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65. 쉬뢰더의 죽음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65. 쉬뢰더의 죽음

  • 승인 2018-01-1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낙 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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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나고 있던 어느 날 나리코가 순원이를 찾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이상해요. 무슨 일이라도 없으면 좋겠어요."

며칠 동안 말이 없던 나리코가 순원에게 진지하게 말을 하였다.

"왜요?"

"느낌이 그래요. 아버지는 어느 일에 몰두를 하면 침식을 잊어가면서 일을 하세요. 제가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는 것은 그런 때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길어요.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는 것이 무언가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돼요."

"나리코 씨의 일은 마무리돼가고 있습니까?"

"아버지 생각하니까 일이 손에 안 잡혀요.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 다시 오더라도 일단 일본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엄동설한에...."

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효심이 가슴 가득히 전해져 왔다.

순원은 가슴이 뜨끔했다.

어머니는 하루 빨리 오라고 했는데도 뭉기적거리고 있는 자신은 뭐라는 말인가. 가끔 어머니에게 메일과 전화를 한다고는 하지만, 나리코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효심에 순원은 내심 얼굴이 달아오르며 부끄러워졌다.

'나리코와 같이 있고 싶어서…'라고 하는 내심을 굳이 부인하면서 공부 때문에 아직 못 간다고 스스로 강변해 온 것은 아니던가?

"순원씨 저랑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왠지 혼자 가고 싶지 않군요. 혹 실례가 안 된다면"

순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저도 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가는 길에 일본에 들렸다 가죠. 괜찮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아버지가 불현듯 보고 싶어지는 순원이었다.

쉬뢰더씨는 못내 섭섭하다는 표정이었으나 곧 한국에서 만나자는 약속으로 대신하고 둘은 서둘러 헤르메스미어 시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항공편을 알아 보기로 했다.

운명이란 그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인가, 노크도 없이.

베토벤은 운명이란 그렇게 노크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라며, 운명 교향곡 첫악장을 '똑똑똑똑'이라는 노크 소리로 열었었다.

쉬뢰더씨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바로 순원과 나리코가 일본으로 떠나려고 항공편을 알아보던 그 이튿날이었다.

겨울도 지나고 봄기운이 시냇물의 살얼음에서부터 살포시 느껴지는 2월의 중순 어느 날이었다.

쉬뢰더씨가 연구실에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다.

발견한 연구원은 제프였는데, 아침시간에 예정된 예이츠와의 산책이 없자 예이츠가 히힝거리며 크게 울어 연구실에 가 보았더니 쉬뢰더씨가 쓰러져 있었다는 목격담을 전해왔다.

충격적이고 놀라운 소식이었다.

병원 응급실로 옮기고 나서 곧 쉬뢰더씨는 허무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경찰이 라이덴 연구소를 에워싸고 곧 폴리스라인으로 연구실이 페쇄되었다. 순원과 나리코는 항공편 예약을 끝내자마자 벌어진 이 기막힌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줄을 몰랐다.

우선 한국의 아버지 마탁소에 알리는 것이 급했다. 그리고 방휘곤 박사에게도 메일을 통해 비보를 전했다.

경찰의 사인 규명이 시작되었다.

최초 목격자 제프의 여러 가지 증언이 있었다고 한다.

라이덴 연구소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튜라플리네스의 합성에 성공한 쉬뢰더씨가 그렇게도 행복해 했건만, 청천벽력이었다.

제프의 증언은 일반 사람으로는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튜라플리네스는 성장속도가 일반 꽃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덕분에 쉬뢰더씨는 마음껏 튜라플리네스의 양산체제를 만드는 온실 정비에 정열을 쏟고 있었다. '기'를 활용한 합성의 양산체제를 말한다.

점점 튜라플리네스의 본 수는 늘어갔다.

그리고 그는 이 꽃의 향기를 돋보이게 하여 프랑스의 드 본느 향수회사와 향수제작에 관한 MOU를 체결하고자 서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구실에서 향내를 맡았다.

