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박3일 야생화 걷기여행] 구름 속 거닐듯 꽃밭을 뛰놀 듯… 온전히 자연이 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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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2박3일 야생화 걷기여행] 구름 속 거닐듯 꽃밭을 뛰놀 듯… 온전히 자연이 되는 시간

노고단에서 천왕봉 너머 써리봉까지 40㎞…나무 밑동에 바위틈까지 생명으로 꽉 찬 그곳 물레 같대서 물레나물과 숨어서 피는 매미꽃에 눈도장, 큰까치수염ㆍ오이풀 앞에선 은은한 향기…하산해 마주한 시멘트길의 막막함이란

  • 승인 2017-07-20 12:28
  • 신문게재 2017-07-21 9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 말나리
▲ 말나리
▲ 지리산 전경
▲ 지리산 전경
장마전선이 들락거리던 7월 둘째 주 이른 휴가를 받아들고 서대전역 오전 12시 43분발 호남행 기차에 올랐다.

하루의 피로가 정절에 달하는 시각 객실 듬성듬성 보이는 승객들은 좌석에 눌려 있었고, 나도 잠을 덜 이룬 두통에 배낭을 선반에 올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기상청 산악날씨와 대피소 예약상황을 확인하며 스르르 잠들때쯤 전남 순천시 구례구역에 도달했다. 새벽 3시 20분 작은 기차역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배낭을 멘 등산객 10여명 이었고, 역전 건너 정차한 구례군농어촌버스에 약속한 듯 오른다.

지리산에서 혼자서 2박3일, 버너와 코펠, 식료품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성삼재 고개(해발 1094m)에서 엔진이 달린 기계에서 몸을 내린다.

▲ 노랑원추리
▲ 노랑원추리
예보대로 비는 많지 않았으나 동트기 전부터 바람이 고 짙은 구름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게 없었다. 헤드 랜턴을 켜고 등산용 스틱을 앞뒤로 저어가며 앞사람 발끝만 비추며 쫓아 오르기 시작한다.

굽이굽이 산줄기 많은 지리산은 등산로도 여러 개인데 사람들이 주로 오가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봉과 써리봉에서 대원사방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리산의 여러 자락을 연결하는 등뼈에 해당하는 길인에 길이 멀고 험하지만, 풍경과 꽃, 나무를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산행시작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노고단(1507m)에서도 사실상 걸어갈 정도의 거리만 보였고 온 세상이 구름에 덮여 있었다.

노고단은 특히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사전 예약한 등산객에게만 탐방을 허용할 정도로 보호되는 곳으로 구름 위의 꽃밭은 이날 볼 수 없었다.

▲ 큰까치수염
▲ 큰까치수염
반대로 천왕봉을 향해 걸어가면서 주변에 핀 야생화와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를 관찰하는 재미가 보물찾기와 다름없었다. 뚜벅뚜벅 걷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꽃은 지리털이풀이다. 분홍색 알갱이가 오돌토돌 매달린 게 차라리 열매 같고 꽃이라기보다 먼지떨이쯤 여길 만 한데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된 귀한 야생화다.

또 그 주변 볕이 잘 드는 양지마다 큰까치수염이 지천이다. 희고 작은 꽃이 줄기 끝에 빽빽이 달렸는데 꽃자루가 보리이삭처럼 굽어 밑에서부터 꽃이 피어 가는 게 특징이다.

또 수풀을 헤치며 가다 보면 탁구공만 한 봉우리를 등산로에 고개를 내민 꽃이 있었다. 온통 푸른 숲에서 노랑 꽃잎은 단연 눈에 띄었고 가까이 가서야 지리산의 상징 같은 꽃 노랑원추리를 알아봤다. 오후에 피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시드는 꽃잎은 하루만 볼 수 있다는 데 운이 좋았다.

