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계절이 기억하는 마음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계절이 기억하는 마음

안인경 회덕초 교사

  • 승인 2022-08-18 10:10
  • 신문게재 2022-08-19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사본 -회덕초_안인경(계절이 기억하는 마음)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서 5교시 있는 날보다 6교시가 들은 날이 더 좋아요."

나연이가 하교 인사할 때 건넨 말이다. 아이의 표정과 말투에서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읽어져 나도 다정함을 담아 기쁘고 고맙다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그 시간에 담긴 마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퇴근 후에도 아이가 한 말이 좋아서 혼자 웃은 날이 있다. 나연이의 마음으로 인해 아침에 간신히 일어난 날도 숱한데, 교실에 서 있는 내가 막 자랑스러워지고 잠시 흐뭇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때 시간은 금세 흐른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거나 하는 일이 지루하고 고단하다고 느껴질 때 시계가 멈춘 것만 같다. 우리들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일상에서 크게 벗어난 설레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학생들과의 하루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쉬어가며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계절을 함께하기 위해 국회의사당 견학을 예약해 놓았고, 학예회를 맞아 학생들의 우쿨렐레 연습도 한창이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계절이 왔을 때 그 때의 마음이 생각나겠지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봄이 오면 봄과 함께 반복된 떨리고 긴장된 새로운 만남으로 그때의 마음이 동시에 밀려온다. 봄에는 따사로운 봄볕과 봄꽃보다도 먼저 떨리는 손길로 만난 숱한 만남으로 생긴 아린 긴장감이 담겨 있다. 서서히 녹아내린 겨울눈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친밀해지면서 봄을 함께 걷는다. 그 계절 안에 산책같은 봄현장학습과 놀이한마당이 함께 있고, 여러 가지 함께 정한 약속들과 이를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한 흔적들이 담긴다.

그런 친밀감과 함께 여름이 온다. 여름이 되면 나른할 듯 하지만,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고, 의견도 확실해지고 조율하고 양보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진다. 우리에게 여름은 계절의 울창함 못지않은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지고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새로운 계절이다. 수확하고 열매맺는 가을이 몇 번이고 찾아오는 동안 절제하고 조심하느라 마음껏 누리지 못한 가을 안에 고유하게 자리잡은 교육활동이 많다. 설령, 예약해 놓은 국회의사당 견학을 못하고, 화려한 학예회가 열리지 못하더라도 학생들과의 마스크 위의 눈빛만으로도 그 아쉬움을 다 읽어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학생들과 내게 가을은 미루고 미루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내려고만 하면 못하게 된 그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어려있는 계절로 몇 년째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설레이던 마음을 가라앉힌 조금은 무거운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더라도 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있다는 걸 떠올려주길 바란다.

가을이면 열리던 다양한 교육활동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사소한 일상으로 가을을 기억할 수 있으려면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 계절이 먼저 그때의 마음을 기억하기를 기대하려면 어떠해야 할까? 순간순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고 목소리가 더 다정해진다. 눈빛은 더 따뜻해져서 하루종일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편안하고 작은 배움도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말을 할 수 있고, 상처를 내지 않으며 표정만 보고도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살필 수 있다. 각지고 모가 난 날카로운 부분들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서로에게 가서 닿을 때 그 날카로운 부분을 기꺼이 다듬고 서로를 찌르지 않기 위해 실핀다. 계절이 기억하게 될 우리들 모습이다.

나연이의 고백에 기쁘고 고맙다고만 하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다.

"선생님도 6교시 들은 날이 더 좋아질 것 같아."
안인경 회덕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