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김치 먹고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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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문화칼럼]김치 먹고 갈래?

  • 승인 2017-09-13 10:29
  • 수정 2017-09-13 10:39
  • 신문게재 2017-09-14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김치를 먹다가 페르디난트 퀴른베르거라는 비평가 생각이 난다. 이 집 저 집서 주는 팔도 김치들로 사철 채워지는 집 냉장고에 낯선 김치가 들어앉아 정(情)으로 익고 있다. 정체 모를 김치를 먹다 보니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고 멍청해진 것 아니냐’는 환구시보(環球時報) 사설이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북핵 위기와 강대국 다툼 속에 개구리밥이 될 거라는 표현은 중국 중심적 시각의 저급한 언어폭력이다.

방자한 언론도발을 일삼는 이 신문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 사무실에 이 신문 있다”던 그 인민일보 자매지다. ‘중국산 김치 사먹고 돌았냐’라고 했으면 조금은 덜 분개했을지 모른다. 김치 종주국이 우리지만 작년 김치 수입액은 1억2149만 달러였다. 수입 김치 99%가 중국산이고 식당은 중국산이 장악했으니 김치를 예찬해도 시원찮다. 집필한 논설위원이 한국의 표상으로 이해한 김치, ‘김장문화’는 실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다.



그러나 신라를 뺀 한국 고대사를 중국사에 쑤셔 넣으려는 무개념으로 미뤄볼 때 김치도 영구히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이 등재되자 중국 단오제를 등재했다. 조선족 농악도 중국의 문화유산에 올랐다. 뒤이어 한국의 농악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렸다. 하늘초고추로 담그는 쓰촨 파오차이(泡菜)는 1300년 전에 한반도로 건너갔다는 김치원조론을 내놓고 기다린다. 중화사상이 바닥에 깔린 발상이지만 김치는 우리 것이다.

사진1
환구시보가 ‘김치 바보’ 망발을 쏟아낸 지난주 비슷한 시간에 ‘김치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됐다. 김치는 가짓수가 200가지가 넘고 누가 버무리냐에 손맛이 달라지는 김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능 보유자다. 하얀 속살 뽀드득 씻은 알몸의 여리던 가슴이 있는 김기덕의 김치, 골치 썩는 고부갈등도 한 사발 복용하기만 하면 위력적으로 퇴치된다는 공석진의 동치미, 붉은 양념과 부대끼며 뜨겁도록 애무를 했다는 정아지의 열무김치…. 입맛에 살맛까지 돋우는 김치는 정식 지정되기 전에도 국가무형문화재나 다름없다. 음식 이상의 정체성으로 대한민국을 환유(換喩)한다. 그것이 김치다.



사드 배치에 김치를 엮어 겁박한 중국 언론의 몰상식에 그래서 더 분개하는 것이다. 6차 핵실험 때는 침묵한 이 신문은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후 한미 합동훈련을 ‘한국이 술에 취한 듯하다. 손봐줄 필요가 있다’고 위협했다. ‘(한국이) 결국 미국의 바둑알로 전락했다’며 ‘한판 붙어보고 싶다면 상대해 줄 수밖에 없다’는 조폭 수준의 사설을 휘갈겼다. 이제는 우리의 원형질인 김치로 음식과 문화와 종교를 대놓고 힐난한다. 대한민국을 부평초에 비유하며 겁박한 사설에 비트겐슈타인 식의 ‘단순히 왕왕거리고 윙윙거리는 소리의 세계’와 ‘의미 있는 소리의 세계’로 분화시켜 본다.

그렇게 환구시보 논조를 분석하니 논리적 공간에 머무는 듯해도 왕왕거림이다. 우리들이 아는 모든 것, 단지 왕왕거리고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리지 않은 모든 것은 세 낱말로 말해질 수 있다고, 퀴른베르거가 그랬다. 발행 부수 200만부와 하루 1000만 클릭을 자랑하는 환구시보의 사설 같지 않은 사설은 “참 나쁜 사설(社說)” 세 낱말에 담을 가치조차 없다. 이런 말이 떠오른다. “김치 먹고 갈래?” 라면이던가?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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