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희망할 수 있는 용기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희망할 수 있는 용기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0-12-28 15:31
  • 신문게재 2020-12-29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2020112301001974900082971
김명주 충남대 교수
어느 해도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는 없었다. 그만큼 인간사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한 해 내내 역병의 공포에 움츠리다 요 며칠 매일 천명 안팎으로 역병의 확진자가 쏟아지니 모두가 아연실색, 마침내 개발된 백신이 살려낼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고, 게다가 변종 코로나가 다시 창궐한다니 악몽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찰개혁'과 '위조 표창장 입시비리'라는 별개일 수 있는 사안들이 마치 양자택일 양 정치권이 일 년 내내 편가르며 힘 겨룰 때 성향분석에 근거한 플랫폼 알고리즘은 다수 국민의 편향성을 대책 없이 부추겼다. 천인공노할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은 인간성의 가장 처참한 밑바닥까지 드러냈다.

물론 다사다난 중에 불길한 소식만이 전부는 아니다.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의료인의 사명감, 사지를 향하여 한걸음에 달려가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헌신도 있었다. 공포스런 n번방 성범죄를 양지로 끌어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고 법제화한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팬데믹 때문에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이 임박했으며, 따라서 인식의 대전환을 마음속에 각인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무엇보다 역병 때문에 생계가 곤란해진 이웃에 대한 걱정은 진심이다. 흔히들 두터운 아파트 벽 뒤에서 무심하다고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대다수 우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이웃을 도울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 첫머리에서 1914년 1차세계대전 중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건을 말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5개월째, 10만명의 군인들은 쥐와 해충이 우글거리는 숙소, 변변한 화장실이 없어서 곳곳에 오물냄새가 진동하는 참호, 양 진영사이 무인지대에는 매장 못해 동료 시체가 썩어가는 전장에서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촛불이 밝혀졌고, 캐롤 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적이었던 그들은 그때 참호에서 빠져나와 서로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비스켓을 건넸으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병사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영웅적 용기 대신, 다른 종류의 용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면서 서로를 위로할 용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희망의 이유가 되었다.

세계적 포럼인 캐나다의 멍크 디베이트는 2015년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하여 "인류는 과연 진보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였었다. 이들 중 핑커는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를 10가지 들고 있다. 첫째, 인간의 평균 수명은 150년 전만 해도 30년이었지만, 지금은 70년이고, 두 번째 천연두와 우역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퇴치했으며, 세 번째, 200년 전만 해도 세계인구의 85%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10%로 내려갔고, 네 번째, 작은 내전은 지속되지만 강대국 간의 파괴적 전쟁은 지난 6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 이외에도 안전, 자유, 교육, 인권, 성평등, 지능의 향상을 인류 진보를 증명하는 데이터로 제시한다.

물론 핑커의 맞수인 보통이나 글래드웰은 핑커의 데이터 기반 낙관주의를 비웃으면서, 기후변화나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을 경고한다. 그러나 비록 네 사람 석학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실은 한결 같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똑같은 우려와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발휘하는 능력은 아니다. 희망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오바마는 최근 인터뷰에서 라인홀드 니버의 교훈을 인용한다. "세상의 잔혹함, 탐욕, 폭력적인 현실을 선명하게 직시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보존하는 것, 이는 의지력과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하는 행위다" 새해엔 희망할 용기를!!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괴산고추축제에 32만2천명 찾아···건고추 완판 12억 원 판매
  2. [단독]단양수중보 3억6000만원 소송…관리책임 갈등 다시 법정으로
  3. 외딴섬 '집현동'이 뜨겁다… 9월엔 세종 '공동캠퍼스' 축제로
  4. 대전 선도지구 구역들, 주민대표단 신청 분주한데 승인 지연돼 '발 동동'
  5. 목요경마 신설, 평일 온라인 수요 키웠나…마권 매출로 성과 검증
  1. [중도초대석]복수경 충남대병원장 "사람중심 의료혁신, 새병원 건립·AI전환 착수"
  2. [제일학원] 9월 모평 가채점 충남대 의예 281점·심리 229점 지원 가능
  3. 한밭대 총장 후보 3인, ‘100년 대학’ 미래전략 놓고 열띤 공방
  4. 지역경제계 2차 공공기관 대전·충남 우선배치 요구 힘받나
  5. 대전교육청 결산자료 '부실' 지적…조직 효율성·예산 집행도 도마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 대전시장 "대전역세권 복합2구역 사업 무산 대비해라"

허태정 대전시장 "대전역세권 복합2구역 사업 무산 대비해라"

허태정 대전시장이 추진 무산위기에 놓인 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 사업에 대해 사업자 측에 정상화를 촉구하는 한편 무산 시 대응 전략 마련을 주문했다. 허 시장은 8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시민들에게 이런(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 사업 무산 위기) 흐름이 알려진 건 최근이지만, 이미 시장 취임 전부터 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무산될 위기라는 점을 감지했다"면서 "시가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한화컨소시엄 측에도 명확히 시 입장과 시민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업이 책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

"태안 안면도 관광개발 연내 결단"…박수현 지사, 지역현안 적극 지원 약속
"태안 안면도 관광개발 연내 결단"…박수현 지사, 지역현안 적극 지원 약속

충남도가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쇄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태안군의 미래 발전과 체질 개선을 위해 전방위 지원에 나선다. 박수현 충남지사는 8일 태안군을 방문해 민선 9기 시·군 방문 브랜드인 '충남통(通)행' 두 번째 일정을 소화하며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가로림만 해상교량 재도전, 안면도 관광지 개발 연내 결단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박 지사는 이날 태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군민과의 대화 행사를 통해 태안을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의 위기를 넘어 '서해안 대전환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한 총리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 이전계획 수립, 만전 기해달라"
한 총리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 이전계획 수립, 만전 기해달라"

한성숙 국무총리는 8일 최근 발표한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 "관련 부처는 대상기관 확정 등 연내에 발표할 추진계획 수립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해외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39회 국무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한 총리는 "물론 이전 대상 기관에는 결코 쉽지 않은 변화일 것"이라면서도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음을 이해하고 함께해 주실 거라 굳게 믿는다. 정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나눔의 의미도 배우고 책도 읽고’ ‘나눔의 의미도 배우고 책도 읽고’

  •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 통합 찬반 투표 시작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 통합 찬반 투표 시작

  • ‘고장난 전자기기 고쳐드려요’ ‘고장난 전자기기 고쳐드려요’

  •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