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마로니에 나무가 바라 본 안네 프랑크

  • 문화
  • 문화/출판

[맛있는 책읽기]마로니에 나무가 바라 본 안네 프랑크

  • 승인 2017-06-29 09:56
  • 신문게재 2017-06-30 11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나무들도 웁니다



-이렌 코앙 장카 지음, 아무리치오 A.C. 그림/여유당/2011-

어느 봄,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나선 길이었다. 하얀 꽃 촛대를 수 없이 매단 푸른 나무를 만났다. 꽃 모양이 인상적이라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후 돌아와서 검색해 봤다. 나무는 나도밤나무과의 칠엽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마로니에 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도밤나무라고 하니 율곡 이이 선생님의 설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말 마로니에 열매는 밤과 꼭 닮아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책을 읽은 뒤로 마로니에 나무는 꼭 안네 프랑크의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먼지 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나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예요. 4월엔 내 몸에 새싹이 나고 꽃과 잎이 한꺼번에 쑤욱 돋아나요. 나는 한 그루 마로니에 나무랍니다.’라고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60년 전 끔찍하게 나쁜 일들이 세상을 휩쓸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녀와 같은 유대인에게 모든 게 금지되었어요. 1940년부터 유대인이 해서는 안될 일이 너무나 많았어요. 자전거를 가져도 안되고 전차와 버스를 타도 안되고 3시 전과 5시 뒤에 장을 봐도 안되고 수영장에 가도 안되고….’

1942년 소녀네 가족이 비밀의 집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이 그려진다. 방울방울 동심원을 그리며 번지는 빗물이 소녀의 얼굴에 고이는 그림을 보며, 한숨이 포옥 새어 나온다. 정말 슬퍼진다.

이 날 빗속을 걷는 것이 마지막 자유였다고 나무는 말해준다. 그리고 소녀가 다락방 창으로 마로니에 나무를 내다본 날 소녀는 이렇게 일기를 쓴다.

‘우리 둘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파란 하늘과 앙상한 마로니에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맺힌 영롱한 물방울과 갈매기와 다른 여러 새들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햇살 속에서 은빛으로 빛났다. 가슴 벅찬 감동이 북받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날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 마로니에 나무에 꽃이 활짝 폈다. 빈틈없이 빽빽하게 잎으로 덮인 나무는 지난 해 보다 한결 아름답다.’ 소녀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자유를 느꼈을까? 연필 드로잉의 그림과 많지 않은 색의 조합이 소녀의 슬픔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가 끝난 것도 나무의 마음으로 읽게 되다.

나무는 곧 자신이 베어질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베어 낼 때 난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나를 넘어뜨리기 전에 내 몸에서 눈 하나를 떼어낼 거예요. 그리고 내가 남긴 빈자리에 그것을 심겠지요.’ 마로니에 나무는 죽음을 예감하고 150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과 2년 동안 숨어 살았던 안네의 삶을 간결하고 시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1년 이탈리아 환경도서상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글쓴이 이렌 코앙 장카는 프랑스 에손 시의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소설을 여러 권 썼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일을 한다니 괜스레 필자가 자랑스러워진다.

이 책은 내용이 길거나 결말에 반전이 있지는 않다. 다만 고전으로만 읽히던 안네 프랑크의 일기 대신에, 조금은 낯선 시각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성인까지 온가족이 같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전쟁의 비극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족과 함께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이다. 150년간의 살아온 생을 마감하는 마로니에 나무가 눈 하나에 희망을 버리지 않듯이, 우리 모두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나무는 2010년 8월 24일에 생명을 다했다고 한다. 이를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를 하기도 했다. 안네 프랑크의 미로니에 나무, 새 눈 하나가 암스테르담에 심겨 있는지 궁금하다. 32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책이지만 읽는 독자에게 많은 생각의 기회를 가져다줄 이 책을 추천한다.

이기영(가수원도서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림인대전] ‘성골 유스’ 김지호, 대전하나시티즌 미래의 방점을 찍다
  2. “파닭과 맥주까지” 세종 조치원 복숭아 축제, 7월 24일 개막
  3. 2026 여름 3종 '명상 클래스' 세트… 내면 근력 키워볼까
  4. 제1회 세종 마라톤 '모두 런', 6월 13일 막 올린다
  5.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1. '제46회 장애인의 날', 세종시서 누리는 당연한 일상
  2. 세종 보육교직원 '개정 어린이집 평가제 준비' 만전
  3. 오늘은 대전의 아들 황인범의 날! 대전 스포츠펍 응원 현장
  4. [2026월드컵]"평일 오전이 작은 경기장으로"… 대전 스포츠펍 채운 '붉은 함성'
  5. 세종 한글·공예 문화콘텐츠 확산… 전국 사로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골 직감하는 순간 가슴 벅찼다"… 아들의 첫 골을 지켜본 황인범 아버지 진심

"골 직감하는 순간 가슴 벅찼다"… 아들의 첫 골을 지켜본 황인범 아버지 진심

북중미 월드컵 예선 1차전 체코전에서 소중한 동점골을 터트리며 대한민국 1승을 이끈 황인범, 그의 뒤에는 평생 그를 지켜보며 묵묵히 응원을 보내는 가족들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첫 골을 지켜본 황인범 선수의 아버지 황서연 씨는 "오늘의 기쁨 뒤에는 넘치는 사랑을 보내 준 대전팬들이 있었다"며 "부상 이슈로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좋은 출발을 보여줘 다행이다. 남은 경기에도 많은 성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황인범 아버지 황서연 씨 와의 1문 1답-황인범 선수가 월드컵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소감은?▲선수 가족이라면..

[드림인대전] ‘성골 유스’ 김지호, 대전하나시티즌 미래의 방점을 찍다
[드림인대전] ‘성골 유스’ 김지호, 대전하나시티즌 미래의 방점을 찍다

대전하나시티즌의 미래를 책임질 '성골 유스' 김지호(고2)가 프로 무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전하나시티즌은 지난 4월 유스 출신 유망주 4인과 준프로 계약을 체결하며 미래 자원을 확보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겸비한 공격수 김지호는 단연 돋보이는 재목이다.김지호 선수는 대전하나시티즌 U-12와 U-15를 모두 거친, 그야말로 구단의 역사를 함께해 온 성골 유스 선수다. 188cm라는 장신임에도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파괴력을 자랑한다. 그는 "대전 U-12 시절부터 프로팀 입단이라는 하나의..

천안법원, 무보험 차량을 운전한 혐의 `벌금 1000만원`
천안법원, 무보험 차량을 운전한 혐의 '벌금 1000만원'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5단독은 무보험 차량을 운전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2025년 4월 28일부터 2026년 1월 20일까지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승용차를 총 55회에 걸쳐 운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류봉근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승용차를 운행한 횟수 및 반복성에 비춰 판시 각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다"며 "피고인은 과거 동종의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았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천안=하재원 기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 ‘건강한 치아를 위해’ ‘건강한 치아를 위해’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