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지방자치의 첫날,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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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지방자치의 첫날,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 승인 2026-06-30 16:40
  • 신문게재 2026-07-0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민병찬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7월 1일,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거운동 기간의 구호와 경쟁은 이제 뒤로 물러나고, 주민의 삶을 책임지는 행정의 시간이 열렸다. 당선의 기쁨은 잠시일 뿐이다. 오늘부터 단체장에게 주어진 것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며, 박수가 아니라 검증이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다. 도로와 교통, 복지와 안전, 문화와 환경, 지역경제와 교육까지 지방정부의 결정은 주민의 하루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좋은 지방행정은 거창한 말보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에서 드러난다. 주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성과는 행정의 자랑이 될 수 없다. 선거 때 제시된 공약은 이제 실천 가능성의 시험대에 오른다. 공약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지역 재정과 인구 구조, 산업 기반과 주민 수요를 냉정하게 살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대형 사업보다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정책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성과보다 앞서야 할 것은 신뢰다. 지금 지방은 저출생, 고령화, 청년 유출, 지역소멸이라는 복합 위기 앞에 서 있다. 새 단체장은 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써야 주민의 삶이 나아지는지 판단해야 한다. 행정의 성숙함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벌이는 데 있지 않고, 꼭 해야 할 일을 책임 있게 해내는 데 있다. 여기에 더해 지역마다 서로 다른 특성과 경쟁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모든 지방정부가 같은 정책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어떤 지역은 첨단산업과 기업 유치가 경쟁력이 될 수 있고, 어떤 지역은 문화와 관광, 농업과 생태환경이 미래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강점을 정확히 읽고 주민과 함께 장기적인 비전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단기적인 성과에만 매달리는 행정보다는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무엇보다 주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정책은 발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충분히 설명하고, 반대 의견을 듣고,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주민이 납득할 때 정책은 힘을 얻고, 신뢰가 쌓일 때 지역사회는 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나아간다. 행정은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민에게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현장의 작은 목소리 속에 정책의 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 지방정부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기후위기, 지역산업 재편 같은 미래 과제에도 준비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 연구기관, 시민사회와 손잡고 지역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스스로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의 미래는 행정기관 혼자 만들 수 없다. 지역 구성원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또한 지방자치의 성패는 취임 첫해에 상당 부분 결정된다. 첫 100일 동안 어떤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행정의 중심에 둘 것인지에 따라 주민의 신뢰는 크게 달라진다. 처음 세운 원칙은 임기 내내 행정의 기준이 되고,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큰 정책보다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주민은 화려한 비전보다 꾸준히 실천하는 리더를 기억한다.

취임 첫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주민은 화려한 취임사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얼마나 책임 있게 행동했는지를 기억한다. 권한은 임기와 함께 주어지지만, 신뢰는 오직 실천으로 얻어진다.

새 단체장들이 권한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할 때 지방자치는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 좋은 지방정부는 큰 목소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민의 작은 목소리까지 귀 기울이고, 오늘의 성과보다 내일의 지역을 준비하는 행정에서 시작된다. 결국 지방자치의 성공은 권한을 얼마나 행사했는가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로 평가받는다. 주민의 신뢰를 행정의 가장 큰 자산으로 삼는 지방정부만이 지역의 미래를 열고, 더 성숙한 지방자치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민병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민주평통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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