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57. 技와 氣의 융합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57. 技와 氣의 융합

  • 승인 2017-12-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순원이 네덜란드의 쉬뢰더씨에게 한국의 기(氣) 소개한 편지는 즉각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네덜란드에서 모두 함께 운명의 합일을 기다리며 각자의 길을 떠났다.

일본에서 출발한 마순원과 나리코, 그리고 한국에서 떠난 한국정신과학기술원의 방휘곤 원장과 박원순 박사, 드미트리는 사전에 파리 드골 공항에서 만나 네덜란드 행 비행기로 갈아타기로 약속했다.

순원은 드골 공항에서 방 원장 일행에게 나리코를 소개했다. 네덜란드 행 항공편으로 갈아탄 다섯 사람이 스키폴공항에 도착한 때는 이미 어둠이 대지에 내리기 시작했다. 11월 중순 암스테르담의 가로수도 낙엽이 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한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네덜란드.

역사라는 수레바퀴가 각각의 나라에 남겨놓은 발자취는 그 깊이와 폭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방원장을 제외하고는 아직 젊은 연구자들이라 그들은 역사에 대해 그리 깊은 회한이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허나, 바로 이 네덜란드라는 땅에서 순원의 아버지의 나라 조선의 임금은 밀사를 보내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 데 대한 항의를 헤이그 만국회의에서 주장하게 하였고, 이에 관한 회의 참석을 주선해 달라는 친서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다. 이준 열사는 러시아 공관을 거쳐 이곳 네덜란드에 러시아 공사 이위종과 함께 도착하지만, 밀사들은 회의장에도 못 들어가 임금의 명을 못 받드는 울분을 터뜨리면서 칼로 자신의 배를 갈라 자결을 하고 그 임금 또한 후에 독살을 당하고 만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운명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일본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였다. 나가사키 항을 통해 전해진 네달란드 상인들의 신지식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하며 선진국의 길을 걸었다. 나가사키는 서구 문물의 자유지대가 되면서 그 유명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미국인 장교에게 버림받는 비운의 일본인 부인 초초상. 나비부인.

세월은 흘렀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당시 네덜란드를 축출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네덜란드의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삼아 버렸다. 백인여성이라 하여 일본군 장교 전용의 위안부로…….

은원이 얽히는 운명의 오묘함을 한 시대의 인간의 잣대로 잘했다 못했다 함부로 단죄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쌓이고 쌓여진 인연들이 후에 어떻게 다시 나타날지 찰나같은 삶을 사는 인간의 지혜로는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인도에서는 카르마라고 했던가. 업(業)이라 불리우는…….

튜울립의 나라, 네덜란드.

히말라야 산속의 야생 튜울립은 지금의 것처럼 보기 좋은 꽃이 아니었다.

진달래만한 크기의 보잘 것 없는 튜울립이 이제는 꽃의 여왕이라 불리우며 오늘날의 그렇게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으로 탄생하게 된 것은 오로지 네덜란드 화훼기술의 개가였던 것이다.

튜라플리네스.

순원과 방휘곤 원장 일행이 라이덴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쉬뢰더 소장은 활짝 미소를 지은 뒤 먼저 순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멀리 동양에서 온 손님들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내밀었다. 색색의 튤립과 백합으로 만든 꽃다발이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튿날 순원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방휘곤은 라이덴 연구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쉬뢰더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이덴 연구소는 손님에 대한 예의와 연구의 노우하우에 대한 보안을 결코 혼동하는 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온 과학자들은 동양의 기(氣)를 이야기했다.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서양의 기(技)를 이야기했다.

쉬뢰더씨의 튜라플리네스에 관한 집착은 방원장이 보기에도 광적이었다.

"저는 꽃에 대해선 문외한일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습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새로운 과학적 방법에 의한 합성기술의 성공여부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쉬뢰더 소장님과 저는 관심의 방향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방휘곤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의 말은 비교적 솔직했다.

"저는 튜라플리네스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건 나의 필생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 원장님은 과학자이십니다만, 저는 예술가라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자기만의 솜씨로 작품을 그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지요."