▲ 지리터리풀
▲ 지리터리풀
임걸령 고개에서 약수에 목을 축이고 지리산의 풍경을 가장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반야봉(1732m)까지 다녀오자 슬슬 체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잠시 쉴 때마다 17㎏짜리 배낭을 어깨에서 내려놓는 것도 버거웠다.

흡사 작은 밤송이를 머리에 인 것처럼 생긴 꽃은 수리취였는데 뾰족한 가시가 많아 멀리서만 바라봤고, 금강애기나리는 가여움을 자아냈다. 애기나리는 고산지역에서만 자라는데 어찌나 작고 가늘던지 입김에 꽃잎이 떨어질까봐 숨죽여 지켜봤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밤을 보내고 맞은 둘째 날은 다행히 구름이 걷힌 비교적 맑은 날씨였다. 수도꼭지가 없으니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준비한 버너에 밥을 지어먹고도 설거지는 휴지로 쓱쓱 닦아내는 게 전부다.

▲ 매미꽃
▲ 매미꽃
대피소에서 만난 등산객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또다시 오전 7시부터 천왕봉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한동안 이어지는 바위길을 오르느라 숨이 가빠질 즈음 앞이 탁 트이고 너른 곳이 나타나면서 키 작은 나무와 온갖 꽃들이 자라는 세석고원을 만나게 된다. 큰 바위 없이 잔돌만 있어 세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고산지대에 펼쳐진 평지에는 일월비비추, 산오이풀, 좁쌀풀을 비롯해 수많은 풀꽃이 자라고 구상나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구상나무는 세계에서도 우리나라 그것도 지리ㆍ한라ㆍ덕유산의 높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인데 ‘Korean fir’이름으로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로 선호한다. 키가 20m쯤 자라고 가지가 옆으로 넓게 뻗어 원통형 솔방울이 하늘을 향해 선다는데 이날은 볼 수 없었다.

▲ 돌양지꽃
▲ 돌양지꽃
종주길을 걷다 보면 쓰러진 나무와 풍화작용으로 갈라진 바위를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어느 곳도 공백이란 없었다. 햇볕 드는 곳이면 노란 돌양지꽃이 이끼처럼 뿌리내렸고 음지에 습기가 많은 곳이면 바위떡풀과 바위취가 움트고 있다.

봉우리와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지는데 길옆에서 선풍기 날개 같은 꽃잎을 지닌 물레나물, 산수국 같은 꽃들이 보물찾기하듯 순간순간 눈에 띄었다. 지리산에서는 지금도 간혹 새로운 식물이 발견되는데 해발 1500m급 봉우리가 20개 이상이고 바람과 구름이 산자락에 걸리고 골짜기에 흩어지며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식물군이 다양한 원동력이다.

고산지대의 지표식물인 좀고채목도 세석평전에서 관찰할 수 있고, 눕다시피 쓰러져 자라는 나무부터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기형적 나무까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모습 그대로였다.

▲ 백당나무
▲ 백당나무
연하봉(1721m)에서 바라본 풍경은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천왕봉(1915m)에 오르기 전 마지막 장터목대피소에서 둘째 밤을 보냈다. 일출을 보려고 오전 4시 대피소를 출발해 민둥산 같은 제석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숲이 빽빽한 곳이었는데 불이 나면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천왕봉에서 내려와 3시간 거리인 중산리 대신 6시간 거리의 써리봉과 유평리 방향으로 하산한 것은 마지막까지 꽃과 나무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란 매미꽃이며 분홍 말나리, 뒤늦게 핀 철쭉 두 송이를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55시간 30분을 보내고 마주한 평범한 시멘트 도로 앞에서 겁이 났다. “시멘트 길에서 어떻게 살았던 거지”임병안 기자 victorylba@

*가는 길=서대전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전남 구례까지 이동 후 시내버스로 지리산 입구까지 이동.

*돌아오는 길=중산리 방향 하산 후 시내버스로 진주터미널 이동, 고속버스로 대전 도착.

*대피소는 사전예약이 필수며 모포와 간단한 식료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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