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수도를 옮기라" 55년 전 행정수도 열망한 충청

[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수도를 옮기라" 55년 전 행정수도 열망한 충청

  • 승인 2021-06-03 09:15
  • 수정 2021-08-09 17:18
  • 신문게재 2021-06-03 11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컷-검색에




1966년 5월 수도이전를 지면 통해 제안
좌담회·석학의 기고 등 대전서 천도운동 전개
인구와 산업, 문화 서울 밀집문제 제기돼
백지계획보다 10년 앞서 자생적 천도론 싹터





수도 서울을 대신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만들어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정책개념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66년 서울시가 강남을 개발해 한강 이남으로 도시팽창을 꾀할 때 이미 대전에서는 수도에 밀집된 인구와 기능을 분산하자는 '대전천도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백지계획과 1971년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의 대전에 행정부 이전 공약보다 앞서 충청도민들이 스스로 행정수도 필요성을 논의하고 정부부처 이전 논리를 개발했다.

행정수도 세종1
▲스스로 싹틔운 수도 이전 주장



1966년 5월 중도일보는 1면에 '대전천도를 제안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걸고 과밀한 서울을 대신해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자는 천도(遷都)운동에 깃발을 들었다. 이웅렬 당시 중도일보 사장의 기고문 형태의 '대전천도를 제안한다'는 정부가 정부청사와 국회의사당을 이전하는 계획을 검토 중인데 이번 기회에 대전으로 천도하자는 제안을 담았다. 이날 기사는 수도를 옮기자는 최초의 기명 칼럼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서울이 직면한 한계를 이렇게 언급했다. "애초 60만 명 수용 능력으로 계획된 도시에 1966년 현재 380만 명이 밀집하면서 복합한 교통 등으로 천도가 불기파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정부 고위층에서는 (경기도)안양과 시흥 등을 정부청사 이전지역으로 검토 중인데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민족중흥과 장래를 고려하는 원대한 포부 밑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의제를 던졌다. 그러면서 정부청사 이전지역으로 제안한 곳이 대전 유성 학하리로써 이곳에 반경 59리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면 당시 서울 인구의 3배를 수용할 광활한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아는 행정수도 또는 서울의 기능분산이라는 개념은 가깝게는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를 공약했고, 이보다 앞서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백지계획을 통해 공주 장기지역에 수도이전을 검토했으며, 그보다 이른 1971년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대전을 행정수도로"라는 공약을 제시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1966년 복잡한 서울을 대신해 신흥도시 대전에 수도를 옮기자는 제안이 충청도민의 목소리로 제기됐다는 것으로 외부에서 식재된 게 아니라 스스로 새싹을 틔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1966년07월 31일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말한다
1966년07월 31일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토론하는 좌담회와 관련 기사.
▲밀집된 서울에 수도를 어쩔텐가

대전에서 '천도운동'이 전개될 때 서울의 상황을 보면, 지방의 영세 농어민들이 서울로 상경하면서 1년에 인구가 31만 명씩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택과 식수처럼 생활기반이 턱없이 부족했고 상경한 사람들이 하천 변이나 구릉지에 무허가 판잣집과 천막집을 지어 정착했으며, 인구가 교외로 확산하면서 장거리 출퇴근문제, 버스노선 불편, 자가용 증가에 따른 교통체증까지 서울의 혼잡은 심각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당시 실상을 잘 담아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6년 서울의 시가지는 남쪽으로는 영등포, 동쪽으로는 중랑천 일대를 넘지 못했는데 밀집한 서울에 인구와 기능을 분산하는 차원에서 정부청사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할 계획으로 이전지역을 물색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지금은 헐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중앙청이라고 부르며 정부청사로 사용하던 때인데, 한강 이남에 30만 평의 부지를 마련해 종합청사를 이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정부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 밀집한 청사와 국회의사당을 옮기려 한다는 구상이 알려지자 중도일보는 앞서 '대전천도를 제안한다' 기사를 시작으로 좌담회를 열고, 대전천도추진준비위원회를 발족했으며, 지역 석학을 통한 수도 이전 당위성을 담은 연재물을 게재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1951년 대전천도 건의한 국회

1966년 7월 27일 중도일보 회의실에서는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논의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중도일보 사장을 비롯해 임지호 제2대 대전시장, 지헌영 충남대 교수, 유동원 충남대 문리대 학장. 김종락 유성온천호텔 회장, 애국지사 권용두 문필가, 대전시치과의사회장을 역임한 임주혁 임치과 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좌담회는 정부청사 대전유치를 주장하는 과학적 이유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서울에 인구 380만 명에 이르러 도로, 상하수도, 주택 등의 문제로 더는 도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1할이 넘는 인구가 서울에 집중됐다는 밀집 문제, 그리고 산업, 경제, 문화 구분 없이 전반에 걸쳐 지방분산이 시급하다는 제안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대전이 제주도와 신의주의 사이에 한반도 중심에 위치한 덕에 교통이 편리하고 가장 최근의 도시계획으로 건설되었으며, 군사적 견지에서도 중요한 위치라는 점은 수도를 대전으로 옮겨야 하는 이유로 제시됐다. 시흥이나 안산, 김포는 서울 근교이므로 정부청사 지방분산이란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전쟁기 부산임시정부시절 당시 국회가 대전천도를 가결했다고 이날 토론회에서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국회의 결정이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융통성 없는 고집으로 보류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1951년 공문서 '대전 임시천도에 관한 건의 이송의 건'을 보면 그해 11월 국회는 부산에서 임시수도를 대전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서울이 가까운 대전으로 임시천도하면 일반 국민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고, 행정상 대전이 중앙지이며, 교통의 중심지이자 농산물 집산지 그리고 군사상 중요지 등의 다섯 가지 이유를 열거했다.

▲도시팽창 꾀한 서울 균형발전 갈림길

1967년07월23일 대전시 지방장관회의
1967년 7월 대전에서 개최된 지방장관회의 모습. 기사에서는 일일 수도가 된 대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당시 대전천도 운동은 일회성 보도에 그친 게 아니라 기획 시리즈와 사설을 통해 서울이 당면한 한계와 분산 필요성을 뚝심 있게 역설했다. 이때 지헌영 충남대 교수의 '비좁은 서울' 시리즈를 6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하면서 정부청사의 지방 이전 더 나아가서는 대전천도를 촉구했다. '대전천도'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부청사대전유치추진 준비위원회를 이때 공식적으로 발족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1967년 7월 사설에서는 "국가의 수도라고 해서 반드시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교육 등이 한데 결집해야 한다는 이유는 없는 것이니 우리는 이와 같은 사례를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라며 수도 기능분산을 호소했다. 이 같은 요구와 달리 정부는 잠실과 강남을 개발해 입법부를 남서울 강남에, 사법부를 영등포에, 행정부를 용산에 입지하는 새서울도시계획을 수립했다. 이로써 한국전쟁기 부산 임시수도에서 국회가 대전천도 건의를 의결하고도 수도를 서울로 복귀한 것에 이어서 1966년 새서울 조성계획에서도 기능분산이라는 지역의 바람은 무산되고 말았다. 불도저라는 애칭의 김현옥 서울시장이 서울을 대도시 또는 입체도시로 변화시킨 1966년 이때, 국가적으로 보면 국토 균형발전을 향한 중요한 첫 번째 갈림길을 놓치고 지나친 순간이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검색에 없는~7편]대전천도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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