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제사가 정말 없어져야 하는 문화일까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제사가 정말 없어져야 하는 문화일까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0-09-21 14:54
  • 신문게재 2020-09-22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지난 추석 때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딸을 데리고 차로 시골을 가던 중이었다. 요즘 누구나 그러하듯이 대학 다니는 딸도 차를 타자마자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보더니 다음 문구를 읽어주는 것이었다. 조상 덕을 못 본 사람은 제사상 차리고 있고, 조상 덕을 본 사람들은 해외여행 간다는 말이었다. 마침 딸이 이런 말을 하므로 내 딴에는 제사의 의미를 설명해줄 생각이었다. 나는 농담조로 "모실만한 조상도 없고 만나 볼 일가친척도 없으니까 명절에 해외여행 가는거다. 부러워 할 것도 없고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야" 했다. 딸은 "요즘 세상에 제사가 뭐가 필요하며 조상이 무엇을 해준 것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고, 태어나서 즐겁게 살고 있는 자체가 조상의 덕분이다"하니 "그깟 조상이…"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참지 못하고 길 가에 차를 세웠다. "야! 너 같은 딸은 필요 없어. 차에서 내려" 나는 딸을 끌어내리려고 차에서 내렸다. 딸은 안에서 재빠르게 차문을 잠갔다. 나는 졸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길에는 차가 씽씽 달리고 있었다. 아내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흥분한 마음이 진정되었다. 위험하다는 핑계로 차문 열라고 하고는 조용히 운전만 하고 시골집에 왔다. 나중에 딸에게 그때 문 잘 잠갔다고 칭찬해주었다.

제사로 인한 이런 갈등이 나에게만 있을까. 제사는 현대인의 가정에서 겪는 불화의 원인 중 하나이다. 제사 지내는 여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어떤 의미에서 제사를 중시하고 지내왔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사는 본래 인류문명과 함께 시작된 가장 시원적인 문화행위이다. 천지신명을 비롯하여 나무 바위 산천 등의 신들에게 음식을 올리고 치성을 드리거나 기도하는 행위는 모두 제사문화의 일종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유적을 보면 그들이 숭배하는 신을 대상으로 제사지낸 증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이나 가족의 근신과 행복, 공동체로서 그 사회 구성원을 규합하고 질서와 안녕을 구현하며 통치자의 존엄을 확보하는데 이용한 의식이 제사였다. 제사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문화에서 가장 보편적인 행위였다.

유교문화는 사람이 실천해야 할 행위로 제례를 중시하고 체계화 했다. 신분별로 제사 지내는 범위와 절차도 달랐다. 예를 들면 천자는 천지(天地), 사방(四方), 산천(山川), 오사(五祀)에, 제후는 사방, 산천, 오사에, 대부는 오사에, 선비는 선조에 제사지냈다. 지내야 할 제사가 아닌데 지내는 것을 음사(淫祀)라고 하여 금지하였다. 사당도 본래 천자가 7위, 제후가 5위, 대부가 3위, 사(士)가 1위를 모시고 서인들은 사당이 없고 침실에서 부모에게만 지낸다. 이로 보면 조선후기에 행해진 4대봉사는 고대의 예법에 없는 제도이며 일반 서민은 부모만 지내면 되었다.



유학에서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를 예(禮)로 대변한다. 인간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등에 관련된 모든 행위를 예 관계로 규정하고 당위성을 설명한다. 예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례를 가장 중시한 것은 효의 실천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효의 마음을 국가로 확장하면 충(忠)이 되며, 친구관계에서는 신(信)이 되며 사회에 나가서는 성실함과 공손함이 된다.

제사문화가 현대인의 바쁜 삶에 다양한 불편과 고통을 주는 것도 틀림없다. 그래서 이제는 제사에 대한 근본원리를 알고 바람직한 제사문화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제사 음식과 절차도 줄이고 가족들의 합의하에 종교형식에 맞는 제사를 지내도 된다. 어떠하든 간에 제사의 본질인 공경하는 문화를 살려갈 필요가 있다.

