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2018년 무술년이라는 '상자'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최충식 문화칼럼]2018년 무술년이라는 '상자'

  • 승인 2017-12-27 09:55
  • 수정 2017-12-27 12:58
  • 신문게재 2017-12-28 22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사진
2018년 무술년을 앞둔 시점이다. 즉흥적이지만 상자를 보면 막 떠오르는 사람 몇몇이 있다. 첫째는 상영 중인 영화 '위대한 쇼맨'의 모티브가 된 피니어스 바넘이라는 쇼 공연가다. 누군가는 연출, 연기, 노래, 스토리, 대사가 탄탄한 이 영화를 벨기에 초콜릿 상자에 비유했다. 실제로 그 기발한 사고가 상자 뚜껑이라도 열고 튀어나올 것 같긴 하다.

바넘은 오래전부터 학설 속에 남아 있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믿는 속성을 바넘효과라 한다. 믿는 자에게 새해 운세나 오늘의 운세가 잘 맞는 이유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잘나가던 바넘의 쇼를 보러온 인파로 천막이 터질 지경이 되자 천막 끝에 '출구(Egress)' 팻말을 세웠다. 관객들은 '이그레스'에 대한 즐거운 상상까지 하며 출구로 모여든다. 잠시 후 그들은 천막 밖에 나가 있었다. 안과 밖 구별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는 다른 차원의 그 천막을 상자로 치환해도 좋다.



두 번째 떠올린 상자는 열린 상자다. 대흥동성당 성탄전야미사에 축하차 참석해 십자성호를 긋던 스님, 나의 바쁨과 무관심이 섭섭하기도 하련만 '하느님이 아끼는 보석,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카드를 보내준 여성 목사님이다. 연말 공연에서 그룹 워너원 멤버들은 객석 한가운데의 큼지막한 선물상자에서 등장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선물인 적이 있었던가.

그 연장선에서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가슴으로 듣는 귀를 틔워준 옛사람, 마음이 숨쉴 앙증맞은 창문을 뚫어준 고마운 인연이 잊히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3분 27초 동안은 오래된 논리와 낡은 용어의 정의를 가둔 상자에서 풀려난다. 저장, 성숙, 담음, 가둠, 내줌, 버림― 상자의 윤회에 갇힌 시각과 시선을 박차고 나오게 해준, 바로 세 번째 사람이다.



네 번째 상자는 미국의 저명한 의사이며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와 연관돼 있다. 그의 일생은 광물과 금속으로 표상된 원소기호였다. 1번 수소(H), 2번 헬륨(He)에서 출발해 백세인생을 살면 100번 페르뮴(Fm)이다. 어느 생일에는 81번 탈륨(Ti) 원소를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색스는 마감 시간이 임박한 인생이 이미 전부터 발원했음을 4번 베릴륨(Be) 조각을 보며 관조하듯 알아차린다. 84번째 폴로늄(Po) 생일을 못 맞이할 것을 예감하기도 했다. 암으로 82번 납(Pb) 원소까지만 생애를 채운 색스처럼 1년을 뚜렷이 표상하는 상자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다음 다섯 번째가 안톤 체호프의 상자다. 정확히는 단편 '상자 속의 사나이'의 벨리코프라 해야 맞다. 주인공은 자기만의 상자에 앉아 그날이 그날인 무미건조한 생을 산다. 옷차림, 시시껄렁한 짓거리와 칙칙한 대화, 카드놀이가 모조리 상자요, 부대끼며 어리석은 언어를 섞는 것도 상자다. 살아서는 상자 속에 웅크리다가 죽어서는 영원한 상자(관)로 돌아간다. 쓸쓸한 인간군상이 읽힌다.

끝으로 포장을 풀지 않은 2018년 새해 역시 말하자면 하나의 선물상자다. 자연의 패턴 인식도, 삶의 양식을 규정하는 척도인 시간도 상자 같다면 조금은 막연하겠지만 상자 밖에 있으려는 의지만으로 상자 밖에 있음이 가능하기에 안심해도 될 것이다. 이밖에 무수한 상자들이 있다. 마지막 상자는 각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선물일지 아닐지도 자신 몫이다.
최충식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2.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명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서머나침례교회,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연말 맞아 이웃사랑 후원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