. 마치 우후죽순처럼 기세가 등등했던 커피전문점 체인들도 포화상태라고 한다.

설상가상 편의점에서 저가의 원두커피까지 마구 공급하는 바람에 큰 돈 들여 창업한 커피 전문점 창업자들의 고민이 깊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내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아서 속을 까맣게 태웠었노라던 그 시절의 아내가 그리움의 정물화(靜物畫)로 다가온다.

비가 내릴 듯 구름이 꾸무럭거린다. 비가 오는 날엔 커피 맛도 더 좋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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