증자는 "초상에 예를 다하고 조상의 제사에 정성을 다하면 백성들의 덕이 후해진다.[愼終追遠 民德 歸厚矣]"고 하였다. 공자가 말한 문(文)과 질이 잘 어우러진 사회가 아닐까. 문은 일정한 형식 즉 예의나 제도 등을 말하며 질은 본바탕으로 본성이나 진심을 말한다. 진심은 없으면서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사람도 있으며 진심은 충만해 있는데 행동이 투박한 사람도 있다. 이 둘이 잘 조화되어 하나의 문화를 이룬 사회가 아닐까. 사람들이 진실되고 성실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도의에 입각한 세련된 예의문화가 정착될 때 진정한 고품격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제사문화를 낡은 전통문화로 치부하지 말고 그 의미를 되새겨 우리 사회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의 유산으로 재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이전...실효적 대책 절실
  2. 슬럼화 우려 문화동 국방부 부지… 정부 기조 변화에 개발 전환점 맞나
  3.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 본격 논의… 5월 통합신청서 제출 예정
  4. 대전시, 먹거리 안전 확보 위한 수사 협력체계 강화
  5. BK21 우수 참여인력 37명 장관상… 충남대 송준엽·권오훈 씨 등 선정
  1. 통합특별법 제동에 대전교육감 진보단일화 어떻게?… 3월 초 전원회의서 최종 결정
  2. '공원 수목 종합 관리체계 개선'정책간담회
  3. 이공계 박사도 임금 양극화… 출신 따라 연 3천만원 격차
  4. 한수정, 세종시 숲의 숨결 찾기...25일 전시회 개막
  5. 세종시 보건환경연, 환경과학 체험 프로그램 성료

헤드라인 뉴스


TK까지 올라탄 행정통합 열차…대전·충남만 골든타임 놓치나

TK까지 올라탄 행정통합 열차…대전·충남만 골든타임 놓치나

광주전남에 이어 대구경북(TK)도 행정통합 열차에 탑승한 가운데 대전 충남만 통합 무산이라는 결과를 받아들고 지역 백년대계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타 지역 정치권은 꽉 막힌 행정통합 정국 속에도 활로를 찾으며 미래 성장 시계를 다시 돌리는 반면, 충청 여야는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 동력 창출을 위한 입법 경쟁에서 뒤처진 무능함을 노출한 것인데 특별법 처리를 위한 마지노선인 2월 국회 마지막 주말 초당적 결단이 나올지 주목된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2월 국회 회..

대화와 타협 사라진 정치, 여의도에 다시 등장한 ‘운정 김종필’
대화와 타협 사라진 정치, 여의도에 다시 등장한 ‘운정 김종필’

김종필기념사업재단과 백제개발문화연구원을 통합한 ‘김종필문화재단’이 26일 공식 출범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에 달한 정치권을 향해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2025년 통합한 재단은 이날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통합 후 처음으로 공식 행사인 ‘김종필문화재단 새출발, 재도약 다짐 오찬’을 열고 정식 출범을 알렸다. 행사에는 조부영 재단 이사장과 김희용·나경원 부이사장, 추재엽 사무총장을 비롯해 96세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상과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국회의원 등 JP를 기억하는..

분양 성수기 본격 `개막`…3월 충청권 분양 6631세대 공급
분양 성수기 본격 '개막'…3월 충청권 분양 6631세대 공급

분양 성수기인 봄을 맞아 전국 아파트 분양 시장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 충청권에서는 6600여 세대가 신규 공급이 예정돼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26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3월 충청권 아파트 분양 예정 물량은 충남 4853세대, 충북 1351세대, 대전 427세대 등 총 6631세대다. 세종은 예정된 분양이 없다. 충청권 주요 공급 단지를 보면 충남에서는 '천안 아이파크시티 5단지' 882세대, '천안 아이파크시티 6단지' 1066세대, '천안 업성2구역(계룡)' 1267세대, '아산탕정자이 메트로시티(A3)..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 파크골프 인기에 파크골프장 주변 불법주정차 극성 파크골프 인기에 파크골프장 주변 불법주정차 극성

  • 특이민원 대응 모의훈련 특이민원 대응 모의훈련

  • 장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 장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