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0주년 기획-사라지는 100년 유산, 대전이 무너진다] (하) 미래유산제도 정착화 시급

[창간 70주년 기획-사라지는 100년 유산, 대전이 무너진다] (하) 미래유산제도 정착화 시급

제도권 밖 개인소유의 근대문화유산 보호 근거 없어
서울과 전주, 부산, 파주 등 미래유산제도 적극 추진
시 등록문화재 준비 마쳐... 조사와 보존 체계 골자
소유주 인센티브와 시민 참여 필요... 행정 구심점 삼아야

  • 승인 2021-02-09 14:48
  • 수정 2021-02-09 16:27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창간 70주년 기획-사라지는 100년 유산, 대전이 무너진다]

(하) 미래유산제도 정착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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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이전의 대전형무소 관사.
제도권 밖에 있는 개인 소유의 건축물은 문화재급 역사적 가치가 있어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이렇다 보니 대전형무소 관사처럼 문화재 지정 가능성이 큰 자원마저도 철거 또는 멸실 위기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전의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은 비록 적산(敵産)의 오점을 지녔지만, 역사적 현장성을 유지하며 교육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에 최적화된 자산이다.

대전형무소 관사 철거는 근대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실효성 있는 정책, 공무원과 시민들의 역사적 인식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추라는 시대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전북 전주, 경기 파주에서는 미래유산 제도를 도입해,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행정의 울타리로 품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유산은 말 그대로 미래의 유산을 가리킨다. 대전형무소 관사처럼 개인 소유의 ‘비지정문화재’지만 향후 문화재가 될 잠재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훼손 전에 보존하고 관리하는 선행 제도에 가깝다.

미래유산을 가장 먼저 도입한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고유 브랜드로 정착시켰다. 2013년부터 488개의 미래유산을 지정했는데, 1·12사태 소나무, 전태일 열사 분신장소, 활명수 등 건축물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방면의 미래유산을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부산은 49점, 전주는 43점을 지정했다.

전주시 미래유산 담당자는 "지정된 미래유산이 헐리게 되면, 시로 협조 요청이 온다. 아직 해지 요청은 없었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면 소유자들이 사명감으로 지켜가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미래유산
서울의 미래유산 목록
전주 미래유산
전주의 미래유산 예시.
대전시는 미래유산 취지와 결이 같은 '등록문화재' 도입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는 도입 초창기인 만큼 개인 소유보다 공공소유 가운데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 자발적인 시민 동참을 끌어낼 예정이다. 시 자체적으로 비지정문화재를 전수조사하고, 재개발이 이뤄지는 경우 지자체와 실측조사를 통해 보존으로 이어지는 긴밀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차고 넘치는 문화재 보존 제도 속에서 미래유산과 대전시 등록문화재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과 인력 배치는 성패를 좌우할 요건 중 하나로 꼽힌다. 문화재보호법 가운데 근대문화유산을 다루는 별도의 법도 필요하다.

대전시 문화유산 담당자는 "국가등록문화재, 시등록문화재, 우수건축자산에 이어 미래유산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현장은 혼선이 크다. 예산이나 전담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행정력에도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전시의 비지정 문화재만 해도 2만 건이 넘는데 이를 전수조사하고 실측할 수 있는 전담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도적 완성도가 높은 서울시나 전주시는 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미래유산과 관계되는 각 실과에서 분과위원회를 맡았고, 행정기관 전체가 협의와 협조를 통해 미래유산 제도의 정착화,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밀도 높은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다. 미래유산 제도를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의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근대문화유산의 소유주와 시민들의 적극 참여도 유도도 벤치마킹 사례다. 미래유산은 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 공모를 받아 참여를 높였다. 미래유산 소유주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 참여 기회를 열고, 시민대학 과정에 미래유산반을 개설해 미래유산 지킴이를 양성하는 풀뿌리 시스템도 갖춰놨다. 여기에 교육청과 연계해 학년별 사회교과 과정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안여종 문화유산울림 대표는 "비지정문화재 전수조사를 해야 보존할 것들의 우선순위를 고를 수 있다"고 했고, 이전오 대전문화역사진흥회장은 "미래 문화재로 봐서 보존하려는 사회적 개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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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동 구 대전법원 관사.
근현대문화유산과 비지정문화재를 법적 테두리에 넣을 수 있는 문화재법 개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병호 국회의원은 지난해 11월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전·관리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50년 미만인 현대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예비문화재 제도를 통해 법적 공백을 막는다는 취지다. 결과적으로 50~100년 안쪽의 비지정문화재를 전수조사하고 보존의 법적 테두리를 만드는 것은 대전시와 정부의 새로운 과제로 닥쳐온 셈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대전과 세종은 2024년 비지정문화재 일괄 전수조사에 들어간다. 비지정이라고 숫자가 많아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틀이 없다. 유사한 시각에서 만들어지고 활용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한데, 5개년 전국 전수조사가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유산과 대전시 등록문화재는 결국 자발적인 보호 의지에 결정된다. 대전시는 홍보자료집을 만들고 제도 혜택과 취지, 준비과정 등 빠르게 정착화해 대전만의 문화재를 보호하는 원년으로 삼는다는 목표를 밝혔다.

구본환 대전시의원은 “100년이 넘은 건물과 사업장, 직원 등 유산을 보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가겠다. 시와 자치구 모두 공감대가 필요하고, 법적인 조례나 시스템이 연동돼야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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