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280.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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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280. 빈손

나도 늙었다

  • 승인 2017-10-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현진우빈손650
나는 전생에서 엄청나게 부죄(負罪)했지 싶다. 그랬기에 생모는 나를 낳은 지 불과 1년도 안 되어 집을 나갔다. 아무리 아버지의 상습적 주폭이 원인이었다곤 하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까지 버리고 가다니……!

따라서 어느덧 이순을 맞는 나는 지금껏 역시도 어머니를 용서하기 힘들다. 어머니의 영원한 가출에 따른 파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줄곧 1~2등을 질주했지만 돈이 없어 중학교조차 진학할 수 없었다.

그보다 급한 건 돈을 버는 것이었다.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아무데서나 풍찬노숙하는 아버지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조차 없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했다.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우리 두 부자는 굶어죽기 일보 직전에 당면했다.

하는 수 없어 구두통을 만들어 어깨에 메고 역전으로 나갔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개뼈다귀야?"라며 마구 두들겨 패는 구두닦이 '형'에게 몇 날 며칠을 시달리며 애걸복걸한 끝에야 겨우 손님의 구두를 다방 등지에서 벗겨서 찍어(가져)올 수 있는 소위 '찍새'의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는 때면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었다. 하늘만 올려다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그건 또한 수중에 돈이라도 지녔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급급했기에 우산장사를 병행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세월은 저벅저벅 잘도 흘러갔다.

느껴보지 못한 모정까지를 누릴 속셈으로 남들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돈이 없었기에 싸구려 반 지하 월세를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바로 옆방엔 나전칠기(螺鈿漆器) 공방(工房) 일을 하는 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온종일 자개를 깎고 가느라 분주했다. 그 바람에 반 지하의 공간은 그의 작업으로 인한 뽀얀 분진(粉塵)이 꼽꼽쟁이로 난무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아내가 임신의 낭보를 전했다. 그러더니 연일 기침을 하는데 불안감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내 귀한 아기, 그것도 첫 아들을 임신한 아내가 혹여 폐병이라도 걸린다면 그건 전적으로 무능한 나의 책임이었다. 어찌어찌 지상으로 탈출한 건 이듬해 봄이었다. 아들은 어려서 기관지가 약했다.

노파심일지는 모르겠으되 그건 당시 반 지하의 지독한 분진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아무튼 4년 뒤엔 공주님도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두 아이는 내 사랑의 모두였다. 선친의 생존 시 가장 싫었던 게 바로 술 심부름이었다.

돈도 안 주시면서 늘 그렇게 외상으로 사오라는 술은 그러나 동네의 구멍가게 주인이 줄 리 만무였다. 빈손으로 돌아가면 밤새 시달리는 게 지겨워서 남의 집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자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한 고통의 나날이 지독한 트라우마로 각인된 때문에 나는 지금껏 아이들에게 단 한 번도 술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친구와 지인들이 속속 '할아버지'가 되고 있다. 그들의 카톡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손자와 손녀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어 부럽다.

"검은머리 하늘 닿는 다 잘난 사람아 ~ 이 넓은 땅이 보이지 않더냐 (중략) ~ 있다고 잘났고 없다고 못 나도 ~ 돌아갈 땐 빈손인 것을 ~ 호탕하게 원 없이 웃다가 으랏차차 세월을 넘기며 ~ 구름처럼 흘러들 가게나~" 현진우의 히트 가요 <빈손>이다.

여전히 경제적 '빈손'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노라 자부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대상과 존재는 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기다. 어서 손자를 만나고 싶다. 나도 늙었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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