범인은 바로 향내였다.

동물성 가스가 향에 포함되어 있었다.

줄기에서 배출되는 가스 향은 매우 향기로왔지만, 자극적인 그 향에는 매탄가스를 비롯한 동물들의 체외 배설에 포함되어 있는 독소가 함유되어 있었다는 것이 제프의 조심스러운 설명이었다.

튜라플리네스는 독초였다.

아름다운 그 꽃에는 동물의 탐욕이 숨어 있으면서 그 탐욕을 발산하기 위한 독향을 끊임없이 품어내고 있었다.

그 양이 적을 때에는 관계가 없지만, 양과 향에 노출된 시간이 많아지면 독소는 그만큼 체내에 축적되고 마는 것이었다.

사실 그 징조는 초기에도 감지되었었다고 한다.

쉬뢰더씨가 가끔 두통이 있다며, 혹시 꽃향기에 취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튜라플리네스의 향은 이제까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향이자 치명적인 독이었다.

제프는 연구소에 몰려온 기자들에게 말했다.

"쉬뢰더 박사님은 튜라플리네스라는 꽃의 프랑켄슈타인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였지만, 그 창조는 자연의 질서를 깨버리고 만 것입니다. 생명을 창조하면서 생겨난 또 다른 질서가 그를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범인은 바로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그의 아리따운 딸 튜라플리네스였습니다. "

실로 충격적이었다.

조용히 제프의 기자 설명을 지켜보던 순원과 나리코에게 키가 큰 남자 한 사람이 살그머니 다가왔다.

"마순원씨입니까? 한국에서 온 연구원?"

"그렇습니다."

"저는 헤르메스미어 경찰관 푈더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쉬뢰더씨의 죽음 때문입니다. 튜라플리네스 연구에 관여하셨죠. 쉬뢰더씨의 사인이 명백히 밝혀질 때 까지 유감스럽지만 순원씨는 출국하실 수 없겠습니다. 일본인 나리코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말입니다."

순원과 나리코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튜라플리네스의 탄생에 관여한 연구진의 한 사람이었던 만큼 회피할 수는 없었다. 연구과정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푈더는 말은 점잖게 하였지만, 같이 온 경찰관들은 곧 순원의 양팔을 강하게 끼었다. 나리코와 함께 순원은 차에 태워졌다.

순원과 나리코에게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쉬뢰더씨의 사망과 관련하여 네덜란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후 대사관을 통해 한국의 마탁소에게 전해졌다.

순원의 소식이 전해지자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조직위 사무실의 마탁소는 사색이 되었다.

까무러치게 놀랄 아내 송원희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마탁소에게 불길했던 꿈이 주마등 같이 떠올랐다.

바로 그 꿈.

안면도에서 꾸었던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작년의 그 꿈.

튜라플리네스가 자고 있는 자기의 성기를 빨았던 꿈, 그 때 놀라서 튜라플리네스의 꽃 줄기를 쳐 내자 줄기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던 그 꿈.

아내 원희의 꿈도 기억이 났다.

순원이 천국 같은 낙원에서 꽃들에 둘러싸여 손과 몸이 빨려 들어가더라는 그 악몽.

튜라플리네스.

너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순원이는?

마탁소는 순원과 꽃 박람회와 쉬뢰더씨와 튜라플리네스의 그림이 마음속에 오락가락하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쉬뢰더씨가 급사하고 마순원은 출국금지가 되고 튜라플리네스는 전시가 불가능하게 돼버리고 말았다.

네덜란드 농무성과 보건성의 라이덴 연구소에 대한 검사는 철저하였다.

그들은 결론이 빨랐다.

튜라플리네스의 합성기술은 자료로 보관하되, 어떠한 경우든 튜라플리네스의 외부 반출은 금지하고 지금까지 재배한 튜라플리네스는 검사관의 엄격한 입회아래 봉인 처분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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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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