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기록프로젝트] 옛도심 추억마저 삼킨 회색빛 도시…지역흔적 남았더라면

[대전기록프로젝트] 옛도심 추억마저 삼킨 회색빛 도시…지역흔적 남았더라면

도시정비 97곳, 동구와 중구 66곳으로 원도심 집중
용문1.2.3지구 철거 착수… 선화B.숭어리샘 이주 앞둬
역사와 문화적 상징있는 소제동 일방적 철거 안돼
특정 부분 강화유리로 보존 등 타시도 사례 적용해야

  • 승인 2020-04-13 17:11
  • 수정 2020-05-13 09:27
  • 신문게재 2020-04-14 5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늙은 별의 최후는 소멸, 낡은 집의 말로는 철거다. 소멸한 별의 기억은 수 만 년을 달려와서라도 끝내 우리 곁에 도달하지만, 먼지 속에서 폭삭 주저앉아 버린 집의 기억은 되새겨 볼 방도가 없다.

골리앗의 펀치 닿자 툭툭 30년 전 우리 집이… 툭툭 50년 전 뛰어놀았던 골목이… 툭툭 한 시대가 사라진다. 대전은 조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중이다. 기억될 기록은 없다. 정훈 시인의 고택이 그러했고,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그럴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결코 부정사가 아니다. 침체 된 도시를 일으키는 시의적절한 선택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기억과 보존을 재개발과 도시재생에 대입해본다면 같은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딱딱한 명사에 감성과 온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자발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이했을 때, 가슴 벅찬 반짝임으로 남고자 하는 일말의 욕심이다.

중도일보는 2020년 연중 기획 시리즈 '대전기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버리고 남길 것을 선별해 기록물과 물리적 유산이 보존될 '메모리존(가칭)'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은 히스토리가 없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스토리텔링의 단서도 없다. 대전시 승격 100년을 앞둔 지금 '기록'을 위한 여정은 시작돼야 한다. 이는 훗날 오롯이 대전에 남겨질 문화유산이자, 수년이 지나도 밑천이 드러나지 않을 히스토리의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편집자 주>

1. 도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
2. 무너지는 도시, 대전이 사라진다
3. 다가오는 재개발, 그들의 이야기
4. 도시재생의 끝은 '메모리존'
5. 정체성 없는 대전, 100년을 준비하자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은 현재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대립된 대표적인 재개발 구역이다. 사진=관사촌 살리기 운동본부
재개발과 재건축사업 홍수 속에서 행복했던 우리 동네의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대전의 재개발 속도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빠르고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낙후된 도심 혹은 동네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한다. 이로 인해 대전의 부동산 시세는 치솟고 개성보다는 획일화된 아파트의 등장으로 도시 전반의 매력은 옛 향수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대전시와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지역 내 정비사업장은 재개발 55곳, 재건축 30곳, 주거환경개선사업 12곳으로 모두 97곳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동구가 33곳으로 가장 많고, 중구 30곳, 서구와 대덕구가 11곳씩, 유성구는 3곳이다. 숫자만 봐도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곧 이주를 마치고 철거를 앞둔 지역은 중구 선화동 207의 16일대의 선화 B구역과 탄방 1구역(숭어리샘), 용문동 225-9 일원 용문1·2·3구역이다. 세 구역 모두 낙후된 곳인 만큼 환경정비가 시급한 과제였다. 다만 대전 토박이 세대의 짙은 향수를 공유할 수 있는 주요 지역인 만큼 개발 중심의 진행은 다소 아쉬웠다.

대전시건축사회 조한묵 부회장은 "곳곳에서 정비사업이 활발하지만, 옛 정취가 남아있는 동네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파트만 들어서 아쉽다"며 "의미가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 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옛 동네의 모습을 남기는 건 좋다"고 말했다.

삼성 4구역인 소제동 내 철도관사촌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곳으로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대규모 관사촌이다. 역사적·문화적 가치 크지만, 현재는 30여 채만 남은 상태다. 이미 관사촌 일부는 도로와 카페 등으로 훼손되면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관사촌살리기운동본부‘ 임윤수 씨는 "재개발을 위해 도로를 내면 관사촌은 반토막 되고 대전이 간직한 100년의 근대문화 역사와 관광객 발길도 끊어질 것"이라며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올드시티와 현대적인 모습을 융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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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동 1.2.3지구는 본격 철거가 시작됐다. 사진=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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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동 1.2.3지구는 본격 철거가 시작됐다. 사진=김성현 기자
동네 전체를 헐지 않고 일부 낙후된 구역만 정비하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정비사업이 등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주택 수 20세대 이상이나 노후·불량건축물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면 가능한 가로주택정비사업, 노후불량 공동주택 200세대 미만에 적용하는 소규모 재건축사업 등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동네와 그 역사를 간직하는 방법도 있다.

소규모 정비사업 진행과 함께 대전시는 ‘지역흔적 남기기’ 사업에 착수한 상태다. 5개 지자체 지역 내 재개발 시공사와 정비사업 조합에게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흔적 남기기에 대한 사전 안내를 권고했다.

다만 시공사·조합과 적정선에서 조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흔적 남기기 사업이 자칫 재개발 전체 계획에 차질을 주거나, 조합원들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연철 대전 중구청 도시과장은 "지자체나 조합은 물론, 시공사도 자취를 남기자는 취지에 대부분 공감한다. 다만 조합 스스로 기록물이나 유산에 대해 역사적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런 문제만 보완하면 반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복 대전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은 "사라지는 동네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주, 조합 등과 협의를 하는 등 과정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대전시 등 기관이 나서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미·김성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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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동 1.2.3지구는 본격 철거가 시작됐다. 사진=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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