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9-‘도파민’, 나의 존재감을 찾아서

  • 문화
  • 여행/축제

[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9-‘도파민’, 나의 존재감을 찾아서

자연과 교감을 통해 얻는 만병 치유제
유해성 논란 MSG 진화의 끝은 어디인가

  • 승인 2023-11-07 09:30
  • 수정 2023-11-07 11:12
  • 신문게재 2023-11-08 9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구름속몽블랑
세뉴고개 하산길 초입에서 바라본 서편 전경. 왼쪽 높은 봉우리가 에귀 데 글라시에,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 구름 덮인 설산이 몽블랑이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유럽처럼 여러 나라가 살을 맞대고 사는 대륙은 굳이 국경에 장벽을 쌓거나 군대를 배치하는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사이좋게 지내면 된다. 9개 나라와 국경을 접한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무릎을 꿇고 이웃 국가에 백배사죄한 배경을 생각해보면 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경계인 세뉴고개(Col de la Seigne, 2516m)도 한 나라 땅처럼 국경 표시가 없다. 세뉴고개로 가는 궤적을 보면 초반에는 갈지(之)자 형태가 계속되다가 해발 2000m부터는 경사도 15∼20%의 직선 코스가 이어진다. 상승고도 650m, 거리는 5㎞다. 탁 트인 장엄한 산세만 아니면 당장 포기하고 싶은 3일째 고난의 행군이다.



해발 2500m에 다가갈수록 바람이 거세고 차가워졌다. 이윽고 세뉴고개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였다. 모두 또 한고비를 넘겼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표지석 인근에는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설빙이 운동장만큼 펼쳐져 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등산 스틱으로 스키 타는 흉내를 내면서 천진난만하게 나뒹굴었다. 북서쪽으로는 에귀 데 글라시에(3815m), 에귀 드 래글(3553m), 몽블랑(4807m), 그랑조라스(4208m) 등 알프스의 내로라하는 준봉들이 몽유도원도처럼 펼쳐졌다. 그간의 힘든 기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파민이 샘솟았다.

목표를 어렵사리 이뤘을 때 인체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내뿜는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최상의 희열감이다. 도파민은 성취감, 행복감, 살아갈 의욕이 부추긴다. 반면 과하거나 부족하면 조현병, 파킨슨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렉스블랑슈빙하
세뉴고개에서 내려오는 도중 뒤돌아본 엘리자베타 산장. 산장 뒤로 보이는 봉우리 에귀 드 트레 라 테트(3930m)를 중심으로 왼쪽 빙하가 렉스블랑슈, 오른쪽이 트레 라 테트 빙하다. 왼쪽 뾰족한 산은 에귀 데 글라시에(3815m).(사진=김형규 여행작가)
도파민을 얻기 위해 스포츠 마니아들은 각종 첨단장비와 성분도 생소한 보조식품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요즘 나오는 에너지 보강제의 경우 분명 허가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선까지 믿고 섭취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한 시간 전쯤 근육 경련이 멈추질 않아 중도 포기를 고민해야 했던 일행에게 에너지 제품 한 포를 건넸다.

마라톤이나 산행 등 장시간 운동을 하는 동호인들은 에너지바나 파워젤을 지참하는 경우가 많다. 파워젤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다. 명함 크기 한 포에 밥 한 공기(100㎉ 이상) 정도의 탄수화물 추출물이 들어있다. 음식물을 통한 탄수화물 섭취는 소화와 흡수까지 서너 시간은 걸리지만 액체는 즉시 에너지로 전환된다. 아마추어들이야 시중에 나도는 파워젤로 충분하지만 성적으로 먹고사는 프로선수와 팀은 상황이 다르다.

'아지노모도를 쳐서 요리를 한 뒤로는 손님이 많아지고 고깃값 양념값은 적어졌으니…성공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이후 우리나라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고 중 하나다. 아지노모토(味の素)는 세계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발된 인공조미료 제품명이자 회사 이름이다. 국물 음식이 많은 우리나라에 제대로 맞아떨어져 일제강점기 때부터 냉면집, 설렁탕집, 중화요리집에서 인기를 끌었다. 해방 후 아지노모토가 한반도에서 품귀현상을 빚자 국내 제품 '味元'이 출시돼 식당은 물론 가정에서도 필수 조미료로 독점적 인기를 유지하다 후발 제품 '미풍'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味の素'나 '味元' 두 제품 모두 일본식 발음이 '아지노모토'다. 일본 아지노모토사는 현재 유망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MSG에서 출발해 다양한 식품산업과 의약품으로 업종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좀 전에 근육 경련이 일어난 일행에게 건넨 에너지 제품이 바로 이 회사의 한 브랜드인데 좀 특이하다. 한 포당 열량이 밥 한술 남짓한 17㎉밖에 되지 않는다. 탄수화물이 아니라 아미노산 배합이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하면서도 여전히 먹어도 괜찮은지 의구심이 든다. 업체는 검증된 제품이라고 장담한다. 대충 이해하기론 장시간 고강도 운동을 하면 근육이 손상되는데 아미노산 배합이 이를 신속하게 복구시켜 운동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과학기술의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마라톤, 철인경기 등 고강도 운동에 뛰어드는 동호인이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스포츠음료 등 신제품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의 생리상 대중의 승리욕에 부응하는 제품을 개발하려는 과열경쟁이 마약 물질과 구분이 모호한 제품을 낳는 부작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세뉴설빙
세뉴고개 설빙에서 트레커들이 미끄럼을 타며 즐겁게 놀고 있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세뉴고개에서 하산길은 10㎞ 걸어 내려가 미아지 산장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쿠르마예르 시내로 입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오늘은 2인실 숙소에서 온수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볍다. 중간쯤 내려와 뒤돌아보니 엘리자베타 산장 너머 렉스블량슈 빙하가 장관이다.

투르드몽블랑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모두 무료다. 버스를 타고 쿠르마예르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농로나 다름없다. 버스 한 대 다니기에도 편치 않은 도로 폭이다. 길마저 꼬불꼬불해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을 볼 수가 없다. 커브에서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양쪽 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유일한 방법이 경적인데 우리나라 시내버스처럼 상냥한 소리가 아니다. 반경 500m 이내에서는 누구나 깜짝 놀랄 기차 화통 삶아먹은 굉음이다.

/김형규 여행작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방학 땐 교사 없이 오롯이…' 파업 나선 대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 처우 수면 위로
  2.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강도묵 전 총재 사랑의 밥차 급식 봉사
  3. 제1회 국제파크골프연합회장배 스크린파크골프대회 성료
  4.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연말연시 자선 영화제 성황리 개최
  5. 육상 꿈나무들 힘찬 도약 응원
  1. [독자칼럼]대전시 외국인정책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2. 정부 유류세 인하조치 이달 말 종료 "기름 가득 채우세요"
  3. [2025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안전지식 체득하는 시간되길"
  4. '경기도 광역교통망 개선-철도망 중심’ 국회 토론회
  5. 2025년 한국수어통역방송 품질 향상 종합 세미나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