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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백 장군 영정 |
충화 어느 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 외에는 출생이 알려지지 않은 계백은 나당 연합군의 공격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지기 결사대 5천을 거느리고 나섰다. 그리고 최후의 전법을 선택했다. 서기 660년 음력 7월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상태에서는 사지즉전(死地則戰-孫子兵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25 때 아군이 낙동강에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구한 것도 바로 이런 정신의 소산이었다.
왜 굳이 처자까지 제 손으로 죽이면서 출정해야 했을까? 그 답은 삼국사기 권47 열전 계백조 “한 나라의 사람으로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당하게 되므로 국가의 존망을 알지 못하겠다. 내 처자가 적들에게 잡혀서 노비가 돼 그들에게 욕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쾌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구할 수 있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패자 쪽의 모든 것은 승자의 전리품으로 여겼다. 실제로 백제 멸망 후 소정방이 귀환할 때 의자왕과 왕자들과 대신 및 장군 88명, 백성 1만여 명을 잡아갔다. 이 백성들 가운데는 왕족과 고관의 가족들도 다수 포함됐고 이들은 적국에 가서 전리품으로 나눠져 상당수가 노비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마 출격 이전에 계백은 어두워진 백제의 운명을 예견하고 다진 비장의 결심이었다고 보여지는 바 그것은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에게 심리적 효과에도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절대 불리한 상황 속에서 품일이 아들 관창을 사지로 등을 밀어 넣은 것과 동일한 경우다.
계백의 결사대는 신라 5만여 군사와 4차례나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거듭된 패전으로 신라군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즈음 신라 장군 품일과 김흠춘은 극약 처방을 썼다. 각각의 아들 관창(官昌)과 반굴(盤屈)을 앞세워 백제군과 맞붙어 싸우다 죽게 했다. 어린 나이에도 용맹심 넘치는 관창의 모습에 탄복한 계백은 그를 살려 보내나 다시 생포되자 안타까이 여기면서 비로소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되돌려 보냈다. 적지로 몇 번씩이나 오간 두 소년인들 어찌 죽음이 두렵지 않았으랴.
한편 생각건대 계백의 입장에선 그들의 충정이 가상스러워 보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자기 손에 죽어간 아들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백제군의 패배는 어떤 이유를 붙여도 군사적 열세라는 원인을 넘기는 어려울 듯하다. 숫적으로 우세한 편에서 많은 군사를 풀어 방어 진지의 틈새를 이용, 의외의 곳으로 역습이 가능한 것이 고대 전투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어린 전사들의 피를 본 신라군들은 사기를 되찾아 백제군을 격파했고 그에 맞선 계백과 그 군사들도 최후 일인까지 밀려드는 신라군과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삶을 마쳤다. 이 황산벌전에서 관창과 반굴의 분전으로 전세를 뒤집었다는 것은 어렵사리 일궈낸 신라군의 승리와 활약상을 극대화시키려는 극적 반전 효과를 노린 기술(記述)자의 과장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그들의 죽음은 일단 극도로 저하된 신라군의 사기를 고취시켜 마침내 승리를 도출해 낸 일종의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는 처음부터 워낙 열세인 군사력과 그 외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이미 예견된 백제의 패배나 다름없었다. 흑치상지처럼 항복한다면 개인의 안일한 삶을 도모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 계백의 정신은 길이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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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계백장군 유적지.’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있다. |
현재 인근의 충곡서원(忠谷書院)과 부산(浮山)서원에 배향되어 그의 충성심이 기려지고 있다. 이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생명을 건진 상영과 충상은 뒷날 신라에서 벼슬을 받았고, 흑치상지는 당에 가서 벼슬을 하고 전공도 세웠건만 끝내는 모함에 의해 감옥에서 죽는 신세가 됐다.
‘벌곡(伐谷)’은 계백의 목을 친 곳, ‘가정골’은 그의 시신을 임시로 묻었다고 해석되는 ‘假葬골’의 변형’, ‘수락산’은 목이 떨어졌다는 ‘首落’의 의미라는 식의 전래 지명설화들이다.
이 전투와 관련되는 김유신과 품일 등의 신라 장수들의 이름은 뒷날 옹산성을 공격하여 백제 부흥군들을 궤멸시키는 데도 다시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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