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밀가루 전쟁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밀가루 전쟁

  • 승인 2022-04-20 13:42
  • 신문게재 2022-04-21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309972442
게티이미지 제공
"오늘 점심은 칼국수 어때? 얼큰한 공주칼국수나 바지락 넣은 시원한 칼국수도 좋고.", "짬뽕이 당기는데?", "아냐, 오랜만에 짜장면 먹을까? 곱빼기로." 점심을 먹고 식곤증으로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린다. 어느새 4시 50분. "피자 왔습니다." 배달원이 양 손에 피자 보따리를 들고 들어선다. 꺼진 배를 문지르며 침을 꼴깍 삼킨다. 두툼한 도우에 치즈가 듬뿍 올라간 뜨거운 피자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매콤한 불고기피자도 한 조각 꿀꺽! 다시 배가 빵빵해졌다. 다섯 조각 먹었나? 이걸로 저녁을 해결한 셈이다. 오늘 하루는 밀가루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우리는 밀가루로 된 음식을 얼마나 먹을까?

한국인은 쌀이 주식이지만 뭐가 되든 하루에 한 두번은 밀가루 음식을 먹을 것이다. 밀가루로 된 음식은 다양하다. 온갖 국수와 중국 음식들, 과자, 빵, 튀김…. 이맘때 별미인 미나리전도 밀가루가 재료다. 마트에 진열된 과자를 보라. 고객들이 저마다 끄는 카트엔 과자가 기본으로 담긴다. 달콤한 빵 굽는 냄새를 풍기는 빵집도 그냥 지나갈 수 없다. 휴일 은행동 성심당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더미같이 쌓은 빵 쟁반을 들고 '뭐 더 살 것 없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눈이 반짝인다. 황홀할 정도로 예쁜 케이크 진열대 앞도 장사진이다. 한여름 매콤새콤한 비빔국수는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도대체 밀가루 음식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인류에게 밀은 곡물 이상의 것이다. 지구상에 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식탁은 얼마나 빈약할까. 야생 밀을 재배화해 음식으로 이용하기까지 인류는 실로 장대한 드라마를 펼쳐왔다. 밀의 발생지는 서남아시아다. 약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인류가 최초로 밀 재배에 성공했다. 밀은 고대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와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는 곡물 여신으로 농업을 관장하는 대지의 신이다. 하지만 밀가루를 채취하는 일은 까다로웠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오늘날의 제분방식으로 발전을 이뤘다.

유년시절의 낭만적인 추억 하나가 있다. 내 고향 마을 앞 저 멀리엔 금강이 흐른다. 어느 핸가 나는 동네 친구들과 무슨 맘인지 강에 놀러갔다. 강에 가려면 윗마을을 거쳐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그 들판은 순전히 밀밭이었다. 강가라 그런지 들판 길의 흙이 밀가루처럼 뽀얗고 고왔다. 바람에 일렁이는 키 큰 밀밭 사잇길을 우리는 고무신을 벗어 들고 맨발로 달렸다. 흙을 밟는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 노랗게 익은 밀을 훑어 손으로 비벼 후우 분 다음 입에 털어넣었다. 계속 씹으면 끈기가 생기고 쫄깃해진다. 영락없는 껌이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면 밀가루 속 단백질이 부풀면서 껌처럼 결합해 글루텐이 형성한다. 이 특성으로 다채로운 밀가루 음식이 세계 곳곳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손쉽게 먹던 밀가루에 빨간불이 켜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밀 농사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각국의 식량 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당장 이집트, 터키 등 밀 생산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20년 기준 20%대다. 그나마 쌀을 빼면 겨우 2.6%.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식량안보의 위기다. 식량주권이 중요한 이유다. 서울에선 칼국수가 8천원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젠 서민 음식 칼국수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쌀, 우리 밀을 지켜내야 한다.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구호품으로 허기를 때우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부디 그들에게 다시 평화의 봄이 오길!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3.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4.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5.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1.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2.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3.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4.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5. 대전연구원 신임 원장에 최진혁 충남대 명예교수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내란특검, 윤석열·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 충청 대거 기소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적극 가담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충청 출신 인사들이 대거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한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은 180일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진석·박종준·김성훈·문상호·노상원 등 충청 인사 기소=6월 18일 출범한 특검팀은 그동안 모두 249건의 사건을 접수해 215건을 처분하고 남은 34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넘겼다. 우선 윤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