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3] ‘판소리 심청가 음악문화’… 충청도 명창이 주도했다

[10년간의 취재 기록-3] ‘판소리 심청가 음악문화’… 충청도 명창이 주도했다

'판소리의 원류는 충청도다' <기획 시리즈 3>]
‘포크·락→발라드→트롯’ 대중가요 흐름처럼, 판소리도 이렇게 유행됐다
노재명 관장, “‘중고제 심청가→동편제 심청가→서편제 심청가’ 흐름”…‘처음 공개’

  • 승인 2021-03-24 15:28
  • 수정 2021-08-24 00:41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김창룡
충청도 중고제 판소리 거장 김창룡(1872년~1943년) 명창의 말년 모습...동편제 초기 심청가는 충청도의 중고제 영향을 받았다. 희귀자료로 평가받고 있다.<국악음반박물관>
현재의 서편제 심청가는 슬픈 성음을 강조하고 있다면 옛 '동편제 심청가'는 슬픔 자체를 의연하게 표현한 게 특징이다. 비관보다는 희망적인 소리인 셈이다. 그래서 '죽음과 슬픔' 등 굴곡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강임함이 동편제 심청가에서 잘 녹아있다는 평가다.

동편제 심청가는 전반적으로 진행 속도가 거뜬거뜬하게 빠르고 청이 높다. 동편제 심청가의 대가로 알려진 송만갑, 이선유, 박록주, 강도근 명창. 이들 명창의 동편제 심청가를 살펴보면 다른 유파의 소리제에 비해 슬픈 소리 비중이 적다.

동편제 심청가는 곽씨 부인이 세상을 떠날 때 서편제보다는 다소 절제된 감정으로 죽음을 묘사했다. 심청이 역시 사뭇 용기 있게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표현됐다. 심봉사도 아내인 '곽씨 부인의 죽음'과 '심청이 인당수 투신 장면'에서 서편제보다는 우직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그려졌다. 동편제의 꿋꿋한 성음이 의연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은 이런 점을 주목했다. 노 관장은 동편제 심청가의 뿌리에 대해 '36년간 수집한 자료와 연구 성과'를 토대로 책을 써내려갔다. 신간 '동편제 심청가 흔적을 찾아서'(발행: 태림스코어)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 성과의 핵심은 '중고제 심청가→ 동편제 심청가→ 서편제 심청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노 관장은 "충청도 중고제 심청가가 동편제 심청가에 영향을 주고, 동편제 심청가가 서편제 심청가에 영향을 줬다"며 "서편제 심청가가 대중들에게 유행하면서 중고제·동편제 심청가가 소멸된 과정이 이 책을 통해 최초로 규명됐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만 본다면 판소리 심청가의 원류는 실질적으로 충청도 중고제가 되는 셈이다.

송만갑
동편제 판소리 거장 송만갑(1865년~1939년) 명창의 말년 모습...희귀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노재명 관장에 따르면 초기 판소리에서 중고제와 동편제가 '심청가 음악문화'를 주도했다. 조선시대 말기 전라도 명창인 박유전 명창은 의연하게 불렸던 동편제 심청가를 '서편제 심청가'로 재해석했다. 당시 서편제 심청가는 '서민들의 한'을 푸는 소리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신선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갔던 서편제 심청가는 그야말로 대 히트였다. 반면 중고제와 동편제 심청가는 박유전의 서편제 심청가로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시대를 기점으로 중고제와 동편제 심청가는 맥을 잃어갔다. 공연 및 음반취입, 방송 활동 등도 주춤했고, 20세기 말기엔 중고제와 동편제 심청가의 완창 전승도 사실상 끊어지게 됐다. 한마디로 1970대 포크와 락, 1980년대 댄스음악과 발라드, 지금의 트로트까지 이어진 대중가요의 흐름처럼, 판소리 문화도 시대에 맞게 유행한 것이다.

송만갑_상여소리SP음반
송만갑 명창이 1913년 일본 음반회사에서 녹음한 동편제 심청가 중 상여소리 SP음반...동편제 송 명창은 심청가의 가장 구슬픈도 헤비메탈처럼 무척 우렁차고 꿋꿋하게 불렀다..희귀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노 관장은 "이 책은 전승이 위태롭고 단절된 동편제 판소리 심청가를 총체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이라며 "지금까지 발견된 동편제 심청가 음반, 창본 등 중요 자료를 여기 모두 수록하고 분석해 한국 음악의 든든한 뿌리와 선봉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결과, 판소리 역사는 충청도에서 시작됐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서편제 심청가는 지금도 판소리 명창들에게 주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른바 전라도에서 전승된 '정응민 보성소리 심청가'는 박유전→정재근→정응민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동편제·중고제 심청가의 음반과 자료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보성소리 심청가는 서편제뿐 아니라 동편제, 중고제도 일부 녹아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 관장은 처음으로 이런 관계를 분석했다.

그동안 박유전 계열의 서편제로만 알려진 보성소리 심청가는 이동백의 중고제, 송만갑의 동편제, 김세종의 동편제도 상당 부분 가미된 것으로 분석됐다. 국악학계의 판소리 학설이 바뀔만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김창환
서편제 판소리 거장 김창환(1852년경~1938년경) 명창의 말년 모습.희귀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노 관장은 "옛 판소리 유성기음반, 창본 등 자료들이 귀해서 그동안 판소리 역사와 전승 흐름을 알기가 어려웠다"며 "중고제, 동편제 심청가 희귀 자료들을 발굴했고, 자료를 토대로 연구한 결과 이같은 성과를 최초로 도출해 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전승이 끊겼던 동편제 심청가를 현재 전승되고 있는 보성소리 심청가 등에서 응용한다면 옛 동편제 심청가를 복원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적의 부록에는 CD도 담겨있다. CD '동편제 심청가 걸작집'에는 송만갑·이선유·조학진·박록주·김초향·신금홍·오비취·김연수 명창이 1913~1935년 녹음한 희귀 심청가 음원들로 채워졌다.

이번에 처음으로 집대성된 '동편제 심청가 걸작집' CD음반은 귀명창들에게 단비와 같은 감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복각 CD음반은 동편제의 대표적인 심청가 걸작 녹음들이 담겨있어 동편제 심청가 연구와 복원의 핵심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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