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세이렌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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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세이렌의 두 얼굴

김태한 대전시 소방본부장

  • 승인 2019-10-02 08:10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김태한(수정)
대전소방본부 김태한 본부장.
지독한 흙먼지가 이는 전쟁터 안에서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군과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은 10년간의 전쟁으로 서서히 지쳐갔다.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 전쟁에 지친 그리스군이 수백 년을 버텨온 난공불락의 트로이 성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병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당장에라도 패배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그리스 연합군 오디세우스 장군은 나무로 만든 목마에 병사들을 몰래 숨겨 트로이 성벽에 잠입시키고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트로이성을 함락시켜버렸다.

순간의 기지로 트로이와의 1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는 기쁜 마음으로 수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고향인 이타카로 가기 위한 여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벗어나 그의 군사들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항해사들을 홀려 배를 침몰시키고, 사람을 잡아먹는 반인반수의 마녀 ‘세이렌’이 사는 지중해를 무사히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밀랍으로 귀를 막고 밧줄로 온몸을 감아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군사들에게 지시했다. 귀를 막아 노랫소리를 무시하고 노를 저어나가 세이렌의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와 그 일행의 일화는 소방차 길 터주기나 각종 소방안전 캠페인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이렌’ 어원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 소방관들이 재난현장으로 긴급하게 출동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얼마나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해 우세한 소방력으로 상황을 압도하느냐가 소방작전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현재 우리는 화재 초기 적절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고 대응단계를 서서히 높여가는 '단계적 상향 대응방식'에서 처음부터 많은 인력과 장비를 한꺼번에 투입하여 상황을 조기종료 시켜버리는 '최고수위 우선 대응 전략'을 펼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4월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강원도 산불에서의 화재진압작전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산불현장에 최고수위 우선 대응 전략으로 전국 820대의 소방차와 2600여 명의 인력이 단 몇 시간 만에 강원도에 집결되었다. 강원도 각 지역에 투입된 우리 소방관들이 일사불란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해 강원도 전역으로의 산불확산을 조기 차단하고 재산·인명피해를 막은 사례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우리 안의 작은 변화가 재난현장에서 빛을 발하여 국민의 신뢰도를 더욱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협심하여 일순간에 재난 상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배가시켰다. 놀라운 결과였다.

올 초 개정된 소방기본법에 따라 출동하는 소방차량을 방해하거나 불법 주·정차된 차량은 소방관이 견인하는 등 강제이동 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소방조직 안에서도 많은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를 탓할 필요 없다. 후회할 필요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나 스스로 바뀌고 행동하면 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전 세계를 커피로 통일시킨 스타벅스의 대표상징도 마녀 세이렌이다. 커피잔에 새겨진 세이렌의 얼굴은 아름다운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로 손님들을 불러 모아 수익을 창출해내겠다는 ‘하워드슐츠’ 대표의 특별한 마케팅 비법이다. 이에 반해 소방차가 출동하며 울리는 사이렌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우리 소방관의 울부짖음이다.

이렇듯 그리스의 세이렌은 사람을 유혹하고 해치는 추악한 존재이지만 소방관의 세이렌은 사람을 구하고 생명을 지키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둘 중 어떠한 사이렌에 반응할지는 시민들의 손에 달려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자리 잡을 때까지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김태한 대전시 소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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