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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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2-01-24 08:33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양성광이사장
양성광 소장
며칠을 밖으로 나돌다 갑자기 사무실에 있는 열대어, 구피가 걱정돼 한걸음에 사무실로 달려가 보니 염려와는 달리 수족관의 구피들 세계는 평온해 보였다. 그런데 수초 사이로 뭔가 꼬물거리는 것이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구피 새끼들이었다.

구피는 갓 태어난 새끼들을 먹잇감으로 인식해 자기의 새끼까지 잡아먹는 카니발리즘이 있는데, 새끼 몇 마리가 관상용으로 넣어둔 산호초 사이에 숨어 용케 살아남았나 보다.



좁쌀 크기의 네모난 몸뚱이에 기다란 꼬리가 매달린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구피 치어들은 생긴 것과는 달리 재빠르게 수초 사이를 오간다. 아직 신체 기관이 덜 발달한 듯 속이 다비치는 치어들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붉은색 자태를 뽐내는 성어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항 유리 넘어 구피들의 스크린 세이버 같은 부드러운 유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상념이 수족관 물결을 따라 퍼져나간다. 나는 무엇인가. 구피는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구피에게 무엇이었던가.



여과기와 히터를 설치하고 수초와 액세서리로 수족관을 꾸미며 나는 구피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착각에 빠졌었다. 완성된 수족관에 구피 4쌍과 합사할 물고기 몇 마리를 사다 넣고는 완벽한 수족관을 만들었다고 우쭐했었다. 끼니때마다 먹이를 충분히 주고, 어항도 부지런히 청소해 주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물이 탁해지고 물고기가 한 마리씩 죽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번 뒤집힌 물은 수질정화제와 살균제를 넣는 등 별짓을 다 해도 효과를 보지 못했고 결국 나의 첫 번째 구피 월드는 처참히 실패했다.

두 번째 수족관은 소위 물 생활을 하는 지인들과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사료를 너무 많이 주면 찌꺼기들이 물을 오염시켜 안 된다는 것과 수질은 나의 부지런함이 아니라 박테리아의 생태계가 잘 조성돼서 오염물질이 분해돼야 깨끗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구피를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컷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다. 처음엔 작고 꼬물대는 서너 마리가 발견되었는데, 곧 새끼의 수가 30~40마리는 족히 되게 늘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체 구피들이 새끼들을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래서 다음번부터는 부화통에 암컷을 넣어두고 새끼를 낳게 했는데, 이번에는 새끼의 수가 너무 불어서 문제가 됐다. 결국 암컷들만을 분리하고 수족관 하나를 더 만든 후에야 구피의 폭발적 증식을 막을 수 있었다. 이 일 이후로 나는 구피 월드의 전능자가 아님을 깨달았고 지금은 먹이를 주는 것 이외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초보는 이처럼 물고기 키우는 데에도 힘이 들어가는데, 초보 부모는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서투르게 관여해 오히려 망칠 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 '슈퍼 DNA 피는 못 속여'에 출연하는 스포츠 스타 출신 부모들 대부분은 자식의 뛰어난 운동 실력에도 만족을 못 하고 끊임없이 가르치려 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지적을 잔소리로 생각해 못 들은 척하는데 칭찬할 때는 얼굴이 환해진다.

초보 부모들은 한 번뿐인 자녀의 어린 시절을 더 값지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매사에 간섭하고 싶어 한다. 잘 나가는 부모의 눈에는 뛰어난 자식도 여전히 부족해 보여서 공부를 못했던 부모들은 자신처럼 되지 말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다그치고 일일이 통제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강한 새끼만이 살아남는 구피 월드에서 사람이 할 일은 환경을 최대한 자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의 세상도 그들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간섭을 줄여야 한다. 지적을 자주 받으면 아이들은 어깃장을 놓거나 말을 잘 들어도 마마보이로 자라기 쉽다. 아이는 부모의 지적보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런 말도 남의 얘기이니까 쉽지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속이 터져 자꾸 간섭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구피 때도 그랬고 우리 아이 때도 그랬다. 이제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이제 훌쩍 커버렸다. 우리 애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키우는 법을 잘 가르쳐줄 수 있을 텐데, 이야말로 절대 간섭하지 말아야 할 내 아이 자식의 월드다. /양성광 혁신과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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