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
자연재해와 같이 피하기 어려운 재난도 있다. 세계 도처에서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사고의 배후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도 많다. 안전을 중시하지 않는 문화, '빨리빨리' 문화가 사고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설마' 하면서 요행을 기대하고, 사람의 생명보다 '성장,'과 '성취'를 중히 여기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이 개선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다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중히 다뤄져야 한다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됐다. 유사 이래 우리 민족의 국제적 위상이 오늘 만큼에 다다른 적이 없었다. 세계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국제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를 맞이해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이제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보듯이 국내 행사에 외국인들이 동참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사고는 외국 사람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의 부끄러운 사고소식은 거의 동시적으로 세계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변화에 맞게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여러 각도에서 준비돼야 한다. 사전대책도 필요하고 사후대책도 필요하다. 그에 더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안전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개발이다. 자주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 지식, 그러한 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전문지식을 군 경력자에게 의존하기도 했다. 민방위 훈련으로 재난에 대비하려고 했던 예가 있다. 민간 전문가로 화재나 재난에 대비하는 소방방재 전문가가 있는가 하면, 건설이나 토목에 관해서는 건축설계사가 안전에 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스나 코로나와 같은 국제적 전염병에 관해서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가 동원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문별 전문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전체를 보는 시각이다. 그러한 분야별 전문가들이 사고 후에 동원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안전에 관한 전문가, 전체를 종합적으로 내다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비상기획가라고 하는 것이다. 비상기획가는 각종 행사 및 토목 등 건설사업의 기획단계에 참여해 안전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비상기획가를 제도화해 안전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고, 사전예방 및 사후 대처를 위한 학교 교육, 시민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안전에 대해서만은 준(準)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상기획가를 양성할 수 있는 전문교육과정도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1990년대 초 캐나다 UBC 대학이 석사학위 수준의 비상기획가(Emergency Planner) 양성과정을 설립하는 것을 보았다. 미국 LA에서 지진이 일어난 뒤였다. 우리도 대학에 전기안전공학과, 소방방재학과 등이 이미 설립돼 있다. 그러나 그에 더해 안전과 비상기획에 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한 교육을 통해 배출되는 전문가가 사고와 재난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입되어 사전에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대비하게 함으로써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신동호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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