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새로운 기회의 창,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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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새로운 기회의 창, 중앙아시아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 승인 2026-06-07 12:32
  • 신문게재 2026-06-08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최종인 한밭대 융합경영학과 교수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위기는 위협이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최근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등 핵심 해상 바닷길이 타격을 받으면서, 러시아와 이란을 우회하는 중앙아시아 중심의 '중간 회랑(Middle Corridor)'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가 재조명받는 시점에 (재)미래인력연구원의 연구진 일원으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중앙아시아 3개국의 실크로드 길을 다녀왔다. 험준한 톈산산맥을 지나갈 때는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서역정벌이 떠올랐다. 747년, 해발 4600m의 파미르 고원을 넘는 행군으로 토번(티베트)의 동맹국인 소발률(현재 카슈미르 지역)을 정복하며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751년, 당나라 세력 확장에 반발한 중앙아시아 석국(타슈켄트)이 이슬람 아바스 왕조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지금의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접경인 탈라스 강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고선지 군대는 중앙아시아 유목 부족(카를루크)의 배신으로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은 그 이후 이슬람 세력에게 넘어갔다.

19세기에도 공급망 위기는 역사를 바꿨다. 미국 남북전쟁으로 면화 수출이 중단되자 영국은 '면화 기근(Cotton Famine)'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러시아 제국은 중앙아시아를 새로운 면화 공급지로 개발했다. 영국은 면화 공급의 다변화를 고민했고, 다른 제국들도 미국산 공급 의존의 위험을 인식했다. 오늘날 공급망 위기의 원형을 19세기 '면화 기근'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러시아는 철도와 물류 인프라 확충, 식민지적 농업 개편, 관개 확대를 통해 타슈켄트,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 등 여러 비옥한 토지를 면화 재배에 우선 배분하였다. 면화생산량 증대를 위한 관개 확대와 농약·비료 집중 투입은 장기적으로 환경 파괴와 지역경제 왜곡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특히 면화재배에 필요한 막대한 용수공급으로 아랄해는 고갈되었고, 중앙아시아 면화경제의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한편 이곳 면화생산에서 고려인, 김병화의 흔적도 발견된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옥토 뒤에는,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과 전설적인 농업 지도자 김병화(1905-1974)의 피땀 어린 '면화(목화) 신화'가 깊게 새겨져 있다. 황무지를 옛 소련 최대의 면화 기지로 일궈낸 고려인과 김병화의 흔적은 중앙아시아 농업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1937년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인근으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갈대만 무성하던 황무지와 늪지대를 맨손으로 파내며 농지를 조성했다. 1940년 국영 집단농장인 '북극성 콜호즈'의 대표로 선출된 김병화는 특유의 근면함과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농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러시아 정부가 헥타르(ha)당 2톤의 면화 수확목표를 제시했을 때, 김병화와 고려인들은 수확량을 2배 이상 높게 달성하였다. 화학비료대신에 자주개자리(알파파)와 면화를 교대로 심는 윤작 농법과 독창적인 배수 시설을 도입해 척박한 땅, 중앙아시아를 옥토로 탈바꿈시켜 중앙아시아 전역에 고려인의 우수성을 각인시켰다. 연구진이 방문한 타슈켄트에는 우리나라 공기업 자회사인 GKD(Global KOMSCO Daewoo)가 자리하고 있다.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2010년 조폐공사는 ㈜대우인터내셔널과 합작하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면화 씨앗에 붙은 짧은 솜털인 린터(Linter)를 가공해 고품질 면 펄프를 생산하고 있다. 은행권용 보안용지 제조에 적합한 품질과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였다. 면화는 군사용 소재로도 활용되어 그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GKD는 공기업이 해외에서 전략 원료 공급망을 구축하고 글로벌 특수시장에 진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 능력을 보며, 알타이어 계통이라는 언어적 공통성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실크로드 곳곳에 한글과 K-웨이브가 자연스럽게 울려 퍼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최종인 국립한밭대 교수, 개교100주년 기념사업추진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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