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다비드 프레이 피아노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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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다비드 프레이 피아노 리사이틀

音에 대한 사색 …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보여주다

  • 승인 2016-11-17 11:13
  • 신문게재 2016-11-18 11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 오지희·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교수
▲ 오지희·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교수
현재 클래식음악계의 가장 핫한 피아니스트가 8일 대전에 왔다. 그것도 한국에 처음 내한했고 대전에서만 연주를 하고 떠났다. 프랑스 출신의 다비드 프레이(David Fray).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날 연주를 본 관객들은 아마도 행운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개성있는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다는 자체도 기쁨이지만, 그가 보여준 음악적 표현은 실로 놀라웠다. 레퍼토리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1번에서 8번, 슈만의 노벨레테 op.21의 8번, 브람스의 7개의 환상곡 op.116으로 세 곡 모두 진지하고 깊이있는 정통 클래식 고전음악이다.

최근 음악회에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선택한 피아노 연주자들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치기 어렵고 외우기 힘들고 표현이 난해한 바흐 곡을 들고 온 프레이의 바흐는 번호가 바뀔 때마다 똑같은 바흐가 아니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1번 프렐루드에서부터 프레이의 바흐에 대한 울림은 집요하게 표현됐다. 음 하나하나에 모여진 집중력이 다양한 음색으로 퍼져나갔고 각 번호마다 모두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색깔이 분명한 바흐였다.

프레이가 외관상 보여주는 모습은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연상케 한다. 음악에 집중할 때 어깨를 최대한 굽혀 얼굴을 건반 위에 가깝게 붙이고 허밍으로 부르는 노래소리가 살짝 들리며 움직임이 큰 동작은 일종의 퍼포먼스 같다. 하지만 외관과 음악적 본질은 분명 달랐다. 프레이의 음악에는 과장과 허위가 없다. 한 악구를 정리하는 프레이즈는 가볍게 마무리된다. 자연스럽게 음악이 흐를 때는 솜털보다 가볍게 느껴지지만, 강력한 포르티시모로 폭발할 때의 단단한 타건은 흡사 무수한 담금질을 겪은 강철쇠를 연상시킨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리듬에 대한 안정성이었다. 빠른 영역에서 충분히 음악적 템포를 즐기면서도 느린 부분에서조차 결코 늘어지지 않는 견고한 리듬감은 음색에 대한 강렬한 변화를 밑바닥부터 지탱해준다.

두 번째 곡인 슈만의 노벨레테는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슈만이기에 붙일 수 있는 제목이다. 단어의 뜻이 단편소설을 의미하듯 8개로 묶인 일종의 음악적 단편소설집이다.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인 흐름을 갖고 있는 노벨레테 중 마지막 8번을 연주한 프레이는 풍성한 페달 사용과 긴장과 이완의 음악적 조절을 통해 슈만 음악에 내재된 시적 서정성을 탁월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곡인 브람스의 7개의 환상곡은 브람스의 음악적 영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작곡된 작품이다. 격정적이고 활발한 움직임을 갖는 3개의 카프리치오와 상대적으로 정적인 4개의 인터메조인 간주곡이 들어있다. 브람스 환상곡을 해석한 프레이의 음악에는 오르간적 표현이 엿보인다. 음색의 다양한 변화와 가장 작은 음량에서 가장 큰 음량으로의 변화는 마치 오르간의 페달을 사용해서 음폭이 증대되는 것 같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피아니시모의 음악적 감각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환상곡이지만 브람스의 고독이 배어있는 듯한 쓸쓸한 울림조차 프레이의 손끝에서는 평온함을 부여한다.

감동의 여운이 길었던 다비드 프레이의 연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가 선택한 레퍼토리는 테크닉뿐 아니라 음악적 표현에서 깊은 사색이 요구되는 작품들이다.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음색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자세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 그 자체다. 앙코르곡인 쇼팽 녹턴 2번의 섬세한 표현력과 부조니 편곡의 바흐 코랄 프렐루드 BWV 659,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에서 들려준 밀도높은 음색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더구나 사인회에서 보여준 자신의 음악을 들으러 온 관객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여느 사인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대에서 보여준 진지함과 대조적으로 친근하고 격의 없는 태도는 다비드 프레이라는 한 진정한 예술가가 걸어가는 또 다른 대가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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