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삶이라는 피스트 위에서 '앙 가르드'를 취하는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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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삶이라는 피스트 위에서 '앙 가르드'를 취하는 아이들에게

  • 승인 2026-09-17 17:10
  • 신문게재 2026-09-18 18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반명함
오광훈 대전서부교육지원청 학생생활지원센터장
오래전 학교에서 만났던 한 아이의 눈빛이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펜싱부를 찾아온 조용한 여학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 육상부 활동을 했다는 아이였지만, 평소에는 수줍음이 많아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다.

펜싱은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훈련은 그렇지 않다. 기본자세를 익히고 좁은 피스트(Piste, 펜싱용 경기장 바닥) 위를 수없이 오가며 체력을 키워야 한다.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땀을 흘리고, 때로는 지루함도 견뎌야 한다. 어느 날 이마에 땀방울을 가득 달고 훈련하고 있는 한 아이에게 물었다."하영아, 훈련이 힘들지 않니?"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재미있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여러 차례의 질문에도 늘 동일하게 대답하던 그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힘든 과정도 견뎌낼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논어에서도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했다. 하영이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펜싱 자체를 즐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힘든 과정을 견뎌내며 묵묵히 훈련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전국대회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같은 학년의 라이벌에게 번번이 패하며 우승 문턱에서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코치 선생님과 나는 정규훈련이 끝난 뒤 하영이를 위한 야간 특별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 잦은 왼쪽 발목 부상과 경기 후반의 체력 저하를 보완하기 위해 아이에게 필요한 훈련을 하나씩 더해갔다. 그리고 3학년 두 번째 대회 4강에서 마침내 그 라이벌과 다시 만났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졌다.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역전하여 하영이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하영이 아버지와 얼싸안고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여러 번의 패배를 견디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다시 훈련한 끝에 스스로 한계를 넘어선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하영이의 성장은 거침이 없었다.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마침내 파리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느덧 대한민국 여자 사브르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펜싱에서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앙 가르드(En Garde)'라는 구령과 함께 준비 자세를 취한다. 무릎을 굽히고 몸의 중심을 낮춘 채 상대를 향해 칼끝을 겨누며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다. 돌이켜보면 하영이의 학창 시절은 삶이라는 피스트 위에서 자신만의 '앙 가르드'를 준비하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오늘도 저마다 다른 피스트 위에 선다. 누군가는 공부를 위해, 누군가는 운동을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땀을 흘린다. 그 과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때 아이 곁에 누가 있느냐일 것이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조금만 더 해보면 할 수 있어." 때로는 이런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교사는 아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해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을 오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작은 변화와 힘겨움을 살피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다려줄 여유도 필요하다.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활동 보호가 든든하게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도 각자의 피스트 위에서 힘찬 첫발을 내딛는 대전의 모든 학생에게 응원을 보낸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어제의 자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오는 9월 19일부터 진행되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하영이에게도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하영아, 지금까지 잘 해줘서 고맙다. 그동안 네가 흘린 땀을 믿고, 네가 걸어온 시간을 믿어라. 선생님은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En Garde! 삶이라는 피스트 위에 선 모두의 멋진 도전을 응원한다./ 오광훈 대전서부교육지원청 학생생활지원센터장(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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