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역민이 모여 만든 화폐, 중앙통화시스템에 '틈'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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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지역민이 모여 만든 화폐, 중앙통화시스템에 '틈' 만들다

[기획-지역화폐로 만드는 행복한 마을] ① 한밭레츠, 한밭페이, 마을화폐, 기후화폐까지…민간 지역화폐 진화

  • 승인 2023-07-12 16:22
  • 수정 2023-10-21 21:26
  • 신문게재 2023-07-13 11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글 싣는 순서>

① 한밭레츠, 한밭페이, 마을화폐, 기후화폐까지…민간 지역화폐 진화
② [국내 사례 방문기] 소도시 지키는 충남 홍성군 홍성면 지역화폐 '잎'
③ [해외 사례 방문기] 대안학교에서 시작한 독일 킴가우어 지역화폐
④ [해외 사례 방문기] 독일 킴가우어 지역화폐 현지서 이용해보니
⑤ 성공하지도 망하지도 않은 민간 지역화폐, 확장성 넓히려면

매년 발표되는 기준금리에 경제가 들썩인다. 금융소비자들은 이자를 많이 주는 적금을, 이자를 적게 내는 대출을 알아본다. 지역경제 또한 중앙은행시스템에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지역 소비자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일정 부분의 수수료는 카드사가 있는 중앙에 납부된다. 현재 금융시스템에서 지역은 자연적으로 중앙에 종속되는 구조이다.



지역 화폐는 이러한 중앙집권적 금융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화폐는 지자체에서 발급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아닌 지역민이 주도해서 만든 지역화폐다. 지역화폐는 지역 공동체에서 나눈 '신용'을 바탕으로 발급된다. 0%이자 혹은 기부를 위한 마이너스 이자로 발급된다. 그런데도 꾸준히 이용하는 회원들이 있다. 지역화폐로 생계를 유지할 순 없지만, 나누고 도울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화폐를 매개로 지역민들을 이어주는 지역화폐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한밭레츠
한밭레츠는 두루 거래 내역을 수기로 입력한다. 사진=한밭레츠 홈페이지 캡쳐.

▲ 대전 지역화폐의 시작, 한밭레츠


한밭레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널리 유통되는 대안화폐로, 캐나다 지역 화폐 '레츠(LETS)'를 대전에 접목했다. 레츠는 법정 화폐가 없어도 서비스와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아기를 돌봐주는 대신 다른 사람이 텃밭 가꾸기를 도와주는 식이다. 우리나라 고유 전통 품앗이와 비슷하다. 한밭레츠는 외지인이 많고 정착률이 낮은 대전 지역 특성과 IMF, 맹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폐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2000년 2월 정식 창립됐다.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단위는 '두루'로, 1두루는 1원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현금과 두루를 교환할 순 없다. 거래 금액은 당사자 합의로 결정한다. 한밭레츠의 가장 주요 사용처는 의료기관이다. 한밭레츠 가맹점으로 등록된 병원에선 진료비 부담금 정도를, 약국에선 처방조제료 5000원 한도까지 이용할 수 있다. 2002년 설립해 조합원 4000세대의 민들레의료복지사회협동조합의 모태가 한밭레츠이며, 한밭레츠 내의 두루학교 준비모임에서 시작한 대안학교 설립 운동은 차후 12년제 대안학교 꽃피는 학교의 주축이 됐다. 2012년 설립한 조합원 1만 5000명의 로컬푸드 기반 품앗이소비자생활협동조합도 한밭레츠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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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밭페이 화면 캡쳐.
▲ 기부 독려하는 전자기반 지역화폐 '한밭페이'



한밭페이는 대전지역 민간주도 지역화폐인 '드림'을 발행하는 모바일 기반 전자결제 앱이다. 법정화폐 금액만큼 '드림'이 충전되는데, 충전금액의 2%는 기부금으로 적립된다. 한밭페이 이용자면 누구든지 '드림프로젝트'를 통해 기부 프로젝트를 등록할 수 있다. 가맹사업자만 '드림'을 환전할 수 있는데, 환전 수수료는 3%로 기부금과 운영비로 사용된다.

올해 6월 한밭페이 사용현황을 보면, 일반 발행 금액은 555만 원, 정기충전 발행 금액은 2382만 원, 상점 결제는 2321만 6080원, 송금액은 3343만 7388원, 환전액은 2634만 9708원, 기부액은 12만 8000원으로 나타났다. 충전 인원은 238명, 신규가입자는 11명이다. 소비자는 3550명, 가맹점주는 528명이며, 정기충전자는 265명으로 나타났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추이를 보면, 정기충전액과 상점결제 송금액, 충전 인원이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신규가입자 또한 매달 10명 이상씩 늘어났다. 한밭페이 앱에서 사회적경제기업의 서비스를 예매하는 드림 티켓 거래액은 지난해 2915만 1000드림, 지역 소상공인 상품을 선물할 수 있는 플랫폼 '드림상점' 거래액은 703만 9550드림으로 나타났다. 한밭페이를 이용하는 가맹사업장은 주로 지역 공동체가 활발한 곳이다. 이용수 태평시장 상인회장은 "한밭페이 가맹 등록을 하면서 한밭페이 이용자들을 소비자로 끌어올 수 있는 마케팅 효과가 있다"며 "환금 수수료 또한 카드 결제 수수료와 비교했을 때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한밭페이
한밭페이를 이용할 수 있는 QR코드가 관저동 식당에 안내돼있다. 사진=이유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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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례 모두의마을미디어협동조합 이사가 자신의 관저페이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유나기자.

▲ '동' 단위의 마을별 화폐

한밭페이 어플과 연동해서 사용하는 '마을별화폐'도 있다. 말 그대로 동 단위의 마을에서 사용하는 마을 화폐다. 한밭페이 어플에 연동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마을 화폐 '관저페이'를 사용하는 관저동에선 관저마을신문, 모두의에너지자립마을학교, 청소년교육공동체,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등 공동체가 활발하다. 서로 신뢰를 쌓은 마을 주민들이 서로의 '품'을 빌려주고 관저페이로 감사를 표현한다. 최순례 모두의마을미디어협동조합 이사장은 "관저동 청년의 집을 6개월간 빌린 적이 있는데, 그때 마을주민들이 1시간 동안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고 관저페이를 줬다"며 "마을의 리더인 저는 주민들에게 부탁할 일이 많아 관저페이가 마이너스 14만 6000원이다. 저는 공유공간을 빌려주거나 강의를 하며 관저페이를 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별화폐로는 관저동의 에너지자립마을에서 사용하는 '톨', 기후화폐인 '그루', 학하동 마을 화폐 '별', 내동 마을 화폐 '내동'이 있다.

▲ 지역화폐, 기후위기 대응까지 발전

민간 지역화폐는 기후위기 대응까지 발전했다. 2021년 시작한 기후화폐 '그루'는 친환경 실천을 하면 벌 수 있으며, 친환경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사용이 종료됐지만, 내년도에 다시 활성화될 예정이다. 성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과 함께 탈성장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화폐는 이자 지불을 위한 성장을 가속하는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을 성장하면서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 문제를 낳고 있다"며 "민간 주도의 지역화폐는 지역 경제활성화와 지역 경제 공동체 형성과 함께 친환경 제품, 적절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는 운동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답했다.

오민우 한밭레츠 대표는 저자로 참여한 '탈성장을 상상하라'라는 책에서 "탈성장의 시대는 더불어 가난해지기 위해서 걸어가는 시대"라며 "두루는 나누고 돕고 내놓고 내려놓는 향연을 위한 촉매제이며 레츠는 즐거운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이유나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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