바야흐로 방휘곤과 쉬뢰더의 기싸움이 보이지 않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색깔을 보다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물감이 있다면 그것도 스스로의 물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시겠습니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는 누가 물감을 만들었는지는 상관치 않습니다. 그 물감이 이곳 네덜란드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쨌든 저는 네덜란드의 꽃을 만들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물론 물감은 네덜란드의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나온 물감입니다. 다만, 새로운 물감인 것이 다를 뿐입니다."

"예를 들면?"

"기(氣)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기는 바로 이곳 네덜란드에 있지, 결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기는 네덜란드에서 자라나는 튤립과 백합과 또 무엇이라 하셨나요, 무슨 식충식물 말입니다 그 식물들의 기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튜라플리네스는 바로 이곳의 기를 이용하여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기를 이용하는 기술은 어느 나라 기술입니까?"

"한국입니다만,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저희들도 연구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공동으로 연구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곳에서 개발되는 것이지 한국의 기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공동연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쉬뢰더 소장님의 생각은 존중합니다. 저는 저희들의 새로운 기술로 독자적으로 연구 개발할 생각입니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표현이 맞겠지요. 하지만 그러기 전에 쉬뢰더 소장님을 뵙고 직접 의사를 듣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 원장님의 말씀은 매우 코스모폴리탄적이시군요. 우리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자부심을 갖는 모습이지요. 한국정신과학기술원의 연구원들과의 공동연구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리코에게 라이덴 연구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식물학 박사 제프. 그는 나리코를 보자마자 동양의 신비가 바로 여기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리코가 식물과 대화를 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언어를 플라워텔리스코프에 입력하고 있다는 말에 까무러칠 정도로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나리코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인지 제프는 나리코와 함께 시간을 자주 만들고자 했다. 제프의 그러한 행동에 순원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나리코는 그러한 순원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프가 해주는 여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식물이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야 저도 알고 있었지만,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요. 식물이 감정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물론 그것을 화학적 반응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하여튼 식물 간에도 확실히 친소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네이션과 난초는 사이가 안 좋아서 같이 심어놓거나 꽃꽂이를 하면 둘 다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장미와 백합은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수명이 길어지지요."

제프는 나리코에게 궁합이 맞는 식물들에 대해 길게 설명을 이어갔다. 제프에 따르면 국화는 하도 강해 어떤 꽃도 함께 어울리기가 힘들다. 만일 국화와 달리아를 함께 화분에 심으면, 달리아꽃은 힘을 못 쓰고 시들어버린다.

등나무가 느티나무를 감으면 느티나무는 죽지만, 소나무를 감으면 서로 잘 어울려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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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에 머루나 포도가 감겨도 서로 잘 어울리며 번성하고 포도는 알이 굵어진다. 벚나무 아래에서는 클로버가 못살고, 호두나무는 주위에 있는 모든 식물의 개화결실을 방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또 침엽수속의 활엽수는 죽어도 활엽수 속의 침엽수는 잘 살아간다.

이런 설명을 늘어놓은 뒤 제프는 나리코에게 질문했다.

"저는 이러한 영양분이라고 할지, 화학반응이라 할지를 늘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대화가 가능하다면 왜 그런지 물어보고 싶군요."

"글쎄요. 정말 왜 그럴까요. 재미있군요."

"동양에서는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인 줄 안다면서요. 어느 여왕이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없는 그림을 보고 모란은 향기가 없다고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고 있다면서요. 사실입니까?"

"그래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닌가요?"

"아니고말고요. 모란은 향이 얼마나 강한데요.

다만, 꽃마다 사귀는 벌과 나비가 따로 있죠. 어느 꽃에는 반드시 어느 벌이라는 정해진 관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2만 여종의 벌이 있는데, 이 벌들은 모두 자기가 찾아가는 꽃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 벌이나 아무 꽃을 찾아가지는 않지요.

꽃들이 벌을 유인해서 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을 허니문 가이드(honeymoon guide)라고 합니다. 그 길은 사람 눈에는 안보이고 벌 눈에만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공진화(共進化) 현상이라 부릅니다만, 여왕님이 보신 그림에는 모란이 사랑하는 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계속)

우보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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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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