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프]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 걸어간 길

  • 사람들
  • 인터뷰

[실버라이프]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 걸어간 길

서우평 명예기자

  • 승인 2018-02-22 08:01
  • 신문게재 2018-02-23 12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서우평 명예기자
2월 16일은 김수환 추기경 선종일이다. 2009년 선종하셨으니까 올해가 9주년인 셈이다. 87세로 생을 마감한 그 분의 마지막 순간은 어땠을까.

추기경은 짧지만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그에게 2008년 10월 4일 한 차례 위기가 찾아왔다. 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흡곤란,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은 것이다. 응급조치로 다음날 새벽 의식을 회복했지만 이후 가래 뽑아내는 일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식사량도 줄었고 밥을 먹게 되는 날이면 1시간 이상씩 시간이 걸렸다. 소화도 잘 되지 않았고 배변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갈수록 줄어들어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키고 싶었던 일까지 다른 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봐. 자네들에게 이런 모습까지 보이게 됐네. 이제는 약도 혼자 못 먹는 나약한 사람일세. 정말 미안허이…."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만 같아 마음 아파했다. 투병보다 더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의 십자가'였다. 갈수록 십자가의 무게는 더해왔다. 육체적, 정신적, 심적 고통이 깊어졌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고통은 '고독'이었다. 그는 옆을 지키던 고찬근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자네는 고독해 보았는가.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추기경은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목숨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어떠한 의학적 행위도 거부한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십자가를 안고 죽음의 섭리에 순종했다.

2009년 2월 16일. 향년 87세의 일기로 사제 김수환은 평생 양 어깨에 짊어지고 왔던 십자가를 내려놓는다. 입원한 지 159일만의 일이었다.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그 사랑을 이제 나누자고 항상 당부한 추기경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선종 18분 후인 오후 6시 30분 서울대교구의 공식 발표가 있었고, 8시 30분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앞에서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신부가 국내외 언론사 기자단 100여명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추기경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병원에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늘 '고맙습니다'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김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입니다."

이 시대를 걸어가는 모든 노인들에게 추기경의 마지막 간 길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우평 명예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4 금산무예올림피아드 임원 출정식
  2. [독자칼럼]국가 유산청 출범을 축하 한다.
  3. 2027 하계 U대회...세종시에 어떤 도움될까
  4. 월드비전 위기아동지원사업 전문 자문위원 위촉
  5. [인사]대전 MBC
  1. "내 혈압을 알아야 건강 잘 지켜요"-아산시, 고혈압 관리 캠페인 펼쳐
  2. 세종일자리경제진흥원, 지역 대학생 위한 기업탐방 진행
  3. 세종시 사회서비스원, 초등 돌봄 서비스 강화한다
  4. "어르신 건강 스마트기기로 잡아드려요"
  5. 선문대, 'HUSS'창작아지트' 개소

헤드라인 뉴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가 2024년 한층 나아진 여건에 놓일 전망이다. 2023년 홍수 피해를 입은 세종동(S-1생활권) 합강캠핑장의 재개장 시기가 6월에서 10월로 연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호수공원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상설 피크닉장'이 설치되는 건 고무적이다. 17일 세종시 및 세종시설공단(이사장 조소연)에 따르면 합강캠핑장 복구 사업은 국비 27억여 원을 토대로 진행 중이고, 다가오는 장마철 등 미래 변수를 감안한 시설 재배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하천 점용허가가 4월 18일에야 승인되면서, 재개장 일..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18민주화운동을 맞는 마흔 네 번째 봄이 돌아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80년 5월 민주화 요구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분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그동안 교내에서 머물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시위가 학교 밖으로 물결쳐 대전역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광주 밖 5·18, 그중에서 대전과 충남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민주화 물결을 다시 소환한다. <편집자 주> 1980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전개된 5·18민주화..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법원이 의대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했다. 다만 의대생들의 경우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료계가 재항고할 것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