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0-쿠르마예르 가는 길에서 만난 알프스 대산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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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뒤 몽블랑을 가다] 10-쿠르마예르 가는 길에서 만난 알프스 대산괴

시내버스 무료운행, 지역경제 활성화 기여
유럽인의 안식처 알프스산맥에 쏠리는 부러움
이탈리아 정통 현지식에 트레킹 피로 '싹'

  • 승인 2023-11-14 08:42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탈리아로 넘어와 하산한 첫 마을 발 베니(Val Veny)에서 쿠르마예르행 공용버스를 탔다. 우리나라 대도시 시내버스와 비슷한 크기인데 도로는 경운기 한 대 다닐 만큼 좁다. 매일 수차례 다니는 버스기사의 운전실력과 강심장이 놀라웠다. 'Z'자 급커브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부드럽게 회전하는 핸들링이 신기에 가깝다. 차창 밖 침엽수 너머로 큰 설산이 오밀조밀 모인 대산괴(大山塊·Massif)가 스치듯 지나갔다. 우리나라는 산을 사진에 담으면 횡으로 능선(Range)이 찍히지만 TMB에선 산이 앞뒤로 층층이 겹쳐있다. 조금 전 버스를 기다리면서 찍은 발 베니의 미아지산장 뒷배경을 보니 첩첩산중이다. 봉우리만 20개 가까이 앵글 가득 잡혔다. 알프스산맥은 동서 길이가 800㎞이지만 남북의 폭도 200㎞에 달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프랑스 샤모니와 이탈리아 쿠르마예르 등 TMB의 주요 거점도시가 여름철 성수기에 시내버스를 무료로 운행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당연히 지역경제 활성화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난 올해부터 무료운행이 더욱 확대됐다고 한다. TMB 트레커들은 산중에 머물 때 주로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 아무래도 남녀공용 다인실이기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눈치 봐가며 샤워해야 하고 채소 등 신선 음식이 귀한 편이다. 이 때문에 샤모니나 쿠르마예르, 스위스 마티니와 같은 유명 관광지를 지나칠 때는 하루쯤 편안하게 여장을 풀고 제대로 된 성찬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무료셔틀버스가 TMB 코스에서 내려온 트레커를 신속하게 도시로 이동시켜준다면 투자 대비 이득이 훨씬 더 크다는 확신이 선 셈이다. 편히 쉰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본궤도로 복귀하면 된다.

산악인동상
이탈리아의 기념비적인 산악인을 기리는 동상이 아베 앙리 광장에 세워져 있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추측건대 도로 인프라도 무료운행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쿠르마예르까지 가는 도로는 왕복 1차선에다 위험하다. 성수기에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함으로써 교통량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주말이면 이곳은 외지에서 차량이 무지하게 밀려온다. 승용차들이 도로가 좁은 외곽까지 진출한다면 교통마비는 불을 보듯 뻔하다.

큰맘 먹고 멀리서 TMB까지 날아온 우리네들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조바심에 한번에 많은 걸 경험하려 하겠지만 유럽인들은 여유롭게 몇 차례 나눠 둘레산길을 즐길 수 있다. 일례로 샤모니 에귀뒤미디에서 알프스 북서쪽 대산괴를 감상한 다음 곧바로 길이 11.6㎞의 몽블랑 터널을 차를 타고 횡단해 쿠르마예르에서 반대쪽 알프스 대산괴를 둘러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 휴가 때는 스위스 마티니로 떠나거나 유명한 세뉴, 발므 고개를 이틀 코스로 하이킹하는 등 선택지가 다양하다.

알프스산맥은 동쪽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독일을 거쳐 프랑스까지 이어진다. 알프스산맥은 유럽인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안식처다.

예약해 둔 쿠르마예르 산장형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각자 2인 객실에 체크인했다. 오랜만에 온수로 샤워를 하고 발 뻗고 침대에 누우니 오늘 하루 보람차게 지냈다는 승리감에 빠져들었다. 7월 하순 유럽 전역은 폭염으로 아우성인데 이곳 호텔은 에어컨이 없다. 미니냉장고가 없는 호텔도 있다. 해발 1200m 이상 고지대에 위치한 TMB 호텔의 특혜라 할 수 있다.

쿠르마예르광장
'아베 앙리 광장'에서 바라본 쿠르마예르 전경. 오른쪽 건물이 알파인 가이드 역사박물관이다. 멀리 치아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산 이름이 '거인의 이빨'(4013m)이다. 우측으로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을 따라 에귀 드 로슈포르(4001m), 돔 드 로슈포르(4015m)가 이어진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쿠르마예르에선 이틀간 머물게 된다. 북쪽 스위스 방면으로 트레킹을 간다고 해도 시내버스로 빠르게 되돌아오면 되므로 산장보다는 쿠르마예르 호텔에 묵는 게 낫다. 내일 오후에는 트레킹을 끝내고 쿠르마예르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다. 이 도시 중심 아베 앙리 광장에는 이탈리아 알피니즘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북극탐험 도중 사망한 펠리체 올리에르의 시신을 곁에서 지키다 함께 죽은 썰매견 동상을 비롯해 이탈리아 대표 산악인 3인의 동상과 알파인 가이드 역사박물관이 모여 있다.

썰매견
아베 앙리 광장에 북극탐험 도중 사망한 주인을 곁에서 지키다 함께 죽은 썰매견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사진=김형규 여행작가)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와 현지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는 고픈데 식당 오픈 시간이 오후 7시다. 보통 유럽은 오후 7∼8시가 만찬피크타임이다. 그전에 영업을 하는 식당은 관광객 위주거나 패스트푸드점이다. 저녁 메뉴는 펜네 파스타와 심플한 이탈리안 피자, 티라미수, 와인 등으로 구성됐다. 우리를 제외하곤 모두 현지인이다. 이들과 한 장소에서 와인잔을 부딪혀 가며 식사를 하니 TMB 트레킹에서 누적된 고단한 표정이 금세 화사하게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웠지만 몸은 노곤한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대산괴 장관, 반려견·자전거도 실을 수 있는 시내버스, 이탈리아 야외 식당 풍경 등 잔상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 중이지만 밑 빠진 독, 무료승차 축소, 완전공영제 시행 등 사소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엉뚱하게 쓰이는 건 아닌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반영된 듯하다.

제임스 C. 스콧의 저서 '농경의 배신'이 떠올랐다. 스콧은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잉여생산물에 의해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국가가 형성됐고 세금을 걷게 됐다는 교과서적 이론을 반박한다. 국가는 선량한 서민들을 붙잡아 '삥'(?)을 뜯는 폭력조직에서 출발했다는 게 그의 논리다./김형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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