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아트앤웹툰과'로 본 인문학의 위기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아트앤웹툰과'로 본 인문학의 위기

  • 승인 2019-04-10 13:41
  • 신문게재 2019-04-11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인문학
"저희 미술디자인학부는 하루아침에 미술디자인학부의 명칭을 아트앤웹툰과로 변경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왜 학생들 모르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는지 왜 몰라야만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아트앤웹툰과로 명칭이 바뀌면서 시각디자인과를 없애고 산업디자인과로 변경함에 따라 학교의 커리큘럼이 바뀝니다…." 배재대 미술디자인학부 학생회가 붙인 대자보다. 학교 측은 학령인구 감소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미술디자인학부'를 '아트앤웹툰과'로 변경하는 학제를 단행했다. 갑자기 통보받은 학생들은 "명백한 사기입학"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미술디자인학부 학생들 중 웹툰을 전공하기 위한 학생이 없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미술디자인학부로는 경쟁력이 없다. 폐과 등 구조조정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라고 강변했다.

대학의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취업이 안되는 학과는 통폐합하는 식으로 자구책을 써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은 통합하거나 폐지하고 실용학과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대학이 취업양성소가 되고 있다. 인문학은 쓸데없는 학문이 돼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지난해 1월 어느 방송에서 암호화폐를 두고 벌인 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제가 문과라서 죄송한데"라고 농을 던졌겠는가. IMF 위기를 겪은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불어닥치면서 자본이 헤게모니를 쥐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내가 아는 후배는 성공의 열망에 사로잡힌 사회 초년생이었다. 의욕이 넘쳐 뭐든 열심히 하는 후배가 대견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새파랗게 어린 사람이 출세지향적이어서 민망스러웠다. 그는 책도 자기 계발서만 읽었다.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투의 처세서 말이다. 순수문학 관련 책을 읽는 것은 한번도 못봤다. 실용주의 학문의 득세를 예고하는 순간을 맛본 씁쓸한 경험이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삶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란 철학자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과연 인문학 애호가 잡스다운 명언이다. 스티브 잡스는 신처럼 추앙받은 CEO였다. 잡스의 애플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은 완벽한 예술 퍼포먼스였다. 그의 검은 터틀넥 스웨터와 리바이스 청바지, 뉴밸런스 운동화 차림도 고도의 전략이었다. 그가 만든 제품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불렸다. 그 어떤 유명인사도 잡스만큼 청중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는 수익만을 추구하는 장사꾼 같지 않았다. 그는 영리했다. 그는 "애플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된 과학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청년시절부터 예술적이고 흥미로운 뭔가를 하고 싶었던 잡스는 일본의 선불교와 힌두교의 명상, 바흐에 심취했다. 그는 첨단 기술에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덧입혀 상업적 성공과 지적 권능을 가진 최고의 기업가로 이름을 남겼다.

이제 기업가는 단순히 돈만 버는 경영인이 아니다. 도덕과 지성을 갖춘 영웅으로 변모했다. 빌 게이츠, 안철수(한때는) 등은 사회 가치를 실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투기꾼에 불과한 워런 버핏이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세상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백화점 문화센터는 인문학 강좌로 북새통을 이루고 대학은 '인문학 최고위 과정'을 개설해 기업가들을 모신다. 자본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인문학 열풍이라니, 아이러니다. 기업의 CEO도, 대중도 인문학에 열광하는데 정작 대학은 어떤가. 인문학은 외면당하고 취업을 염두에 둔 실용주의 학과만 양산한다. 인문학은 부조리와 고독과 절망과 죽음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학문이다. 세월호 침몰, 플라스틱 쓰레기, 강원도 산불 화재는 우리에게 질문을 요구한다. 당신은 산불로 불탄 집 앞에서 가족의 추억이 사라졌다며 울먹이는 남자에게 공감하는가.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갈고 닦은 실력 뽐내는 세계 미용인
  2. 민주평통 대전 동구협, 한반도 평화공존 대내외 정책 모색
  3. 세종시 '상권' 고립무원…새로운 미래 없나
  4. 대전 진보교육감 단일화 미참여 맹수석·정상신 후보 "단일화 멈춰야"
  5. 석유 사재기·암표상 집중 단속… 민생물가 교란 범죄 뿌리 뽑힐까
  1. [사설] '차기 총선 통합론' 더 현실적 대안인가
  2. [세상읽기]'대전 3·8민주의거' 그 날의 외침
  3.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4. 345㎸ 입지선정위 논의 3개월 남아… 지역사회 우려 해소는 '제자리'
  5. [내방] 김도완 대전지검장

헤드라인 뉴스


무산된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선거 화약고 불보듯

무산된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선거 화약고 불보듯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이 사안이 6·3 지방선거 여야 최대격전지 금강벨트의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더욱이 행정통합 성공에 따른 논공행상이 아닌 실패로 인한 책임공방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커 휘발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따르면 통상 공직선거 한 달 또는 늦어도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전후해 각 당은 시도별 공약을 발표하기 마련이다. 올 지방선거가 6월 3일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5월 초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5월 21일께에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여진다. 충청권의 경우 여야 가릴 것 없이 이미 지역..

20년 숙원 해결 기대감 높였던 대전역세권 복합 2구역, 아직 첫 삽 못떠
20년 숙원 해결 기대감 높였던 대전역세권 복합 2구역, 아직 첫 삽 못떠

시행사가 사업설명회까지 열면서 착공의 기대감을 높였던 대전 역세권 복합2구역 개발 사업이 첫 삽을 뜨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중동분쟁으로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착공이 계속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2일 대전시와 지역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2월 예정이었던 대전 역세권 복합2구역의 착공이 연기됐다. 대전역세권개발의 핵심 사업인 복합2구역 사업은 대전역 동광장 주변 2만8391㎡ 부지에 1184가구 공동주택과 호텔·컨벤션·업무·판매시설을 집약하는 초고층 복..

`정부세종청사` 이전 흔들기 시도… 지역 정치권 규탄
'정부세종청사' 이전 흔들기 시도… 지역 정치권 규탄

인구 39만 명 벽에 갇힌 세종시. 2020년 중앙행정기관 이전기(1단계)도 미완으로 남아 표류하고 있는 현실. 행정 기능만 덩그러니 놓인 세종시의 정상 건설을 뒤흔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에 이어 올해 지방선거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의 이전을 공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김민석 총리와 행정안전부까지 나서 "추가 이전 계획은 없다"는 사실을 못 박았으나 선심성 약속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세종시 여·야 정치권에 이어 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장 임채성)가 12일 이에 대한 규탄의 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 개학기 등하굣길 ‘안전하게’ 개학기 등하굣길 ‘안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