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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자살예방센터는 2011년 국회가 자살예방법을 제정하면서 이에 따라 설립된 기관입니다. 현재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를 중심으로 국가자살예방행동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보고 듣고 말하기'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과 같은 생명지킴이 인증 프로그램의 보급을 담당해 지금까지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이를 수료했습니다. 매년 '자살예방백서'를 발행하고 있고, 연구개발팀에서 자살에 대한 통계분석과 정책개발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 민간단체와 네트워크도 함께하는 중요한 사업입니다. 미디어정보팀이 언론의 자살예방보도와 관련해 협력도 하고,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자살 시도자를 지원하는 응급실 기반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와 자살 수단에 대처하는 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자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참여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저희의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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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광스런 일이지만 저보다 열심히 활동하신 분들이 많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1998년부터 정신과 의사로서의 수련을 시작했고, 2007년부터 경희대병원에서 일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로서는 가장 괴로운 일이 본인의 환자를 자살로 잃는 일입니다. 1999년 처음으로 응급실에 오셨던 분이 눈앞에서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고, 2008년 고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사건 후 제 외래 환자를 처음 잃었습니다. 그 후 응급실에 온 자살 시도자는 우선순위에 두고 더 책임 있게 도우려 했는데 주치의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현실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자살 예방에는 개인의 노력과 함께 시스템이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1년부터 자살예방협회에서 '보고 듣고 말하기' 한국형 자살예방교육을 개발하는데 간사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직장인과 육군·공군·해군 버전 등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실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시범 사업을 제안하는 것을 시작으로 관련 정책연구를 맡아 미국과 일본,대만,홍콩의 자살예방기관을 조사하고, 정책보고서를 작성해서 우리나라 법과 제도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8년 국가자살예방행동계획이 발표되고,'국회자살예방포럼'이 생기면서 국무총리를 자살예방정책위원장으로 하는 법이 통과되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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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세원 교수는 저와 함께 고대 의대에 입학한 친구로 제가 정신과 1년 차를 할 때 이친구가 2년차로 100일간 숙식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응급실에 초진환자가 오면 우리가 이 분이 첫 번째 만나는 정신과 의사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설득이 안되면 몇 번이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라고 알려줬고, 4~5시간이 걸려도 여러 번 찾아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 친구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살았고, 이번에 많이 알려졌지만 진료를 할 때마다 전력투구했던 친구였습니다. 많은 환자와 보호자 분들이 이 친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같이 임상 강사도 했고, 이 친구는 성균관대로, 저는 경희대로 가서 자리를 잡은 후 자살 예방에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같이 했습니다. 사실 2018년 12월 31일에도 오전에 고인이 카톡으로 모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강의를 나눠서 해보자고 저에게 연락한 것이 마지막 연락이 되었습니다.
제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된 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고, 무엇을 할 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2019년 1월 2일 아침 유가족 한 분이 전화를 주셔서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차별과 편견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고인의 유지로 생각한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마땅히 할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발인을 하는 날 누구보다도 힘드셨을 어머님께서 '우리 세원이 바르게 살아주어서 고마워'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친구의 희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법과 제도로 친구가 가장 사랑했던 환자분들의 삶이 긍정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소망하고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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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온 질문 중에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정신건강을 관리하냐고 하셔서 저희도 힘들 때는 도움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희도 도움이 없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도 자신의 마음과 치료에 대한 슈퍼비전을 받고 있습니다. 힘들 때 도움을 받는 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언론인분들께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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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챌린지업 과정에 참여한 언론인들과 프레스센터에서 백종우 교수(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백종우 교수, 두번째가 필자) |
▲전혀 아니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해 정신과 실습 때 상당히 매력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졸업하고 인턴 때도 끝까지 과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외과에선 오라는데 저는 내과와 정신과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그때 정신과 선배에게 물으니까 농담으로 '아 그럼 정신과를 하는 게 좋겠다. 정신과는 고민하는 과니까' 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학생 때 워낙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사회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의대 공부에 별로 뜻이 없었습니다. 본과 2학년 때 지도 교수님이 저더러 실습을 나가 실제로 환자를 보면 또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고 격려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도 교수님 말씀대로 실제 환자를 만나게 되니 공부를 안 할 수 없고, 또 너무나 하고 싶어졌습니다. 임상 의사의 무지는 때로 '죄'입니다. 두꺼운 영문교과서를 챕터별로 잘라서 가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보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 일하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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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거였고요. 