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변화무쌍한 전개… 소설의 무한한 자유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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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변화무쌍한 전개… 소설의 무한한 자유 느껴봐

  • 승인 2017-02-16 11:12
  • 신문게재 2017-02-17 12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고래

▲ 고래/천명관 지음/문학동네/2004 刊
▲ 고래/천명관 지음/문학동네/2004 刊
2005년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천명관의 장편소설인 '고래'라는 책을 선물을 받았다. 이 작품은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었으나 그 당시 천명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작가였다.

저자 프로필 사진은 익숙하지 않은 무뚝뚝한 표정에 빡빡 머리였고 붉은 색 표지에는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의 책꽂이에서 먼지만 쌓인 채 1년 정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 한번 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에 서너 장을 읽게 되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소설의 기이함에 강렬하게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틀을 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설로, 낯설지만 굉장한 재미와 흡인력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작품도 작품이지만 천명관이란 작가에 대해 많은 호기심과 경외감을 갖게 되었고 진짜 '고래' 같은 작가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나의 눈은 노안으로 침침해지고 오래 읽다보면 두통까지 찾아와 선뜻 두꺼운 책은 읽을 엄두도 못 내지만, 다시 한 번 그때의 감흥과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싶어 돋보기를 끼고 쉬엄쉬엄 읽으면서 다시 '고래'를 만나보는 기회를 만들어 봤다.

'고래'의 줄거리를 말로 풀어서 얘기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 소설은 너무 많은 사건과 상황, 낯설음, 기이함, 판타지, 현실과 환상의 경계, 신화적·설화적인 세계 등 파닥파닥 날뛰는 듯한 변화무쌍한 전개를 직접 육감적으로 느끼면서 읽어야 맛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인물의 내면 및 공간의 묘사를 거의 배제한 채 스토리가 아주 빠르게 전개되어 엄청난 양의 사건과 인물들의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색의 국밥집 노파이야기, 사업수완이 좋은 금복이야기, 벙어리이고 거구지만 오감이 깨어 있는 춘희이야기로 이어지는 여인 삼대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다.

노파는 평생 국밥 집을 하며 지독하게 돈을 모으지만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딸의 눈을 애꾸로 만들어버린 노파는 원한을 가진 자신의 딸에게 죽임을 당함으로 한을 품고 죽는다. 훗날 딸은 벌을 몰고 다니는 백발이 성성한 애꾸눈이 된다. 오랜 후에 금복은 국밥 집 노파의 집에서 장사를 하게 되는데, 비가 억수로 내리는 어느 날 노파가 천장에 숨겨둔 엄청난 돈이 비에 젖은 천장을 뚫고 나와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 돈으로 사업수완이 좋은 금복은 커피, 벽돌공장, 영화관 등 사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금복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술주정뱅이인 홀아비와 함께 살다가 동네에 온 생선장수의 트럭을 얻어 타고 그곳을 도망친다. 생선장수를 따라 바닷가까지 갔다가 금복은 난생 처음 '고래'를 본다. 그 이후 금복은 평생 처음 본 '고래'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산다. 금복은 늙은 '생선장수'를 버리고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인 '걱정', 순정파 깡패 '칼자국', 벽돌을 만드는 '文', 미모의 '수련'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산골 소녀였던 금복은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면서 여러 가지의 사건과 삶의 역경 맞이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수련'을 만나면서 금복은 여자에서 서서히 남자가 되어간다. 여자가 남자가 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지만 소설은 상상의 최대 경계를 넘나드는 끝도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을 만들어 간다.

춘희는 금복이와 죽은 거구인 '걱정'의 딸이다. 금복은 4년 전 죽은 '걱정'의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흡사 저주받은 것과 같았고, 춘희는 금복에게 자신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춘희는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 벙어리인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 고립되어 있지만, 양아버지 '文'으로부터 벽돌 굽는 것을 배우며 벽돌공장에서 자란다. 100kg 넘는 거구인 춘희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다리며 벽돌을 굽는데 몰입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춘희는 좋은 벽돌을 찾는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 불리게 된다.

소설은 세 인물을 거치며 인생의 모든 질곡을 담아낸다. 돈과 권력, 사랑과 치정, 배신과 죽음, 인정과 비정함, 역사와 개인을 넘나들며 많은 엄청난 얘기를 쏟아낸다.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그치지 않은 것은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탄탄하게 엮어가는 구성력과 소설의 완성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문학의 자유, 소설의 자유, 삶의 자유 그리고 고래 같은 작가의 힘으로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자유를 경험하게 한다.

방미숙 신탄진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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