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그 친구는 왜 소주 대신 냉수를 줬을까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그 친구는 왜 소주 대신 냉수를 줬을까

나는 친구의 거울

  • 승인 2022-07-1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늘도 고온다습(高溫多濕)한 날씨는 무더위를 가중했다. 시원한 장맛비가 쏟아지길 기대했지만 하늘은 오늘도 인색했다. 오후에 그저 소나기, 그것도 잠자리 오줌처럼 찔끔 내리곤 달아났다.

일을 마친 뒤 귀가하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취객이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대낮부터 폭음했지 싶었다. 엊저녁 '술 풍경'이 떠올랐다. 평소 존경하는 모 회장님께서 얼마 전 취재에 협조해 주어 고맙다며 술을 사겠다고 하셨다.



약속 시간에 가서 뵌 뒤 소주 세 병을 나눠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이라며 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술이 좀 부족하던 터였다. 은행동에서 내려 술집까지 걸었다.

안주도 푸짐하여 술이 물처럼 잘 넘어갔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과음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또 소주를 마셨다. 한데 맛이 이상했다. 그랬다!



그 친구는 내가 없는 사이 소주병에 냉수를 채운 뒤 그걸 술이라며 소주잔에 연신 따라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내가 술이 덜 취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왜 나에게 소주 대신 냉수를 줬을까?

그 '역사'를 알려면 지난달로 회귀해야 한다. 그 친구를 유성에서 만나 낮술에 이미 거나했다. 친구는 2차를 가자면서 택시를 불러 나를 동학사 입구까지 태우고 갔다. 평소 어리석고 술탐까지 심한 터였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거기서 또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그만 기억이 상실되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는 터져라 아팠고 속은 콘크리트로 비빈 듯 고통스러웠다. 그럴 즈음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 "어제 동학사에서 친구 집까지 택시비를 선납하고 태워 보냈는데 잘 도착했는가?" - 단박 고맙다는 답신을 보냈다.

- "친구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술이 많이 약해졌더라. 몸 생각해서 절주하게나. 그리고 어제 자네가 폭음을 일삼기에 내가 일부러 소주병에 물을 넣어 소주라고 속였다네." -

순간, 그 친구에 대한 감사함이 해일(海溢)보다 높이 밀려왔다. 친구야, 정말 고마웠다! 무대책의 술꾼 친구를 진정 아끼는 자네가 진짜 친구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양립한다.

친구도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가 있다. 진짜 친구는 어제의 그 친구처럼 만취를 염려하여 소주 대신 맹물을 준다. 이런 경우, 사기가 아니라 선의의 거짓말이다. 합법이다. 그도 모자라 택시로 집까지 안전하게 보낸다.

반면 가짜 친구는 계산도 안 하고 저만 홀랑 달아난다. 친구 믿고 마음껏 마셨는데 정작 그 친구는 배신을 '때린' 것이다. 한 마디로 동상이몽(同牀異夢)의 웃픈 결론이 된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술에는 장사가 없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이 술을 마시고 결국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 -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폭염 때나 한겨울 엄동설한에 과음, 아니 만취 뒤에 노상에서 잠이라도 든다면 때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사달이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폭음은 때로 꼴불견, 그리고 망신살과 자주 나란히 걷게 되는 동행자가 될 수 있다. 하여간 "친구를 보여달라. 그럼 네가 누군지를 말해주겠다"는 말이 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내 친구를 둘러보면 된다. 친구는 나의 거울이고, 나는 친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 깊지 못한 나무와 같다'는 속담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홍경석 세창밀시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3.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