임상 의사로서는 환자분의 초대로 결혼식에 가 본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20대에 우울증 등 정신과 문제로 아픔을 겪었던 분 들 중 자살 시도를 했던 분들도 많은데 너무나 잘 이겨내시고 30대에 청첩장을 들고 오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누가 될까 싶어 조용히 본인과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맨 뒤에서 지켜보는데 이렇게 좋은 날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 맨 뒤에서 혼자 눈물 흘리는 게 이상해 보일까 싶어 숨었지만 그만한 보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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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살로 환자를 잃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담당 의사도 트라우마를 경험합니다. 머릿속에서는 '왜'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고, 내가 이렇게 했다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고 임세원 교수도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2년 차 때 자신만만하던 시절에 퇴원한 할머님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가시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밖에 환자는 밀려 있었고, 며칠 후 그분이 자살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인이 손이 아둔해서 정신과를 택했는데 머리도 아둔하다며 그렇게 괴로워했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것에 멈추지 않고 2011년 자살의 경고신호를 '보고',그들의 이야기를 '듣고',필요하면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말하기'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보고 듣고 말하기' 자살예방교육프로그램의 핵심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친구를 잃은 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는 겪지 않는 제도 변화가 저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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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 할 것 없이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입니다. 제가 미국 듀크대학에 연수를 갔을 때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친구들이 취업 전에 진단서를 받으러 오는 경우를 봤습니다. 다른 동료들도 경험했다고 하니 적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우울증이 있었는데 극복했다는 것을 첨부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20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편견이 줄었지만, 여러 편견 때문에 치료를 주저하다가 병을 키우고, 만성화되고, 사고가 나는 현실을 보면 편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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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어떤 연속적인 스트레스가 있을 때 고통을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고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최악의 선택입니다. 2017년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힘들 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높은 자살률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자살에 대한 대책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주변에서 이를 알아챈 사람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연결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 더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겐 치료를 연계하고, 경제적 어려움은 복지서비스에 연결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손잡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보고 대책을 실행한 나라들은 자살문제 해결에 성공해왔습니다. 우리나라 자살예방법 3조는 '국민이 자살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구조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절망에 빠진 이들이 먼저 구조를 요청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고 이 분들의 어려움을 '보고' 들어주며, 리더가 자살예방대책에 관심을 갖고 구조를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확고하게 보낸다면 자살은 감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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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부어의 기도문'이란 글이 있습니다. 저희 정신치료의 목표와 같은 글이기도 합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십시오' 라는 문장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은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꿈의 실현에 '전념'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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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텔라재단의 조재훈 대표란 젊은 친구가 있습니다. 본인이 어머니를 자살로 잃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는데 우연히 '우울증 갈라'라는 행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시,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아픈 사람과 유가족을 정말 따뜻하게 위로하는 행사였다고 합니다. 본인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친구는 아프리카를 7000km 정도 자전거로 달리는 이벤트로 모금을 시작해 지금 한국에서 여러 사람과 자살예방을 위한 이벤트를 멋지게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 회원의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지역사회가 참여하는데 너무나 목말라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이런 훌륭한 젊은 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 이벤트를 만들어 가는 게 저의 버킷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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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현병'과 관련한 여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현병에 대한 편견의 벽이 더 높아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처벌만 높이고 격리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차별 없이 스스로 조기에 도움을 받는 환경과 함께 위급할 때 안전을 우선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촘촘히 만들어나가야 환자도, 가족도, 국민도 모두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백종우 교수는 누구?
▲고려대 의대 졸.동대학 석박사. 전 고려대학교 병원 임상조교수,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미국 듀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및 임상연구센터 방문교수(2013-2014). 현재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전문진료분야는 우울증, 트라우마, 자살 예방 및 위기 개입.
사회활동으로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총무위원장, 대한정신건강재단 이사/대외협력위원장, 대한불안의학회 척도개발 및 진료지침위원장, 대한사회정신의학회 정책이사,(사)한국EAP협회 이사,IASP(세계자살예방협회) 정회원,ISTSS(국제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정회원, 보건복지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위원.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올해의 우수교수상(2013),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2012,2015) 서울시장 표창(2012),경희의학상(2017),보건의날 대통령 표창(2018),동대문구청장 표창(2019)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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