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첫 영화 편지를 띄우며

  • 문화
  • 문화 일반

<김선생의 시네레터> 첫 영화 편지를 띄우며

  • 승인 2017-06-15 10:16
  • 신문게재 2017-06-16 11면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새벽길을 떠납니다.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갑니다. <서편제>(1993)의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눈을 맞으며 긴 둑길을 걸어가듯이. 빛을 찾아서, 길을 찾아서 떠납니다.

엊그제 가르치는 아이들과 <시네마천국>(1989)을 보았습니다. 이탈리아 남쪽 시칠리아 섬의 오래된 극장에 마을 사람들이 모입니다. 공용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극장이 무너질 때 사람들 얼굴에 어리던 감회를 생각합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일은 단지 두어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습니다. 꿈이 있고, 추억이 있고, 위안이 있습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어린 토토가 어느 날 밤 극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극장 밖 건물에 영상을 비출 때, 영화는 빛의 알갱이들이 모여 만든 물질을 넘어 환희와 감격이 됩니다. 그 때 사람들 마음마음에는 각기 다른 빛깔과 문양이 새겨졌을 겁니다.



<쇼생크 탈출>(1994)을 생각합니다. 앤디 듀프레인이 교도소 방송실 문을 잠그고 틀어낸 ‘편지 2중창’은 높은 벽을 허물고, 차가운 철조망을 무너뜨렸습니다. 새처럼 날아가는 자유를 느낀 것은 거기 갇힌 사람들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밖의 우리도 무언가에 갇혀 살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첨밀밀>(1997)도 생각납니다. ‘OPPORTUNITY FURNITURE’라고 쓰인 가게 길 건너편에 선 카메라가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인생사의 희비나 애환과 상관없이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순간 영화는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두 주에 한 번씩 편지를 쓰겠습니다. 어린 날 문 밖을 서성이며 길래 오지 않는 기별을 기다리며 설레고 조마조마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어느 봄날 밤 별 기대 없이 영화관에 갔다가 별처럼 빛나는 조승우와 손예진을 만났던 <클래식>(2002)에서처럼 그렇게 편지를 써 보겠습니다. 가슴에 남은 장면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거기서 우리를 웃고 울게 한 배우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또 때론 한 편의 영화가 들춰내는 역사와 무감각하게 잊고 지내던 사회현실에 대해서도 쓰겠습니다.

빛의 알갱이들이 은빛 장막 위로 만들어낸 잔치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먼저 초대 받은 손님일 뿐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빛들이 펼쳐내는 갖가지 무늬와 움직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획]3.4.5호선 계획으로 대전 교통 미래 대비한다
  2. 충청권 광역철도망 급물살… 대전·세종·충북 하나로 잇는다
  3. [사이언스칼럼] 아쉬움
  4. [라이즈 현안 점검] 거점 라이즈센터 설립부터 불협화음 우려…"초광역화 촘촘한 구상 절실"
  5. "성심당 대기줄 이제 실시간으로 확인해요"
  1. [교단만필] 잊지 못할 작은 천사들의 하모니
  2. 충남 김, 글로벌 경쟁력 높인다
  3. [사설] 이삿짐 싸던 해수부, 장관 사임 '날벼락'
  4. 건양어린이집 원아들, 환우를 위한 힐링음악회
  5. 대전웰니스병원, 환자가 직접 기획·참여한 '송년음악회' 연다

헤드라인 뉴스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충남형 풀케어'가 만든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

충남도가 추진 중인 '힘쎈충남 풀케어' 정책이 지역의 출산·육아 친화 환경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단편적인 복지 지원을 넘어 도민의 생애주기 전반을 뒷받침하는 전방위 돌봄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기업의 근무문화 혁신과 결합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과 현장이 서로 호응하며 조성한 '출산·육아 친화 생태계'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 '힘쎈충남 풀케어'는 충남도가 저출생 위기 해결을 핵심 도정 목표로 삼은 이후 마련한 통합 돌봄 모델이다. 임신·출산·돌봄·교육·주거·근로환경 등 도민의 일생을..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