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가짜뉴스 규제, 행정부가 앞장설 일 아니다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가짜뉴스 규제, 행정부가 앞장설 일 아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9-08-20 16:25
  • 신문게재 2019-08-21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이승선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위험한 발언을 했다. 후보자 지명을 받은 뒤 임시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언론에게 한 말이 그러하다. 그는 먼저 기자들에게 자신은 법률가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 점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정치권력이 언론의 정부비판을 힘으로 옥죄던 시절에 그는 핍박받은 언론인들의 변호사로서 열심히 일했다. 따라서 자신이 법률가이고 표현의 자유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는 '의도적인 허위 조작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에 있고 따라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이명박 전 대통령식 어법으로 재구성하면 "내가 법률가여서 잘 아는데, 누구보다 잘 아는데,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는 헌법 21조의 표현자유 보호대상이 아니야"라는 뜻일 것이다. 혹시 재판정에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디어관련 정부부처를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가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



무릇 공직자라면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므로 미흡한 부분에 대해 '경청'과 구성원의 지혜를 빌리겠다는 발언을 앞세워야 한다. 설령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더라도 미디어와 소통 정책을 책임지는 부서의 책임자라면 스스로 듣는 귀의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주더라도 부하들은 건설적인 의견을 표현해야할지 아니면 자제하는 것이 나을지 고민할 것이다. 하물며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허위조작 정보 그거 보호대상 아니야, 그러니까 규제가 당연해'라고 말한다면 위계적인 공직사회에서 누가 감히 비판적인 의견을 순순히 제시하겠는가?

더욱이 그는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이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에 대해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 21조 4항은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문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두 세 차례 논쟁을 했다. 헌법재판소의 잠정적인 결론에 따르면 이 규정은 '선언적'인 것이다.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전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래야만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를 규제하는 법률이 위헌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토대가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헌법재판소는 애초 '음란한 표현'은 헌법의 표현자유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후에 헌재는 '음란한 표현'도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안에 있다고 선례를 변경했다. 정말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음란한 표현과 보호를 받아야 할 음란한 표현을 제대로 구분하려면 음란한 표현이 보호 영역에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는 논리의 귀결이었다.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지 않겠는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임기 중에 사의를 표명한 것을 두고 '가짜뉴스 소극 대응설'이 불거졌다. 한상혁 후보자가 지명을 받은 직후 '의도적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연히 밝힌 맥락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가짜뉴스나 허위조작 정보가 우리 사회의 공론을 오염시키고 시민의 이성을 마비시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이 이뤄지기도 전에 특정한 정보를 두고 행정부가 미리 '의도적인 허위조작 정보'라고 '단정'하고 제재하려는 태도가 민주주의에 더욱 해롭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다루는 정부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그러한 인식을 한다면 더더욱 해롭고 위험한 일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디어~맥도날드 세종 1호점, 2027년 장군면 둥지
  2. 세계효운동본부와 세계의료 미용 교류협회 MOU
  3. 성탄 미사
  4. 이장우 대전시장에 양보? 내년 지방선거, 김태흠 지사 출마할까?
  5. [다문화] 이주배경인구, 전체 인구 5% 돌파
  1. [충남 10대 뉴스] 수마부터 행정통합까지 다사다난했던 '2025 충남'
  2. [대전 다문화] "가족의 다양성 잇다"… 2025 대덕구 가족센터 성과공유회
  3.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4. [세상보기]섬세한 도시
  5. [대전 다문화] 다문화가정 대상 웰다잉 교육 협력 나서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