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61강 퇴계난택(退溪難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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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61강 퇴계난택(退溪難擇)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03-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61강 퇴계난택(退溪難擇) : 퇴계(退溪) 선생의 어려운 선택

글 자 : 退(물러날 퇴) 溪(시내 계) 難(어려울 난) 擇(가릴 택)

비 유 : 엄격한 윤리, 도덕보다 인간의 따뜻한 정(情)이 더 진함의 비유



퇴계(退溪)선생의 둘째 아들 채(寀)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 김해 허씨를 여의고 주로 외가(의령)에서 성장하면서 건강이 나빠 퇴계가 단양군수(丹陽郡守)로 있던 때(48세 2월)에 정혼만 해놓은 상태에서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채가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전임한 퇴계는 직책을 사임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념하고 있을 때, 둘째 며느리는 자식도 없는 과부가 되었다.

선생은 홀로된 며느리가 걱정이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젊은 며느리가 어떻게 긴 세월을 홀로 보낼까?'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집이나 사돈집 모두에게 누(累)가 될 것이기에, 한밤중이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집안을 순찰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집안을 둘러보던 선생은 며느리의 방으로부터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듣게 되었다.

순간 선생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점잖은 선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며느리의 방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술상을 차려 놓고 짚으로 만든 선비 모양의 인형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인형은 바로 남편의 모습이었다.

인형 앞에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며느리는 말했다. "여보, 한 잔 잡수세요." 그리고는 인형을 향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인형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는 며느리…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흐느끼는 며느리… 선생은 깊이 생각했다.

과연 '윤리(倫理)는 무엇이고 도덕(道德)은 무엇인가! 저 젊은 며느리를 수절시켜야 하다니… 저 아이를 윤리 도덕의 관습으로 묶어 수절시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인간의 고통을 몰라주는 이 짓이야말로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다. 여기에 인간이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저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한다.'

이튿날 선생은 사돈을 불러 결론만 말했다. "자네, 딸을 데려가게." 사돈은 "내 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선생은 "잘못한 것 없네. 무조건 데려가게." 친구이면서 사돈 관계였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딸을 데리고 가면 두 사람의 친구 사이마저 절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생의 사돈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안 되네. 양반 가문에서 이 무슨 일인가?". 선생이 "나는 할 말이 없네. 자네 딸이 내 며느리로서는 참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지만 어쩔 수 없네. 데리고 가게." 이렇게 퇴계(退溪) 선생은 사돈과 절연하고 며느리를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은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날도 저물기 시작했으므로 아담한 민가 집을 택하여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아보니 반찬 하나하나가 선생이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더욱이 간까지 선생의 입맛에 딱 맞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 집 주인도 나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이튿날 아침상도 마찬가지였다. 반찬의 종류는 어제 저녁과 달랐지만 여전히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만 올라온 것이다. 나의 식성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혹시 며느리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막 떠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버선 두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양 가시는 길에 신으시라'며 주었다. 신어보니 선생의 발에 꼭 맞았다. '아! 며느리가 이 집에 와서 사는구나.' 선생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집안을 보나 주인의 마음씨를 보나 내 며느리가 고생은 하지 않고 살겠구나.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짐작만 하며 대문을 나서는데 한 여인이 구석에 숨어 퇴계선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퇴계선생은 이렇게 며느리를 개가(改嫁)시켰다. 이 일을 놓고 유가(儒家)의 한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선생을 비판하고 있다. "선비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윤리를 무시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정반대로 퇴계선생을 칭송하고 있다. "선생이야말로 윤리와 도덕을 올바로 지킬 줄 아는 분이시다. 윤리를 깨뜨리면서까지 윤리를 지키셨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상식과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맞는 답일 것이다. 퇴계선생은 엄격한 규범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택하였다. 당시로는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다.

옛 연구집(聯句輯)에

金剛山高松下立(금강산고송하립) : 금강산이 높아도 소나무 아래 서있고

漢江水深砂上流(한강수심사상류) : 한강물이 깊어도 모래 위 에서 흐르네

라는 문장이 있다.

윤리가 아무리 엄격해도 상식을 넘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도덕이 아무리 엄중해도 양심을 범할 수 있겠는가?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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