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그 때 그 아이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그 때 그 아이

문윤미 대전탄방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2-12-22 11:08
  • 신문게재 2022-12-23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대전탄방초-문윤미선생님
문윤미 대전탄방초등학교 교사
2학기가 시작됐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멈추었던 현장 체험학습이 시작했다.

현장 체험학습 때면 생각나는 아이가 있다. 10여 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1학기 현장 체험학습 신청서를 받는 데 남학생 1명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불참을 표시해서 냈다.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그냥 가기 싫다고 했다. 아무리 붙들고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같이 살고 계신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학교 바로 앞에 사셔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이 할미도 소풍을 보내려고 했는데유. 아무리 달래도 안 간다고 하네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우리 ○○가 멀미가 심해유. 지 애미가 얘를 낳다가 그만 하늘나라로 갔어유. 거의 핏덩이부터 내가 키웠지유. 저도 이 앞 노점에서 나물이나 그런 거 팔고 그걸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 라니께유. 그러다 보니께 우리 ○○가 차를 타본 적이 거의 없슈. 다른 애들 다 가는 가족 여행은 고사하고 버스 타고 어디 나들이 가본 적도 없어유. 그래서 작년에 1학년 입학해서 소풍 가는디 처음 버스라는 것을 타봐서 그런지 계속 토해서 울구불구 출발도 못하고 도로 내리고 못 가겠다고 아주 난리 났었슈. 그래서 이번엔 아예 안 가겠다고 막무가내네유."

사정이 딱했다. 부모의 부재로 할머니 손에서 키워져 버스 한 번 승용차 한 번 제대로 타본 적이 없어 차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것이었다.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안 가면 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 못 갈 것 같아 며칠을 어르고 달래 결국 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현장체험학습 당일 40분 동안 버스를 타야 하는데 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날 할머니에게 붙이는 어린이용 멀미약을 붙여달라고 부탁을 드려놓고 혹시나 싶어 나도 마시는 멀미약, 검정 비닐봉투, 여 벌의 옷 등을 따로 준비했다. 버스 승차시간이 다 돼갔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잘재잘 즐거운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차에 탔다. ○○는 차 맨 앞자리에 내 바로 옆에 앉도록 했다. 차에 오르기 전 벌써 ○○는 검정비닐 봉투를 달라고 했다.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좌석에 앉아 비닐봉투를 받자마자 ○○는 봉투 손잡이 양쪽을 두 귀에 걸었다. 그리고 계속 마른 구토를 해대는 것이었다.

"○○야. 정 힘들면 가지 말까? 2학기에 다시 가니까 그때 가볼까?"

"아니요. 선생님 저 참고 잘 가 볼게요. 가서 과자랑 김밥 먹고 싶어요."

소풍날이라고 특별히 할머니가 싸 준 김밥과 과자가 ○○로 하여금 버티게 해 주는 힘이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멀미약 기운 탓인지 속이 편해져서인지 구토는 안 하고 잠들어 있었다. 검정비닐 봉투를 양쪽 귀에 걸어둔 채로 말이다. 체험학습 장소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할머니가 싸준 김밥과 과자를 먹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타게 됐다. 다시 멀미가 시작 돼 먹은 걸 다시 다 토할까봐 내심 걱정이 됐다. 다행하게도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다시 ○○의 귀에 건 비닐봉투에 토사물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는 현장체험학습에 빠지지 않고 가게 됐다. 예방조치만 미리미리 해 놓으면 멀미를 심하게 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게 됐다고 그 이후의 담임선생님들에게 들었다. 지금도 그 당시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 뒤로 조금 더 신경 써서 그 아이를 바라봐 주고 챙겨주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 그 아이가 어찌 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다부진 모습은 기억이 난다. 지금쯤 스무 살 넘은 청년이 돼 있을 ○○가 누구보다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윤미 대전탄방초등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지킨 참전영웅들…어린이 위로공연에 '눈물'
  2. 아산시, 취약지역 하수도시설 일제 점검
  3. 아산선도농협, 고추재배농가에 영농자재 지원
  4. 아산시,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개선 적극 추진
  5. 천안시의회 권오중 의원, "교통약자 보호 및 시민 보행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1. 천안시, 제77회 충청남도민체육대회서 주택안심계약 홍보
  2. 천안시의회 정도희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마을행정사 운영에 관한 조례안 본회의 통과
  3. 천안법원, 신체일부 노출한 채 이웃에게 다가간 20대 남성 '벌금 150만원'
  4. 천안시의회 유영채 의원, '전세피해임차인 보호조례' 제정… 실질 지원과 안전관리까지 법제화
  5. 여름휴가와 미래 정착지 '어촌' 매력...직접 눈으로 본다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대표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집권 초부터 PK 챙기기에 나서면서 충청권 대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진정성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자칫 충청 홀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대목인데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 또는 개헌 등 행정수도 완성 로드맵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가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와 장대교차로 입체화 추진 예정지 등 주요 사업지를 찾아 현장점검을 벌였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현장, 교육위원회는 서남부권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찾았는데, 을 찾았는데, 이번 현장점검에 직접 나선 조원휘 의장은 "앞으로 민선 8기 주요 사업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13일 유성구 일대 교통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았다. 먼저 유성복합터미널 BRT(간선급행버스체계)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는 유성구..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힘입어 경기 당일 주변 상권들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야구장 중 주변 상권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다. 15일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개막 후 70일간 야구 경기가 열린 날 전국 9개 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13%, 2024년 25%, 올해 31%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141만 명의 데이터 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