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괴물, 그 형체없는 목소리의 공포

  • 문화
  • 문화 일반

우리시대의 괴물, 그 형체없는 목소리의 공포

작가 백민석 일곱번째 장편소설 '공포의 세기' 출간

  • 승인 2016-12-01 11:04
  • 신문게재 2016-12-02 12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공포의 세기, 백민석, 문학과지성사 刊
<br />
▲공포의 세기, 백민석, 문학과지성사 刊
작가 백민석이 일곱 번째 장편소설 '공포의 세기'(문학과지성사)를 냈다. 1995년 등단 이후 8년 동안 7권의 책을 써낸 뒤 돌연 잠적, 10년 만에 침묵을 깨고 나타난 소설가 백민석이 또다시 엄청난 괴력으로 소설을 써내고 있다.

2013년 복귀와 함께 출간한 소설집 『혀끝의 남자』 이후 『수림』 연작과 『아트 워』 연작 등을 발표하는 동시에 '문학과사회'에 연재한 장편소설 『공포의 세기』를 책으로 엮었다.

무서운 존재가 어느 날 살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 꿈과 현실을 쫓아다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괴물로 태어나거나,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모비'라는 괴물 같은 소년의 잔인무도한 강도 행각과 함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튀어나온 망령이 '경, 심, 령, 효, 수'라는 인물들을 따라다니며 기괴한 행동과 범죄를 이어가게 하는 가운데, 이들은 '불의 혀'라는 사인으로 우리 세기의 '괴물'로서의 인증을 해 보인다. 악의 경계도 범주도 없는 '우리의 세기', 2016년 오늘,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여기에 펼쳐진다.

오늘날 우리는 각종 '악'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혐오 범죄, 권력형 비리, 지위를 앞세운 성범죄 등 약자를 향한 범죄에 우리 시대의 모두가 몸서리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그 실체와 대상이 불분명할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이 책에서는 모두 우리 사회 공동체 안에서 공통된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 도처에서 각자의 타깃을 향해 테러를 저지른다. 서로 간에 원한도 선과 악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눈에 안 보이고, 실체가 없고,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잡히지 않는 말 그대로 호러에 가까운 악의 현현. 이성이나 과학 같은 근대성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어떤 것. 소설의 중심축이 되는 모비는 그렇게 만들어진 '안티크라이스트'이다. 작가는 이러한 악의 모티프가 코스모스의 질서가 아닌 카오스의 질서에서 살아가는 '현대성'의 표현이며, 이것은 '헬조선'이라는 삶의 조건일 수도 있고 더 근본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대'라는 조건에서 더 이상 장발장은 없다. 다만 우리 안에 '악'의 조건이 있을 뿐이다. 내가 언제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공포의 세기』가 전하는 또 하나의 공포다.

이번 소설 공포의 세기의 가장 강렬한 충격은 등장인물들 간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 '불의 혀' 모티프에서 느낄 수 있다. 모비에서 번지는 폭력 에너지는 '경, 심, 령, 효, 수'라는 인물을 통해 각자의 개연성과 원초적 기억을 바탕으로 발산된다. 모비를 지배하는 영적인 기운이나 '경, 심, 령, 효, 수'를 움직이는 망령은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우리의 땅에 피를 뿌린다. 무엇으로도 통제 불가능한 정신적 묵시록의 세계에서 백민석만의 '충격' 문법은 지금을 대변하는 소설 문학의 정수를 느끼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또한 최근 대한민국이 '국정 농단 사태'로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있다. 공포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두려움에 지쳐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공포 이후의 공포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실체 없는 음모일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 소설은 문학이 어떻게 '현재'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세상에는 분명한 악이 있지만 또한 구분이 불분명한 선과 악이 혼재하며, 권력과 재력 앞에 무너진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안의 누구든 내 안의 무엇이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아 들게 한다.

절망적인 함성이 광장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지만 우리는 이 절망과 공포를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국가 사태와 공포의 세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이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획]3.4.5호선 계획으로 대전 교통 미래 대비한다
  2. 충청권 광역철도망 급물살… 대전·세종·충북 하나로 잇는다
  3. [사이언스칼럼] 아쉬움
  4. [라이즈 현안 점검] 거점 라이즈센터 설립부터 불협화음 우려…"초광역화 촘촘한 구상 절실"
  5. "성심당 대기줄 이제 실시간으로 확인해요"
  1. [사설] 이삿짐 싸던 해수부, 장관 사임 '날벼락'
  2. 금강유역환경청, 화학안전 24개 공동체 성과공유 간담회
  3.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4. 실패와 편견 딛고 환경보전 실천한 빛나는 얼굴들…"금강환경대상이 큰 원동력"
  5. 대전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 '어린이 기후 이야기' 2회차 참가자 모집

헤드라인 뉴스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충남도가 추진 중인 '힘쎈충남 풀케어' 정책이 지역의 출산·육아 친화 환경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단편적인 복지 지원을 넘어 도민의 생애주기 전반을 뒷받침하는 전방위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기업의 근무문화 혁신과 결합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과 현장이 서로 호응하며 조성한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 '힘쎈충남 풀케어'는 충남도가 저출생 위기 해결을 핵심 도정 목표로 삼은 이후 마련한 통합 돌봄 모델이다. 임신·출산·돌봄·교육·주거·근로환경 등 도민의 일생을..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