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대통령 후보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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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대통령 후보의 서재

박재묵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1-09 08:59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박재묵 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박재묵 충남대 명예교수
"나라를 가진(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춘추』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눈앞에서 참언해도 눈치채지 못하고 뒤에 역적이 있어도 알지 못합니다. 신하가 된 자도 마땅히 『춘추』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모르면) 늘 있는 일에도 마땅함을 모르며, 뜻하지 않은 변고를 당해도 대처방법을 모릅니다."

『사기 열전』의 마지막 편인 태사공자서에서 따온 것으로서, 사마천이 『춘추』의 의미를 둘러싸고 상대부 호수(壺遂)와 논쟁을 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춘추』에 임금을 시해한 사례 서른여섯 건과 나라를 망친 사례 쉰두 건이 나오고, 제후가 망명하여 사직을 지키지 못한 사례는 무수히 많이 나온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라를 통치하는 자들은 역사 공부를 통해 통치의 올바른 길과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사마천 자신은 통치자의 필독서로 공자의 『춘추』를 꼽았지만, 통치자들이 읽어야 할 책으로는 『사기 열전』과 『사기 세가』를 능가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가는 제후 및 제후 반열에 오른 인물을 주로 다루고, 열전은 제후보다 낮은 재상급의 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이 두 책의 내용을 합해서 보면 고대 중국의 주요 역사적 인물들이 망라되다시피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관직과는 거리가 먼 사상가는 물론 명의, 자객, 유협(遊俠), 혹리(酷吏)까지 역사가의 눈으로 평가를 받아 마땅한 인물의 대부분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기는 감히 '인간학의 보고'라고 일컬을 만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날이 갈수록 후보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유력 후보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지방과 현장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고, 각종 단체와 미디어의 초청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에 응하고 있으며, 드디어 며칠 전부터는 눈길을 끌 만한 공약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끈질기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하나가 유력 후보자들의 자질이다. 자질 공방이 당내 경선 단계에서부터 제기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되다 보니, 이번 대선은 전에 볼 수 없었던 비호감 선거가 되고 있다고 한다.



후보자의 자질 문제는 크게 보면 후보자 본인 및 가족의 도덕성, 국정 운영 준비상태(주요 국정 현안 파악과 대책의 준비 상태), 후보자의 품성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도덕성 논란은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후보 및 그 가족의 도덕적 흠결은 의혹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선거가 끝난 후에나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대립된 주장의 진위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후보자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 10년 전에 어떤 여성 정치인은 자기가 한때 보좌했던 유력 정치인의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고, 있는 책들도 통일성이 없으며 증정받은 책들이 많았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되기에는 지적 인식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의미 있는 검증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재에 꽂힌 책의 규모와 그 구성은 당연히 지적 욕구의 강도와 관심 영역을 알려준다. 서재의 주인이 나이 든 사람이라면, 서재는 그 주인이 거쳐 온 지적 편력, 즉 생각의 경로를 오롯이 보여준다. 주머니를 털어서 책을 구입하는 데 인색한 사람의 머리에 깊은 생각이 깃들어 있거나, 거기로부터 고품격의 사상이 풍겨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업과 연관된 분야의 전문서적으로 서재를 채우면서 인문학책을 들춰보지 않는 사람에게서 세상의 변화를 읽어 내거나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후보자가 읽은 책이 곧 그의 자질이다. /박재묵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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