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교무실 청소는 누가하지?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교무실 청소는 누가하지?

김재석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 승인 2021-06-02 08:18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김재석
김재석 소장
지난해 6월, 대전의 모 중학교 학생이 학생들에게 교무실 청소를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그동안 학생들로부터 제기된 진정은 주로 교내 휴대폰 사용(소지) 금지, 과도한 두발이나 복장 규정 등이었는데, 교무실 청소 문제는 인권위원회에서 오래 근무한 필자도 예상하지 못한 진정이었다.

처음엔 나의 학창시절 경험을 떠올려 봤다. 필자가 다닌 학교는 아주 오래전에 폐교된 충남의 작은 농촌마을에 있는 학교였다. 그때는 교무실 청소는 일도 아니었다. 늦가을 아침엔 등교하자마자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떨어진 내 얼굴 만한 낙엽을 쓸어내는 일이 학교의 첫 일과였다.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하에 각자 비료 포대 하나씩을 들고 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겨울철 난로에 때울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산에서 솔방울과 마른 나무 그루터기를 한가득 담아 학교 뒷켠에 있는 커다란 창고 안에 쏟아 부었다. 봄철엔 학교 근처 농가에 모심기 지원을 나가고 체육시간엔 운동장의 돌멩이를 줍는 것부터 시작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교무실 청소는 이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경험, 과거의 사례가 아닌 전문가의 의견과 일찌감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타 시·도의 사례를 참고하고, 인권의 시각과 기준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고려할수록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진정이 제기된 해당 학교에서는 교무실뿐 아니라 교장실과 행정실, 성적처리실, 학교지킴이실 등의 청소도 학생에게 배정하고 있었다. 대전시의 다른 학교에서도 상당수가 유사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해당 학교와 교육청은 청소도 교육활동의 일환이고, 학급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포괄적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므로 학생들과 무관하지 않고 그렇기에 학생들이 이러한 공간을 청소하는 것은 교육활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물론 학교 교육의 역할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인성과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며 자신이 사용한 공간의 정리와 청소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교육활동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직접적인 활동공간과 관련이라고 보기 어려운 학교 공간에 대해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공간이라는 명분으로 강제적으로 학생에게 청소를 배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2월초에 해당 학교와 교육청에 개선을 권고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가뜩이나 학생지도와 각종 행정업무 처리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사들이 직접 교무실 청소를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개선 방안으로 청소시간을 교내봉사 시간으로 인정해주면서 학생들의 자발적 신청을 받아 청소를 배정하는 방법과 장기적으로는 청소 용역 예산을 마련하는 방안도 같이 제시했다.

해당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예상했던 대로 교원단체의 항의 성명과 일부 교사나 시민들의 항의 전화와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학교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한 결정이라거나 아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항의 내용이었다.

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해당 학교는 올년 1학기부터 교무실 등의 청소를 자원봉사자 활용과 학생들의 자발적 신청, 교내봉사 시간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개선했다. 또한 대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광주광역시교육청도 5월 초에 일선 학교에 교무실 등 교직원 사용 공간의 청소를 학생들에게 강제 배정하지 말도록 하는 지침을 시달했다고 한다. 필자가 학창시절 학교에서 땔감을 마련하고 운동장의 돌멩이를 줍던 얘기가 지금은 '라떼는 말이야'의 소재가 되는 것처럼 교무실 청소도 머지않아 '라떼'의 소재가 될 것으로 예상해본다.
김재석 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